들어가며
2003년 3월, 일본에서의 연구원 생활을 막 마치고 귀국한 필자는 집에서 사용할 모니터로 당시 인기를 끌던 LG의 플래트론 LCD 모니터를 구입했다. 2000년 초 일본으로 출국할 당시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무겁고 부피가 상당했던 CRT 모니터는 3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 LCD로 교체되어 가는 중이었다. 꽤 비싼 가격으로 구매했던 17인치 플래트론 모니터는 놀랍게도 20년이 지난 2023년에야 완전히 작동을 멈췄다. 형광등 방식의 백라이트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책상 위를 지켜 온 그 모니터는 21세기가 평판 디스플레이의 시대임을 상징하는 듯했다.
전자계산기와 손목시계의 표시창으로 출발해 노트북과 모니터로 응용 분야를 확장한 LCD는 21세기 들어 중형 TV 분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거기서 불가피하게 마주할 경쟁의 대상은 바로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lasma Display Panel, PDP이었다.1 21세기 초 디스플레이 전시회를 참관할 때 흔히 보이던 80인치~100인치 급의 위용을 자랑하던 PDP, 대형 TV의 확실한 주자로 자리매김을 한 PDP는 LCD와는 반대로 대형에서 중형 TV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두 진영의 치열했던 싸움을 살펴보기 위해서 우선 PDP가 어떤 원리로 구동되는 디스플레이인지 알아보자.
PDP의 태동과 짧은 전성기
PDP의 발광 원리를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쉽다. 필자가 형광등의 원리를 다뤘던 이전 글2을 참조하면 좋겠다. 이유는 PDP와 형광등의 발광 원리가 기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형광등은 기체 방전을 이용해 내부에 자외선을 만든 후 이를 형광체 코팅막을 이용해 가시광선으로 변환하는 원리로 가시광을 만든다. 조명용 형광등이 내야 하는 백색광 구현을 위해선 적록청 삼파장 형광체를 섞어서 형광등 유리관의 내부에 코팅한다.
세 종류의 형광체를 유리관에 각각 개별적으로 코팅한다면 [그림 1]처럼 빨강 형광등, 녹색 형광등, 파랑 형광등과 같이 다양한 색상의 형광등을 얻을 수도 있다. 이제 삼원색 형광등 세 개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만들어 나란히 배열했다고 상상해 보자. 적록청 형광등이 내는 빛의 삼원색의 밝기를 적절히 조정해 섞으면 다양한 색상을 구현할 수 있다. 이 세 형광등이 이루는 조합 하나가 바로 PDP의 화소 하나에 대응된다. 이런 조합을 수백만 개 준비하고 모자이크 형태로 배치한다면 PDP 스크린을 이룰 것이다.
물론 실제론 초미니 형광등을 일일이 만들어 PDP로 조립하진 않는다. 생산 공정을 단순화해야 가격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림 2]에 전형적인 PDP의 개략도가 있다. 화소를 구성하는 부화소들을 물리적으로 구분해 서로 간 상호작용을 없애야 하기 때문에 격벽barrier rib을 쌓아 방전 공간을 분리한다. 격벽으로 나뉜 공간에 각각 적, 록, 청 등 세 종류의 형광체를 주기적으로 코팅해 빛의 삼원색을 만들 준비를 한다. 전극에 가해지는 전압으로 방전 플라즈마가 형성되면 고전압으로 가속된 전자의 운동에너지가 특정 원소로 전달되어 자외선이 방출된다. 격벽은 한 부화소에서 만들어진 자외선이 다른 부화소로 흘러서 의도치 않은 발광을 일으키지 못하게 막는다. 형광등의 방전 기체로는 비활성 가스와 수은(Hg, 원자번호 80번)이 쓰이지만 PDP에는 He+Ne+Xe 등의 비활성 원소만으로 이루어진 혼합 기체가 주입된다. 수은이 형광등 내 자외선 발생원이라면 PDP에서는 크세논(Xe, 원자번호 54번)이 그 역할을 한다. 여기에 PDP의 발광 효율이 형광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유가 나온다. 수은이 내는 자외선 파장은 대부분 254 nm지만 크세논이 방출하는 자외선의 주 파장은 147 nm나 173 nm다. 형광체가 내는 가시광선 광자의 에너지는 두 경우 모두 비슷한데 이를 만들려고 투입하는 자외선 광자의 에너지가 PDP의 경우 훨씬 크다. 그 차이만큼 형광체에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PDP는 본질적으로 형광등보다 훨씬 많은 열을 낸다.
플라즈마 방전이 다양한 색상의 빛을 낸다는 사실은 19세기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를 조명으로 이용한 대표적 사례가 수은 방전등이었다. 기체 방전을 표시소자로 활용하려는 첫 시도는 1927년 벨 연구소의 그레이Frank Gray, 1887-1969가 네온 방전관으로 구성한 2500 화소의 표시 장치였다. 그렇지만 오늘날 PDP와 유사한 방식의 발광 소자가 처음 등장한 해는 1964년이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연구팀이 컴퓨터 표시장치에 사용할 교류형 구동 방식의 PDP를 발명했는데, 당시에는 오렌지색을 내는 네온 기체의 발광이 활용되었다. [그림 3]에는 1981년에 사용된 컴퓨터 단말기의 PDP 표시장치가 보이는데 네온 방전 특유의 오렌지색으로 정보가 표시됨을 알 수 있다. 이때 제안된 교류 구동형 PDP의 특징은 전극이 유전체 층으로 덮였다는 점이다. 이 부도체 층은 축전기capacitor 역할을 함으로써 기체 방전 내 전류의 양을 제한함과 동시에 벽 전하wall charge를 저장해 일종의 메모리 효과를 가질 수 있었다. 이는 현대적 PDP 구동의 핵심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특히 1970년대 초에 플라즈마 내 이온의 충돌로 발생하는 이차 전자secondary electron의 방출율이 매우 높은 산화마그네슘MgO 층이 개발되어 PDP에 적용되기 시작하며 PDP 구동 전압을 낮추는데 기여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PDP의 본격적인 상용화에 필요한 요소기술들이 착착 개발되었다. 당시 PDP는 형광등과 비슷하게 전극이 위아래로 서로 마주보는 대향 전극 방식이었다. 이 경우, 방전으로 가속된 이온들이 형광체와 충돌해 형광체를 열화시키며 수명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었다. 일본 후지쯔 사는 이 영향을 줄이기 위해 전압을 가할 수 있는 유지 전극sustain electrodes을 하부 기판에만 형성함으로써 수명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시했다. LCD IPS 모드에서 하부 기판의 두 전극이 액정 분자를 수평면 내에서 회전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PDP의 두 유지 전극은 표면 방전을 유도해 반대편 기판에 코팅된 형광체를 이온이 직접 타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후 벨 연구소에서는 유지 전극이 있는 기판의 반대편에 영상 정보를 수신하는 데이터 전극data electrode, 흔히 어드레스 전극이라 불린다을 추가하는 삼전극three-electrode 구조를 개발해 오늘날 PDP 전극 구조의 전형을 제시했다. 이 외에도 소비전력을 줄이기 위한 에너지 회수energy recovery 회로의 개발, 방전 효율의 개선을 위한 기체 조성 및 구동 파형의 최적화, 광 이용 효율을 높이기 위한 형광체 위치의 재배치 등 다양한 기술적 혁신이 이어졌다. 특히 형광체가 상부 기판을 차지하고 유지 전극이 하부 기판에 형성된 기존의 방식에 비해 [그림 2]나 [그림 4]처럼 형광체를 하부 기판에 코팅해 형광체와 유전체층이 생성된 빛을 반사하는 거울 역할까지 맡도록 함으로써 PDP의 효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림 4]는 현대적 PDP의 단면 구조에 대한 개략도이다. 전면 유리에 형성된 유지 전극으로 방전 플라즈마가 형성되고 자외선이 방출되면 형광체를 통해 가시광선으로 변환된다. 상부 MgO층은 이차전자 방출을 통해 구동 전압을 낮추는 역할을 맡고 하부 형광체의 유전체 조합은 생성된 빛을 반사시켜 앞으로 보내며 PDP의 광효율을 올린다.
1990년대는 PDP 상용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였다. 1993년 21인치 컬러 PDP를 최초로 양산하기 시작한 일본의 후지쯔는 1995년 42인치 PDP를 선보였다. 그후 60인치~80인치급 FHDfull high definition, 화소수 1920×1080 PDP의 개발이 이어졌다. 2005년 삼성이 선보인 102인치 PDP, 2006년 파나소닉이 선보인 103인치 PDP는 이 기술이 디스플레이의 대형화에 있어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2005년은 대형 TV 시장에서 PDP가 프로젝션 TV의 출하량을 넘어섰 해였다. 상당히 큰 부피를 차지하던 프로젝션 TV에 비해 벽걸이 TV라는 PDP의 상대적으로 얇은 형상은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20세기 말 일본 가전 시장에서 소니 다음의 위치를 차지하던 파나소닉은 PDP 기술에 올인하며 21세기 초 막대한 자금을 PDP 사업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PDP의 약진에 있어 강력한 경쟁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중소형 디스플레이에 진지를 두고 급속히 대형화를 추진해 가던 LCD였다. 필자가 이전 원고의 서두에서 소개했던 디스플레이 학회에서의 신경전은 당시 PDP와 LCD 진영 사이 벌어졌던 뜨거운 경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PDP와 LCD의 디스플레이 대전
20세기 말 평판 디스플레이 시장에 대한 일반적 전망은 PDP가 대형 TV 시장을, LCD가 중소형 디스플레이를 양분하며 중간 크기에서 경쟁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PDP는 화소가 스스로 발광하는 자발광 디스플레이로 색상 화질, 응답 속도, 시야각의 면에서 태생적으로 LCD에 비해 유리했다. LCD는 동영상 화질이나 시야각의 측면에서 불리한 점이 많았지만 앞 글에서 언급한 여러 기술적 혁신을 이뤄내며 빠른 속도로 대형화를 이루었다. LCD는 2003년에 30인치대에서, 2006년엔 40인치대에서, 그리고 2008년에 50인치대와 그 이상에서 PDP와의 시장점유율을 차례로 역전하며 대형 TV 시장까지 거침없이 장악해 들어갔다.
그렇다면 두 디스플레이 기술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요인이 언급될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소비전력과 해상도 문제가 PDP의 발목을 잡았다. 초기 화질 상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PDP는 기체 방전의 특성 상 소비전력이 높고 발열이 심했다3. 냉각팬을 적용함에 따른 소음 문제도 불가피했다. 특히 중소형 디스플레이에서 고해상도 기술 구현이 쉬운 LCD에 비해 PDP는 30-40인치대에 FHD를 구현하기 쉽지 않았다4. 고해상도를 요구하는 21세기의 디지털 방송 환경 하에서 이런 조건은 PDP에 매우 불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반면에 LCD는 꾸준한 화질 개선과 함께 소비전력과 비용 면에서도 PDP에 대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시작하며 특히 디지털 방송이 요구하는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 적극 대응했다.
PDP가 고해상도와 저소비전력의 두 측면에서 성능 향상에 애를 먹고 있을 때 LCD는 중소형에서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해상도의 대형 디스플레이로 영역을 과감히 넓혔다. 특히 LCD 진영의 기술 혁신은 PDP라는 평판형 디스플레이와의 싸움뿐 아니라 LCD 내 IPS, VA 등 다양한 모드와 기술 사이의 경쟁을 포함해 자체적 혁신을 이루어 낼 동인이 많았다. 사용자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디스플레이의 화질 특성과 가격이 주요한 판단 기준인데, 가전제품 전시장의 조명 환경에 선명하고 밝게 보이는 LCD 화면에 대한 선호도가 PDP보다 높았다. 효율이 좋은 LCD가 동일한 소비전력에서 더 밝은 장면을 연출하는 데 유리함은 당연했다. 외부 조명이 있을 때는 스크린 자체의 밝기와 화면 반사율이 명암비contrast ratio를 좌우하는데, 이 면에서 PDP보다 LCD가 유리했다. 블랙을 진정한 블랙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자발광 디스플레이의 장점이 돋보이는 환경, 즉 어두운 조명 하의 영화 시청처럼 PDP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환경을 소비자들이 찾는 전시장에서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구조적으로 LCD는 모듈형 타입modular type, PDP는 집적형 타입integral type이라는 태생적 특성 차이가 두 디스플레이의 운명을 갈랐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5. 쉽게 말해서 LCD의 경우 각 요소(재료와 부품 등)는 특정한 기능만 독립적으로 담당하고 이 요소들이 모듈 방식으로 모여 LCD란 제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한 물리적 요소의 최적화가 LCD의 나머지 요소에 미치는 영향이 작기 때문에 각 요소의 최적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가령 액정 모드의 최적화로 시야각 특성 및 동영상 화질을 개선했다면 이와는 별도로 백라이트의 효율을 올려 화면의 밝기를 증가시키는 병렬적 최적화가 LCD에선 가능했다. 서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의 경우도 상호작용의 영향을 평가해 동시에 최적화하는 작업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따라서 디스플레이 회사가 모든 요소의 개발과 최적화를 담당하는 대신 협력사들과의 협업을 다양하게 진행함으로써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 가능했다. 반면에 PDP에선 전기에너지를 빛으로 변환하는 전기광학 변환 기능, 영상 신호에 따라 스캐닝과 동기화를 담당하는 기능 등이 전체적으로 PDP 패널을 통해 종합적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각 요소간 상호작용이 매우 크고 복잡해서 한 물리적 요소의 최적화가 다른 요소의 성능에 큰 영향을 끼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고해상도 PDP 개발을 위해선 격벽의 두께를 감소시켜 화소의 물리적 면적을 줄여야 하는데 이 경우 부화소와 부화소 사이 방전 간섭이 심해지고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구동 방법과 구동회로의 최적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했다. 같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했을 경우 집적형에 비해 모듈형 제품의 최적화와 성능 개선이 더 빠르게 이루어질 것임은 당연하다. 이것이 LCD 진영이 PDP의 성능을 빠르게 추월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모듈형 특성의 장점이 발휘된 대표적 사례가 약 2009년 등장했던 ‘LED TV’였다. LED TV라 하면 적록청 LED 칩 세 개를 조합해 하나의 화소로 꾸민 디스플레이로 착각하기 쉽고6 2009년 당시 실제로 이런 오해를 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 고유명사처럼 사용하는 ‘LED TV’는 LCD 패널 뒤에 LED 백라이트를 부착한 제품군을 일컫는다. 그 전에도 LED를 광원으로 사용한 백라이트가 시험적으로 적용되곤 했지만 다수의 LCD 제품은 냉음극 형광등cold cathode fluorescent lamp을 백라이트 광원으로 사용했었다. 그러면 LED TV라 불리는 LCD 제품군에 적용된 LED 백라이트는 이전과 비교해 어떤 차별성을 가졌가? 그 이전엔 중소형 LCD에만 사용되던 엣지형 LED 백라이트를 TV라는 대형 제품군에 최초로 적용한 사례가 바로 LED TV 제품이었다. 엣지형 LED 백라이트란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얇은 직육면체 도광판light guide plate, LGP의 측면에 백색 LED 배열을 배치해 LED의 백색광이 도광판을 통해 2차원적으로 퍼지며 균일광을 형성하도록 만든 디자인의 조명 장치다.
[그림 5]를 보면 측면에 배치된 LED 배열의 사진 및 점등 모습이 보인다. 엣지형 백라이트의 적용을 통해 LCD는 훨씬 얇은 박형의 디스플레이, 벽걸이 TV란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게다가 엣지형 백라이트의 적용을 통해 LCD는 화면 경계부에서 빛이 나오지 않는 면적인 베젤bezel을 획기적으로 줄이며 흡사 눈 앞에 화면이 떠 있는 듯한 혁신적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었다. 엣지형 LED 백라이트의 적용을 기점으로 LCD는 명실상부한 평판형 디스플레이의 선두주자이자 벽걸이형 TV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LED TV의 등장과 급속한 보급은 모듈형 디스플레이인 LCD의 핵심 부품(백라이트) 단 하나의 혁신이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PDP에 올인하며 PDP 진영의 맏형을 자처했던 파나소닉은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다가 결국 2013년경 PDP 사업에서의 철수를 발표했고 다른 전자회사들도 비슷한 시기에 PDP의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이로써 2000년대 초반 십 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디스플레이 대전은 LCD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글을 마치며
PDP와의 디스플레이 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LCD 진영은 파죽지세로 응용 분야를 넓히며 휴대폰에서 노트북, 모니터를 거쳐 대형 TV, 야외의 정보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디스플레이 시장을 장악했다. PDP는 주로 대형 TV 위주의 사업을 펼쳤던데 비해 LCD는 모바일 제품에서 대형 TV까지 모든 영역에서 제품을 개발하고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가격 경쟁력 면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자발광 디스플레이가 자발광 디스플레이 기술을 제압했던 이 대전이 진행되는 와중에 또 다른 디스플레이 전쟁의 맹아가 이미 싹트고 있었다. 바로 자발광 디스플레이인 유기발광다이오드Organic Light Emitting Diode, OLED의 등장이었다. 전류 주입을 통해 빛을 내는 자발광 방식의 OLED는 PDP처럼 별도의 조명 장치가 필요 없는 자발광 디스플레이다. OLED는 뛰어난 색재현 능력과 이론적으로 무한대인 명암비, 백라이트가 없는 디자인이 주는 다양한 자유도로 인해 오늘날 LCD의 자리를 위협하는 디스플레이로 성장하고 있다. OLED가 디스플레이 시장에 자리를 잡고 영역을 키워 온 과정은 PDP와 경쟁하던 LCD 산업의 성장과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특히 중소형에서 출발해 대형 TV로 진출하고 있는 OLED가 미래에 TV 시장까지 장악할 수 있을지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과연 LCD가 PDP를 몰아낸 것처럼 이번에는 OLED가 LCD를 몰아낼 수 있을 것인가? 다음 글에서는 OLED 기술의 특징과 구동 원리, OLED와 LCD가 서로 맞서며 상호 경쟁을 통해 어떤 기술적 혁신들을 이뤄 내고 함께 성장해 왔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문헌
- [디스플레이 이야기 3] (주병권 저, 열린책빵)
- [디스플레이 공학 I(LCD)] (김상수, 김현재, 이신두 공저, 청범출판사)
- [액정] (피터 J. 콜링스 저, 이신두 역, 전파과학사)
- [디스플레이 공학 II] (김근배 외, 청범출판사)
- [디스플레이 산업의 오해와 진실] (문국철, 황인선, 임화림 공저, 바른북스)
- Kyeong-Hyeon Kim and Jang-Kun Song, “Technical evolution of liquid crystal displays,” ㅜNPG Asia Mater. 1, 29-36 (2009).
- Larry F. Weber, “History of the Plasma Display Panel,” IEEE Trans. Plasma Science 34, 268 (2006).
- O. Sato, and S. Fujimura, “Influence of Product Architecture on the Competition Between LCD and PDP Technologies” RISUS-Journal on Innovation and Sustainability 3, 65 – 78 (2012). https://doi.org/10.24212/2179-3565.2012v3i3p65-78
- T. Kurita, “Desirable Performance and Progress of PDP and LCD Television Displays on Image Quality” SID Digest, 34, 776-779 (2003).
- K. Hirai et al., “Comparison of Image Qualities of LCD and PDP-Consideration of Relationship between Subjective Evaluation and Physical Properties”, The Journal of The Institute of Image Information and Television Engineers 61, 1352-1355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