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24년 8월 중순 코엑스에서 열린 K-디스플레이 전시회.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회사들의 부스는 온갖 전시품과 첨단기술 시연으로 생생한 활기가 넘쳤다. 이중 단연 눈길을 끌었던 곳은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이끄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두 부스였다. 두 번 접을 수 있는 폴더블 디스플레이, 화면의 확장성이 가능한 슬라이더블slidable 디스플레이, 자유로운 신축성을 띠는 스트레처블stretchable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폼 팩터form factor를 내세운 다양한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들이 참관자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두 회사가 내세운 다양한 미래형 디스플레이의 핵심 기술은 OLED였다. 유기발광다이오드Organic Light Emitting Diode의 약자인 OLED는 말 그대로 유기물을 활용해 빛을 내는 디스플레이 기술이다[1]. 유기물이란 일반적으로 탄소와 수소를 기반으로 질소, 산소 등의 원자가 포함된 물질군을 일컫는다. OLED는 LCD와는 다르게 백라이트와 같은 광원의 도움 없이 스스로 빛을 내는 자발광 디스플레이다. OLED에서 빛을 내는 유기막 자체의 두께는 100~200 nm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연한 플렉서블flexible 기판 위에 올릴 수도 있어 초박형,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구현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림 1]은 이전 글1에서 다뤘던 LCD의 단면도(위)와 이번 글의 주제인 OLED의 단면도를 비교한 것이다. 하부의 백라이트가 공급하는 백색광을 받아 액정 패널이 화소별 투과도와 색상을 조절해 영상정보를 표시하는 LCD에 비해 OLED는 기본적으로 두 전극 사이에 유기층을 배치해 디스플레이를 구현한다. LCD의 경우 광원과 패널이 분리된 복잡한 구조에 더해 디스플레이의 밝기나 화질 특성이 백라이트 및 액정 패널 양쪽에 의존한다. 반면에 자발광 디스플레이인 OLED는 발광층을 포함한 여러 유기 반도체층을 두 개의 전극 사이에 적층함으로써 우수한 화질의 영상을 표시할 수 있고 다양한 형태의 디스플레이로 변모할 수도 있다.

20세기 말, 카스테레오나 디지털카메라의 표시창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던 OLED는 이제 우리 생활 곳곳에 뿌리내리는 중이다. 최신 스마트폰과 고사양 태블릿, 스마트 워치 및 다양한 노트북 화면과 대면적 TV에 이르기까지 OLED는 LCD와 함께 정보 디스플레이의 핵심 기술로 자리잡았다.

현재 OLED는 소형 위주의 응용 분야를 탈피해 중대형 디스플레이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가령 삼성은 갤럭시폰 시리즈 초기부터 OLED를 활용해 왔고 갤럭시탭 제품군에도 OLED를 적용 중이다. 애플이 최근 아이폰에서 아이패드로 OLED의 적용을 확대해 온 흐름은 향후 맥북으로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높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TV용 OLED 패널을 생산하는 LG는 TV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10년 이상 진행해 왔다. 이런 OLED의 적극적 영역 확장은 결국 LCD와의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연재글에서는 LCD와 PDP 등 두 평판 디스플레이의 원리와 장단점, 산업적 경쟁 구도와 결과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OLED에 대한 몇 차례의 연재글에선 OLED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 개발의 역사, 그리고 응용 분야별 OLED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아울러 OLED의 영역 확대가 LCD와 형성한 경쟁구조, 그리고 두 기술의 경쟁이 각 진영에 어떤 혁신을 불러일으켰는지에 대해서도 다룰 예정이다. 이번 첫 번째 글에서는 우선 OLED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아보자.


[그림 1] LCD(위)와 OLED(아래)의 기본 구조. 여기 제시된 OLED 구조는 1987년 코닥의 탕 박사가 발표한 연구에서 활용했던 것이다.

 

유기물 발광의 시초

유기 분자는 어떻게 빛을 낼까? 분자도 원자처럼 양자역학의 규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에 속한다. 수소 원자에 고유한 에너지 준위를 전자가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두 준위 사이의 에너지 차이만큼 외부로부터 에너지가 공급되거나 해당 에너지를 빛의 형태로 방출해야 한다. 분자도 마찬가지다. 원자들이 결합해 이룬 분자 속 전자는 특정 원자에 속하기보단 소위 분자 궤도(분자 오비탈orbital)를 점유하며 돈다. 에너지가 낮은 분자 오비탈에서 높은 오비탈로 전자가 올라가려면 두 오비탈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 외부 에너지가 필요하고, 높은 오비탈에서 낮은 오비탈로 전자가 내려오면 그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가진 빛알, 즉 광자가 방출된다. 광자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빛의 진동수인데, 진동수가 클수록 광자의 에너지가 커지기 때문에 빨간색 광자보다 파란색 광자의 에너지가 훨씬 크다. 결국 분자 오비탈 사이의 에너지 차이가 작을 경우 빨간색, 에너지 차이를 순차적으로 키우면 녹색, 그리고 청색 광자를 방출시킬 수 있다. 따라서 OLED의 발광층 내 유기 분자의 종류를 바꾸어 방출되는 빛의 색을 조절한다.

전압을 가한 유기물에서 빛이 나는 소위 전계발광electroluminescence 현상을 발견한 사례들이 1950~1960년대 보고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1963년 미국 뉴욕대의 마틴 포프Martin Pope 교수는 안트라센anthracene, C14H10 분자로 이루어진 유기 결정에 400 V 이상의 고전압을 가할 때 푸른 빛이 나는 현상을 연구해 발표했다[2]. 그는 안트라센 결정에 가해진 높은 전압으로 인해 전하가 결정 내로 주입되어 발광 현상을 일으킨 것으로 해석했다. 즉 유기물 결정 속에서도 전하를 주입해 이동시킬 수 있고 그 결과 발광을 유도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400 V라는 높은 전압을 낮추기 위해선 발광층의 두께를 획기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었다.

OLED 연구의 전환점은 1987년 코닥에서 근무하던 탕Ching W. Tang과 반 슬라이크Steven Van Slyke에 의해 이루어졌다[3]. 그들은 [그림 1]에 제시된 OLED의 기본 구조를 바탕으로 충분한 밝기를 내는 OLED를 최초로 구현했다. 두 사람은 [그림 2]의 녹색 발광 물질인 Alq3란 분자를 60 nm 두께로 증착하고 발광을 보조하는 층은 75 nm로 쌓은 후 양 면에 전극을 형성했다. 이 구조를 통해 두 사람은 10 V도 안 되는 전압에서 1000 cd/m2보다 높은 휘도를 구현할 수 있었다. TV의 통상적인 휘도가 대략 500 cd/m2 정도임을 고려하면 당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소자가 내는 밝기에 아마 깜짝 놀랐을 것 같다. 이 연구는 고효율, 고휘도 구현이 가능한 유기발광 소자의 개발 가능성을 최초로 보여주었고 결국 OLED의 상용화로 이어진다.  

탕 박사의 획기적 연구가 발표된 후 전세계 많은 연구자와 회사들이 OLED 연구에 뛰어 들었다. 탕 박사가 발광재료로 활용한 Alq3에 여러 불순물(도펀트라 부른다)을 추가해서 다양한 색상을 내는 저분자 발광 물질들이 연구되었다. 1990년에는 분자량이 큰 고분자형 OLED가 발표되기도 했다[4]. 1990년경 케임브리지 대학의 프렌드Friend 교수팀은 PPVpolyphenylenevinylene라 불리는 고분자 발광층의 양쪽에 전극을 형성한 후 전압을 가해서 세계 최초로 고분자형 OLED를 구현할 수 있었다.

유기물 발광의 물리

앞에서 OLED의 발광 현상을 유기 분자의 궤도를 이용해 단순하게 설명했지만, OLED 속 발광층의 성질은 실리콘(Si)과 같은 반도체 결정이 나타내는 특성과는 많이 다르다. 실리콘 반도체 결정 속 원자들은 규칙적인 간격으로 정렬해 있지만, 발광층 속 유기 분자들의 위치는 규칙적이지 않고 무작위적이다. 일종의 비정질amorphous 유기 박막인 셈이다2. 그래서 OLED의 발광 특성은 박막 전체보다는 주로 유기 분자의 개별적인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실리콘 결정과 같은 고체는 전자들이 점유할 수 있는 에너지띠energy band를 구성하고 띠와 띠 사이의 금지된 에너지 영역인 띠틈bandgap의 간격이 발광 현상에 관련된다. [그림 3]의 왼쪽 그림은 반도체의 에너지띠 구조를 단순화해서 보여주는데, 위쪽으로 갈수록 전자의 에너지가 높은 상태다. 에너지가 낮은 쪽에는 전자들이 점유한 에너지 상태들의 집합인 가전자띠valence band가 보이고 그 위에 전자가 전혀 없는 에너지 상태들로 구성된 전도띠conduction band가 있다. 두 에너지띠 사이에는 고체 속 전자에게 허용되지 않는 에너지 범위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에너지 띠틈이다. 외부에서 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되면 가전자띠의 전자가 띠틈을 넘어 전도띠로 올라갈 수 있다. 이때 가전자띠에는 전자의 빈 자리가 생기는데 이를 정공hole이라 부른다. 원래 음의 전하를 띠는 전자의 자리가 비게 되면 이 빈 자리, 즉 정공은 양의 전하를 띤 입자처럼 행동한다. 전도띠로 올라간 전자가 다시 내려와 정공을 채우면 전자가 갖고 있던 에너지는 빛의 입자인 광자로 방출된다. 광자의 에너지와 색깔을 결정하는 건 결국 띠틈의 크기다.


[그림 3] 반도체와 같은 고체 속 전자의 에너지띠 구조(왼쪽) 및 분자의 전자 오비탈(오른쪽). 어느 쪽이든 외부에너지를 흡수한 전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로 올라가며 빈자리(정공)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된 전자가 다시 내려와 정공을 채우는 과정에서 빛이 방출된다.

 

분자의 경우도 비슷하다. 전자가 채울 수 있는 분자 오비탈들이 [그림 3]의 오른쪽에 보인다. 고체속 에너지띠를 이루는 전자의 에너지 준위들은 거의 연속적으로 분포하지만 몇 개의 원자로 구성된 분자의 오비탈들은 뚜렷이 구분된다. 아래쪽에 위치한 오비탈들은 전자들이 채우고 있는 궤도들인데 이중 에너지가 가장 높은 궤도를 HOMOHighest Occupied Molecular Orbital라 부른다. 반면에 전자의 점유 없이 텅 비어 있는 위쪽 궤도들 중 에너지가 제일 낮은 오비탈을 LUMOLowest Unoccupied Molecular Orbital라 부른다. 외부에서 에너지가 공급되면 HOMO의 전자 하나가 정공을 만들며 LUMO로 올라간다. 음의 전하를 가진 LUMO의 전자와 양의 전하를 가진 HOMO의 정공은 서로 다른 부호로 인해 전기력으로 끌리며 흡사 양성자와 전자가 결합한 수소 원자와 비슷한 결합 상태를 이룬다. 이를 고체물리에선 엑시톤exciton이라 부른다. 반도체와 비슷하게 분자의 LUMO로 여기excitation된 전자가 HOMO로 내려와 정공을 채우면 LUMO-HOMO 사이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광자가 방출된다. LUMO-HOMO 에너지 차이가 바로 분자가 내는 빛의 색깔, OLED의 경우 발광층의 유기분자들이 방출하는 빛의 색깔을 결정한다.

유기 분자로부터 발광을 유도하기 위해선 결국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해 HOMO에서 LUMO로 전자를 하나 올려야 한다. 그런데 다른 방법도 있다. OLED가 쓰는 방법은 음극과 양극을 통해 각각 전자와 정공을 발광층 속 유기 분자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유해 보자. 1층에 농구공의 크기에 딱 맞는 홈들이 파여져 있고 모든 홈에 농구공이 자리잡고 있다. 내가 농구공을 하나 꺼내 2층으로 던지면 1층엔 홈이 하나 비고 2층에 농구공 하나가 자리잡는다. 독자들도 예상했겠지만 1층의 빈 홈이 정공이고 2층에 올라간 농구공이 전자에 비유된다. 2층에서 농구공을 1층의 홈으로 떨어뜨리면 중력에 의한 위치에너지가 공의 운동에너지로 변화되고 이를 이용해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농구공의 위치에너지를 사용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1층에서는 농구공을 1초에 하나씩 바깥으로 빼내고 동시에 2층에 농구공을 같은 속도로 넣어주는 것이다. 2층에 공급되는 농구공들은 1층에 형성되는 빈 홈들로 일정한 비율로 떨어지고 거기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유용한 일에 동원할 수 있다.

OLED의 작동 방식이 정확히 이와 같다. 발광층에서 엑시톤을 만들어 발광을 유도하기 위해 전자와 정공을 효율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그림 4]에 그려진 것처럼 OLED는 음극에서 주입하는 전자와 양극에서 주입하는 정공을 발광층에서 잘 만나게 한 후 이들의 결합으로 광자를 만들어 외부로 빼내야 한다3. 가장 단순하게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 발광층을 넣으면 되겠지만, 전극 물질에서 유기 박막으로 전하들을 주입하기 위해선 전극과 발광층의 경계에서 만들어지는 높은 에너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고전압을 가해야 하나 이는 소비전력의 증가나 소자 수명의 감소로 이어진다. 비유하자면 발광층과 전극을 붙이고 전하를 주입한다는 건 어린이가 자기 앞에 놓인 2미터 높이의 담벼락을 넘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어린이가 담을 안전하게 넘기 위해선 튼튼한 계단을 설치해 단계적으로 높이를 증가시켜 건너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두 전극에서 전자와 정공들을 OLED의 발광층으로 효율적으로 나르기 위해선 음극 주변에는 전자를 잘 주입하고 나를 수 있는 박막들을, 양극 주변에는 정공을 잘 주입하고 나를 수 있는 박막들을 형성해야 한다. [그림 5]에 보듯이 이들을 주입층injection layer, 수송층transport layer이라 이름으로 부른다. 게다가 이들이 발광층을 거쳐 결합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해 지나가지 못하게 반대편에서 이들의 통과를 억제하는 층blocking layer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림 5]는 실제로 사용되는 OLED 속 다층구조의 한 예다. 결국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양 전극에서 동일한 수의 전자와 정공이 동일한 속도로 주입되어 발광층에서 만나 엑시톤을 만든 후 이들이 100% 광자로 변하는 것이다. 발광층에서 만들어진 빛은 투명전극인 양극과 유리 기판을 거쳐 방출되고, 금속으로 이루어진 음극은 빛을 반사시켜 유리 쪽으로 보내는 반사 거울로도 기능한다.


[그림 6] OLED의 발광 재료의 효율과 관련된 형광 발광(위) 및 인광 발광(아래)의 원리를 설명하는 개략도.

 

발광층에서 형성되는 모든 엑시톤으로부터 발광을 유도하는 획기적 방법 중 하나는 인광phosphorescence 물질의 활용이다. 앞에서 HOMO에서 LUMO로 전자가 여기될 때 전자의 스핀을 고려하진 않았다. 전자의 스핀은 입자에 고유한 각운동량을 나타내기 때문에 흔히 전자의 자전으로 비유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거시세계의 회전(스핀)과 대응시킬 수 없는 미시세계의 물리량이다4. 특정 회전축에 대한 구의 회전 방향이 둘(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인 것처럼 특정 방향에 대한 전자의 스핀 상태도 둘인데 이를 보통 스핀 업up과 스핀 다운down으로 나타내고 기호로 표현할 땐 [그림 6]과 같이 각각 화살표 ↑와 ↓로 표현한다.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따르면 하나의 오비탈에는 스핀 업과 다운 상태를 가진, 즉 상태가 다른 두 전자만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그림 6]의 가장 왼쪽 “일중항 바닥 상태”에 표현된 상태다. 엑시톤은 전자들의 개별 스핀으로 결정되는 스핀의 합에 따라 일중항singlet 엑시톤 및 삼중항triplet 엑시톤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림 6]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중항 여기 상태에선 전자의 스핀이 반대 방향이라 스핀의 총합은 0이다. 반면에 삼중항 여기 상태의 경우 두 전자의 스핀이 같은 방향이라 스핀의 합이 0이 아니다.

일중항 엑시톤을 통해 이루어지는 발광을 ‘형광fluorescence 발광’이라고 하고, 일중항 보다 낮은 에너지를 갖는 삼중항 엑시톤을 통해 발광을 하면 ‘인광 발광’이라 부른다. 여기서 자세한 설명을 하긴 힘들지만 양자역학적 규칙에 의하면 원래 25%의 확률로 생성되는 일중항 엑시톤만 발광에 기여하고 75%의 확률로 형성되는 삼중항 엑시톤은 원칙적으로 발광을 하지 않는다. 삼중항 엑시톤의 LUMO에 있는 스핀 업인 전자가 HOMO로 내려오면 동일한 스핀 상태를 가진 두 전자가 한 오비탈을 점유하게 되는데 이는 파울리 배타 원리에 어긋난다. 그런데 만약 어떤 요인으로 전자의 스핀이 뒤집힐 수 있다면 삼중항 엑시톤의 발광 전이가 가능해진다. 1998년 백금과 같은 금속 원소를 포함한 유기금속 화합물을 활용하면 삼중항 엑시톤에서도 발광이 유도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5]. 유기 분자에 포함된 백금이나 이리듐 원소가 만드는 소위 ‘스핀-궤도 결합spin-orbit coupling’에 의해 삼중항 엑시톤의 전자 스핀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전자의 궤도 운동에서는 전자가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 주변을 돌게 되지만 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원자핵이 자기 주변을 도는 걸로 느낀다. 전하의 이동은 전류의 효과를 갖고 전류는 주변에 자기장을 만든다(이것이 전자석의 원리다). 스핀을 가진 전자는 작은 자석으로 생각할 수 있고 원자핵이 만드는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전자의 스핀 상태가 변할 수 있다. 원자핵의 전하량이 클수록 자기장이 강해져 스핀-궤도 결합 효과가 세지기 때문에 원자번호가 큰 중금속이 유기물에 포함된다. 스핀-궤도 결합 효과는 일중항과 삼중항 상태를 혼합해서 [그림 6]의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계간 전이intersystem crossing를 일으키고 그 결과 일중항 엑시톤의 전자가 에너지가 더 낮은 삼중항 엑스톤의 여기 상태로 내려올 수 있다. 일중항과 삼중항 엑시톤 모두 발광에 참여하기 때문에 발광 효율은 100%가 될 수 있다. 현재 상용화된 OLED의 삼원색 물질 중 적색과 녹색 물질은 인광 발광이 가능한 유기 재료가 사용되고 있고 청색만 형광 발광 물질을 사용한다.


[그림 7] 두 종류의 아이패드의 백색 발광 스펙트럼: LCD 방식(위) 및 OLED 방식(아래). 필자가 분광기를 활용해 직접 측정했다.

 

[그림 7]에선 필자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두 종류의 아이패드의 백색광 스펙트럼을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2018년 발매되기 시작한 아이패드 프로 3세대 제품은 LCD를 채택했고 2024년 출시된 아이패드 프로3(M4) 모델에는 최신 OLED 패널이 들어 있다. LCD 방식은 이전 글(각주 1)에서도 설명했지만 청색 LED 위에 적색 및 녹색 형광체를 혼합해 코팅한 백색 LED를 백라이트용 광원으로 사용한다. 스펙트럼을 보면 왼쪽에 청색 LED의 발광 피크가 보이고 이로 여기된 형광체들이 가운데와 오른쪽에 녹색과 적색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형광체의 발광 특성 상 녹색과 적색 피크는 선폭이 넓거나 여러 개의 피크들로 구성되어 있다. OLED의 발광 스펙트럼에선 RGB 부화소에 각각 증착된 청색, 녹색, 적색 유기 재료들이 방출하는 세 피크가 뚜렷이 구분되어 보인다. 아마도 청색은 형광 물질, 녹색과 적색은 인광 물질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두 스펙트럼의 비교에서 바로 알 수 있는 것처럼 LCD에 비해 OLED가 내는 삼원색 스펙트럼의 선폭이 좁고 더 날카롭다. 이는 OLED가 구현하는 빛의 삼원색의 순도purity가 더 높다는 것이고 (미술로 비유하자면 색의 채도가 높다는 의미다) 그 결과 삼원색을 혼합해 구현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의 색상의 범위, 즉 색역color gamut이 LCD에 비해 OLED가 더 넓다. 그만큼 더 풍부한 색감을 화면 상에 구현할 수 있어서 넓은 색역은 OLED 진영이 LCD 진영에 대해 내세우는 대표적인 장점으로 홍보되어 왔다.


[그림 8] 두 종류의 최신 디스플레이 제품의 백색 발광 스펙트럼: 갤럭시탭 S10 울트라 방식(위) 및 갤럭시 폴드6(아래). 필자가 분광기를 활용해 직접 측정했다.

 

[그림 8]은 삼성에서 판매하는 최신 제품 중 태블릿 PC인 갤럭시탭 S10 울트라 모델 및 폴더블폰인 갤럭시 폴드6의 백색광 스펙트럼이 비교되어 있다. [그림 6]의 스펙트럼을 본 독자들로서는 이 두 제품의 스펙트럼이 바로 OLED에 의해 형성된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패드용 OLED도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에서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으니 OLED 패널을 장착한 국내외 최신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발광 스펙트럼이 매우 비슷한 형상을 띠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글을 마치며

OLED에 대한 첫 번째 연재글에서는 유기물 발광의 역사로부터 출발해 OLED의 기본 구조와 발광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아울러 상용화되어 판매되는 OLED 제품들의 분광 특성도 다뤘다. OLED는 원칙적으로 구조가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수분과 산소에 취약한 유기물을 보호하기 위한 봉지재encapsulation의 도입이나 전하 주입과 이동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다양한 기능성 유기 박막의 증착 등의 공정 개발을 포함한 치열한 노력 덕분에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인광 재료의 도입으로 재료의 효율이 큰 폭으로 올라간 점 역시 획기적인 진전이었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한국 기업들의 주도적 개발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고 그 결과 한국 기업들은 OLED의 절대적 강자로 부상했다.

그런데 OLED가 높은 색순도의 스펙트럼을 방출하는 이유에는 발광층을 구성하는 유기 분자들의 성질과 함께 OLED의 독특한 광학 구조가 관련된다. 박막 구조 속 빛의 간섭 효과로 인해 특정 파장, 특정 색깔의 빛이 강화되는 원리가 그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OLED의 광학 구조가 발광 스펙트럼을 어떻게 변조하는지, 그리고 중소형 OLED와 대형 OLED의 차이와 장단점이 무엇인지 다룰 예정이다.

<참고 자료>


[1] [OLED 소재 및 소자의 기초와 응용] (이준엽, 홍릉)

[2] M. Pope 외, “Electroluminescence in Organic Crystals,” J. Chem. Phys. 38, 2032 (1963).

[3] C. W. Tang and S. A. VanSlyke, “Organic electroluminescent diodes,” Appl. Phys. Lett. 51, 913 (1987).

[4] J. H. Burroughes 외, “Light-emitting diodes based on conjugated polymers,” Nature 345, 539 (1990).

[5] M. A. Baldo 외, “Highly efficient phosphorescent emission from organic electroluminescent devices,” Nature 395, 151 (1998).
고재현
한림대학교 반도체 ∙ 디스플레이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