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believe anything, provided that it is quite incredible.
– Oscar Wilde –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 한국 제목 <컨택트>, 원 제목 <Arrival>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갑자기 지구에 도착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지구의 서로 다른 12곳에 갑자기 12척의 외계 비행선이 나타나고 외계인들은 그 안에 설치된 거울looking glass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의 뼈대는 이렇게 나타난 외계인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언어학자인 주인공, 루이스Louise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2016년 최고의 영화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데 아마도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외계인과 생사를 놓고 싸우는 전형적인 SF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관객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외계인과 소통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일까 고민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전혀 다른 사고 구조를 가지는 존재와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하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이점을 감안하여 읽어 주기를 부탁한다.)
영화 <Arrival>이 던지는 이 질문은, 서로 다른 두 종족 사이의 의사소통이 단순히 언어학적으로 복잡하다는 사실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영화의 서술 구조는 처음에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때 매우 혼돈스럽다. 주인공의 딸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음에는 이 딸에 관한 이야기가 주인공이 이전에 겪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무엇 때문인지 곧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영화는 테드 창Ted Chiang의 단편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에 바탕을 두고 있다. 원작 소설이 원래 짧은 소설이기도 하고 영화로 표현하기에 다소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영화에서는 소설과 약간 다른 방식으로 줄거리가 전개된다. 하지만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너”가 주인공의 딸을 의미하는 것이고, 영화에서도 마치 주인공이 딸에게 네 인생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끝났는지) 말해준다는 점에서 핵심적인 구조가 그대로 담겨있다.
놀라운 사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본인의 딸이 머지 않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병으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주인공이 현재 알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딸을 같이 갖게 될 미래의 남편이 현재 외계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같이 일하고 있는 물리학자, 이안Ian이라는 것 마저도 주인공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영화는 SF 영화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미래에 딸에게 불행한 운명이 닥칠 것을 알고, 또한 그로 인해서 자신도 엄청난 슬픔에 빠질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딸을 가짐으로써 얻게 될 사랑이 너무 커서, 정해진 운명이지만 그 길을 걸어 가는 것이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 시간 여행을 다룬 많은 SF 영화의 클리셰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감동적인 점은 불행한 결말로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사랑을 위해서, 예견된 길을 처연히 자유의지로 선택한다는 점이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철학적 문제인 결정론과 자유의지 문제를 이토록 우아하게 해결한 영화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어떻게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비밀은 바로 외계인과의 의사소통에 있다. 외계인은 우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지각한다. 우리가 시간을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흐르는 것으로 지각하는 데에 반해 외계인은 모든 시공간에 벌어지는 일을 한꺼번에 지각한다. 이러한 지각 방식의 부수 효과로 외계인은 미래를 볼 수 있는데, 주인공도 외계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서서히 같은 능력을 갖게 된다. 영화에서 외계인은 우리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영화에서는 이 능력이 “무기weapon”라고 번역되어 큰 위기가 찾아온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가 파멸하지 않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구에 도착한 것이다. (더 자세한 영화 내용은 독자들이 꼭 영화를 직접 보고 알아내기를 바란다.)
필자가 양자역학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 <Arrival>에 대해서 다소 길게 언급한 데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우선 첫 번째, 외계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알게 되면 그들의 능력의 일부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외계인이 물리학자라고 할 때 물리학자들이 쓰는 언어인 양자역학을 이해하게 되면 물리학자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렇게 되면 물리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 즉 물질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통해서 (미약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한꺼번에 꿰뚫어 본다는 것은 외계인이 세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우리가 아는 한 우주 안의 모든 물질을 포함한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은 양자역학에 의하여 기술된다. 그런데 양자역학에 따르면 입자가 초기에 주어진 시간과 위치에서 최종에 도달하게 될 시간과 위치까지 움직일 때, 시공간의 모든 가능한 경로를 다 거쳐서 간다. 어떻게 입자 하나가 동시에 여러 가지의 다른 경로를 거쳐서 움직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타당한 질문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입자가 거쳐서 가는 모든 가능한 경로에는 각각 적절한 가중치weighting factor가 할당되어 있다. 시공간의 초기 점에서 최종 점으로 이동하는 확률은 이 모든 가중치의 합에 의해서 결정된다. 여기서 가중치가 단순히 확률 분포probability distribution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한데, 이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로 하자. 어쨌든, 이렇게 가중치의 합이 취해지는 과정을 전문적인 용어로 경로 적분path integral이라고 부른다.
위에서 설명한 두 번째 의미를 필자가 혼자 영화의 의미를 과도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의심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원 저자인 테드 창 자신이 소설 <Story of Your Life>의 모티브가 빛이 가능한 모든 경로 중에서 가장 빠른 경로를 선택해서 이동한다는 “페르마의 원리Fermat’s principle”에서 나왔고 실제로 이 원리의 양자역학적 버전인 경로 적분을 소설의 내용 속에 담아낼지 말지 고민해 보았다고 창작 노트에 적어 놓았다.
앞선 설명을 약간 더 직관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 문제를 생각할 때, 항상 머릿속으로 입자들이 마치 물결과 같이 파동으로 움직이고, 그 파동들이 서로 부딪히는 상황을 상상한다. 입자는 그 자체로서 점point이지만 그것의 위치는 파동처럼 공간에 퍼져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양을 측정하면, 아무리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반복했다고 하더라도 때에 따라서 측정값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이러한 요동fluctuation은 실험 장비의 불완전성(물론 실제 실험에는 이러한 불완전성이 섞여 있다)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입자의 위치가 파동처럼 퍼져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동을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이라고 부른다.
입자의 위치가 현재 어떤 파동에 의해서 주어진다고 하자. 시간이 흐르면 이 파동은 출렁거리면서 다른 파동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중간에 출렁거리면서 변할 수 있는 방식에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서 이러한 무수히 많은 “출렁거림”이 앞서 언급된 입자가 거쳐가는 모든 가능한 경로이다.
(지금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더욱 어려운 문제는 측정하는 행위 자체가 파동의 움직임을 교란한다는 것이다. 측정으로 인해서 파동이 정확히 어떻게 교란되는가에 대해서는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이라는 정론이 있다. 하지만 이 “정답”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 아직도 많은 물리학자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나중에 필자와 독자, 모두 준비가 될 때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여러 파동들 중에서 어떤 파동은 다른 파동보다 더 중요하다. 이러한 파동은 모든 가능한 “출렁거림”에 할당된 가중치가 서로 상쇄되지 않고 더해져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파동이다. 이렇게 파동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경계 조건boundary condition에 맞추어 정상파stationary wave 혹은 standing wave가 만들어지면 되는데, 이는 마치 피리와 같은 얇은 관에서 공명resonance이 일어날 때 소리가 증폭되는 것과 비슷하다.
정상파도 파동이므로 출렁거린다. 하지만 정상파는 그 이름 그대로 시간에 따라 없어지지 않고 주어진 장소에 머무르는 파동이다. 이러한 파동은 그 자체로서 안정된 구조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웬만한 자극에 영향을 받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그 자체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고 보존되는 물리량physical quantity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가장 중요한 물리량은 바로 에너지energy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소위 닫힌 시스템closed system의 에너지는 언제나 보존된다. 하지만 전 우주를 모두 포함하지 않는 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시스템은 언제나 외부 환경environment과 상호작용을 하게 마련이고, 이 때문에 시스템의 에너지는 바뀔 수 있다. 다행히도 정상파가 가지는 에너지는 정상파가 안정된 구조이므로 특별히 “안정된” 에너지이다. 전문적인 용어로 이러한 에너지 값을 시스템의 에너지 고유값energy eigenvalue이라고 한다.
주어진 시스템에 대해서, 그 시스템에 존재할 수 있는 정상파와 그 정상파의 에너지 고유값을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방정식이 바로 그 유명한 슈뢰딩거 방정식Schrödinger equation이다. 앞서 언급되었듯 정상파가 만들어지는 조건은 피리에서 공명이 일어나는 조건과 원리적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공명을 일으키는 주파수가 불연속적인 것처럼 정상파의 에너지 고유값도 불연속적이게 된다. 불연속적이라는 것은 첫 번째 정상파, 두 번째 정상파와 같이 하나하나 띄엄띄엄 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양자역학에서 양자quantum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이유이다. 다시 말해서, 에너지와 같은 물리량이 어떠한 “최소 기본 양,” 즉, 양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슈뢰딩거가 1926년에 앞으로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될 유명한 방정식을 처음 제안한 논문의 제목이 바로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Quantization as an eigenvalue problem”이다.
앞으로 슈뢰딩거 방정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족하는 해solution인 파동 함수가 일반적으로 어떠한 성질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할 것이다. 특히, 파동 함수는 왜 실수real number가 아니라 허수imaginary number를 포함하는 복소수complex number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복소수가 된다는 것은 어떠한 함의를 가지게 되는지 고찰해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