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중학교는 건물보다 빈 땅이, 돈보다 사람이 더 많았던 옛 시절,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라는 시인의 말이 어울리는 관악산 자락 어딘가에 있었다. 1981년 3월에도, 또 그 전 해에도, 천 명쯤 되는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삭발을 당한 채 신입생이란 이름으로 입학했을 터이다. 그중 한 명은 지금 나이 오십이 되어 이 글을 쓰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이 글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우리가 만났을 때, 선배는 2학년 반장이었고, 후배는 1학년 반장을 하고 있었다. 당시 중학교의 분위기는 참 특이해서 선배 반장들이 후배 반을 돌면서 소위 군기라는 걸 잡아 주었다. 가령 아침 자습 시간에 선배가 순찰할 때 후배 반 애들이 자습을 안 하고 떠든다 싶으면 후배 반장을 불러 반원이 보는 앞에서 본보기로 주먹을 날려 줬다. 그 행위가 무슨 자습 효과를 창출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다만 그래 왔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선배는 물론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어느 날 선배 반장 두 명이 후배 반장 몇 명을 부르더니 독서 클럽을 시작하자고 했다. 독서의 주제가 희한했다. 이광수와 최남선의 일제 시대 변절 행위에 대한 독서를 하자고 했다. 이광수는 그저 교과서에 글이 실리는 유명한 작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웬 변절인가 싶었지만, 선배는 후배가 모르는 많은 걸 아는 듯싶었다. 몇 번의 모임이 있었고, 조숙한 선배와 미숙한 후배 사이에서 알맹이 없는 토론이 몇 번 오갔고, 반포 고속 터미널 부근의 헌책방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나중에 그 조숙한 선배 중 한 명은 S대 법대를, 다른 선배는 S대 물리학과를 들어갔다고 풍문으로 들었다. 선후배는 그렇게 대학교에서 다시 만났지만 도무지 사교성이나 붙임성이라고는 없었던 후배에게 그 선배는 그저 중학교 때 잠시 인연을 나눴던 한 학년 위의 대학교 선배일 뿐이었다. 미국 시애틀에서 대학원생으로 유학 중이던 필자는 학회 참석 차 미국 동부로 여행을 갔다가 잠시 보스턴에 들렀는데, 그곳 어느 대학에서 선배가 마침 유학 중이었다. 선배는 자기가 일하는 연구실을 잠깐 구경시켜주었고, 인사를 나누고, 다시 헤어졌다. 90년대 중반 어느 날이었다.
1999년, 후배는 우연한 기회에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버클리 대학의 물리학과로 연구원 자리를 받아 가게 되었다. 선배도 마침 같은 시기에 학위를 받고는 버클리 대학 연구원으로 온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버클리에서 다시 만났고, 우연히도 같은 동네에 집을 구했다. 가족을 한국에 두고 홀로 와 있던 필자는 선배의 차를 종종 얻어 타고 버클리 대학으로 출근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가 지도교수로부터 받은 임무는 “그래핀 만들기”라고 했다. 후배는 “고온 초전도체의 소용돌이 구조 이론”이라는 당시 꽤 인기 있던 주제를 받아 일을 시작하던 참이었다. 선배가 받은 연구 주제가 시대 흐름과 동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시대를 한참 앞선 것인지 판단하기엔 필자가 너무 미숙했고 바빴다.
“물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당연히 과학적인 질문이고, 과학적인 답변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 쉽겠지만, 필자라면 선뜻 그 답을 내기 힘들 것 같다. 가령 누가 필자에게 “원자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그것들”이란 공리적인 (그러나 매우 정확한) 답변을 줄 수 있지만, 물질의 범위를 정확히 규정해 주는 주기율표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 “힘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물리학자는 “그건 뉴턴 방정식 F=ma에서 왼쪽에 등장하는 그 무엇이오”라고 또 다른 공리적인 답변을 줄 수 있다. 좀 더 인간적인 대답을 바란다면 이렇게 대꾸할 수도 있다. “힘이란 어떤 물체의 속도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량을) 바꿔 주는 그 무엇이오.” 구체적인 표현 방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뉴턴의 역학 법칙이란 체계 속에서 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물질이 무엇이오?”란 질문에 대해 고정적인 대답을 해 줄 근거가 될 물리학 방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이란 단어는 물리학적이면서 동시에 사회학적인 용어다. 힘에는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의 네 가지가 있고, 원자의 종류는 (현재) 118개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물질이 실험실에서 합성되고 중이고, 물질의 범주는 자꾸 넓어지고, 따라서 물질의 정의 역시 팽창하는 중이라고 해야 한다.
동물이나 식물처럼 다양한 종류의 개체가 존재할 때 우리는 우선 그것들을 분류할 방법을 찾고 싶어 한다. 동물에는 포유류와 양서류와 어류와 조류가 있고, 포유류에는 또 무슨 종류가 있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질의 종류를 구분하는 일차적인 방법에는 일단 이전글 “양자 물질의 역사 [3]: 파울리 호텔”에서 다루었던 금속과 비금속의 구분이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물질의 분류법,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분류법은 바로 물질의 “차원에 따른” 분류 방법이다. 물질이라고 하면 왠지 우리 인간이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건 동시에 물질은 너비와 길이와 높이가 있는, 3차원적인 어떤 대상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의미한다.
현대의 물질과학은 이런 경험치에 근거한 편견을 이미 오래전에 극복해버렸다. 물질에는 2차원 물질, 1차원 물질도 있다. 공간에는 세 개 방향밖에 없으니, 차원에 따른 물질의 분류는 1,2,3차원 물질 딱 세 가지로 끝난다. 상자 속에 사과를 차곡차곡 쌓으라는 지시를 받은 사람이 조심스러운 성격이라면 아마 우선 사과를 한 줄 가득 채우고, 그다음 줄을 채워나가는 식으로 결국 상자의 한 층을 다 채울 것이다. 그다음엔 두 번째 층을 완성할 것이고, 그다음은 세 번째 층.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상자를 가득 채워나가지 않을까. 사과 대신 원자를 차곡차곡 채워가면 어떨까. 한 줄로만 원자를 채우면 1차원 물질, 한 층을 원자로 가득 채우면 2차원 물질, 그리고 상자를 가득 원자로 채우면 3차원 물질이 된다.
금목걸이는 몇 차원 물질일까? 아니 좀 더 극적인 예를 들어, 머리카락은 몇 차원 물질일까? 머리카락의 두께는 0.1 밀리미터 정도라고 하니, 상당히 가늘기는 하지만 원자 하나의 두께로 환산해 보면 원자 수십 만개를 나란히 포개고도 남을 두께다. 머리카락이나 금목걸이 모두 당당한 3차원 물질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포착되는 물질은 모두 3차원 물질이다. 2차원이나 1차원 물질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보다는 주로 실험실에서 합성된다.
예를 들어 실리콘 덩어리의 표면에 금 원자나 철 원자를 잘 배열하면 원자가 일렬로 나란히 정렬하게끔 만들 수 있다. 콩깍지 속에 콩이 가지런히 일렬로 배열되는 것처럼, 실리콘 원자들이 고맙게도 콩깍지 구실을 해 주는 덕분에, 금이나 철 원자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흐트러지지 않는다. 원자 한 줄보다 더 가는 줄은 물리적으로 아예 만들 가능성조차 없다 보니, 이 정도면 완벽한 1차원 금줄, 아니면 쇠사슬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설득력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살짝 염려스러운 점이 있다. 이 금줄이 실리콘 판을 벗어나서는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치 콩깍지에서 탈출한 콩이 제멋대로 흐트러지는 것처럼, 실리콘 기판의 잡아매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금 원자는 더 이상 가지런히 일차원으로 정렬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다. 물질이라면, 외부 세계의 도움이 없어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1차원이나 2차원 물질을 접하기 힘든 이유도 그런 것이다. 낮은 차원의 물질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면 뭉쳐서 3차원 물질로 바뀌어 버린다. 자연은 인간이 원하는 것 중 극히 일부만 허락해 주는 엄한 부모 같다. 1차원 금목걸이도 금지 품목 중의 하나다. 그러나 가끔은 “예외 조항”이란 것이 있다. 어떤 특별한 원자에 대해서는 3차원, 2차원, 1차원 구조까지 모두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한다.
탄소. 석탄의 재료와 같다고 해서 이름을 炭素라고 붙인 원소다. 라틴말로 숯을 가리키는 단어는 carbones다. 영어로는 탄소를 carbon이라고 부른다. 숯의 주요 성분이 되는 이 원소를 이렇게 이름 붙인 인물은 18세기 중후반을 살다 간 프랑스의 위대한 화학자 라부와지에Antoine Lavoisier라고 한다. 숯덩이와 다이아몬드가 사실은 동일한 원소, 즉 탄소로 구성된 물질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알아낸 사람도 라부와지에라고 한다. 숯덩이가 3차원 물질이라는 걸 설득시키는 데는 아무런 노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바베큐를 만들 때 숯덩이를 한 움큼 통에 넣고 불을 붙여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탄소로 만들어진 나머지 차원의 물질은 우리에게 훨씬 덜 익숙하다.
1차원 탄소 구조물은 탄소 나노튜브라고 한다. [그림1]처럼, 탄소를 마치 빨대 모양으로 말아서 만들어진다. 빨대의 반지름은 원자 몇 개를 합친 길이밖에 안 되고, 대롱 방향으로는 꽤 길게 만들어져있으니, 1차원 물질이라고 부를 만 하다. 선배가 버클리 대학에서 일을 시작할 무렵, 이미 1차원 탄소 나노튜브에 대한 연구는 “정상 과학”의 단계를 걷고 있었다. 정상 과학의 정의를 얘기하자면 토마스 쿤의 이론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막상 현실 세계에서 연구에 분주한 과학자들에게 이 단어는 “새로운 결과는 여전히 나오지만 놀랄만한 결과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그런 상황을 가리킨다. 탄소 과학자들에게 남은 “블루 오션”은 2차원 탄소 물질, 그래핀이었지만 그 점을 제대로 감지한 사람은 아직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1999년 당시 세계 어느 곳의 과학자도 그래핀을 제대로 합성하거나 분리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뭔가 마법의 지팡이나 연금술 따위가 필요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흑연黑鉛, ‘검은색 납’이란 의미이란 물질은 참 신기하다. 예를 들어 흑연으로 만들어진 연필심을 보면 3차원짜리 고체 덩어리가 분명한데, 종이 위에 글씨를 쓸 때는 연필심의 껍질이 살살 벗겨져서 글자로 변한다. 3차원 물질이었던 연필심이 2차원적인 글자로, 별다른 연금술적 도움 없이 손끝에서 변한다. 크레용에도 비슷한 성질이 있다. 크레용은 양초와 동일한 파라핀 성분에 색을 내는 염료를 섞어 만든 물질이다. 크레용의 미끄럽고 잘 벗겨지는 성질은 파라핀에서부터 나온다. 파라핀은 탄소와 수소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분자다. 그 분자들이 아주 약한 힘으로 느슨하게 결합해서 고체 덩어리를 겨우겨우 만들어 놓은 게 양초다. 그래서 양초나 크레용은 조금만 힘을 줘도 껍질이 슬슬 벗겨진다. 연필심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길래 그렇게 힘없이 벗겨질까. 연필심은 오직 탄소로만 만들어져 있고, 탄소 원자 사이의 결합은 자연이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화학적 결합 중 하나다. 똑같은 탄소 원자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종이 위에 아무리 문질러도 다이아몬드 가루가 묻어나오지 않는데 말이다. 그 비밀은 흑연이란 물질의 특이한 결합 구조에 있다.
흑연은 자신의 전후좌우에 있는 탄소 원자들끼리만 강하게 결합한다. 예를 들어 3층짜리 건물이 있는데, 1층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손에 손을 꽉 잡고 있고, 2층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강하게 손을 잡고 있고, 3층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서로 손을 꽉 잡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각 층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잡고 잡힌 손 때문에 꼼짝도 못 하겠지만, 서로 다른 층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상호 작용도, 어떤 제약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고질라의 손이 나타나서 3층에 있는 사람들을 몽땅 낚아챈다고 해도 2층이나 1층 사람들이 함께 엮여서 끌려나갈 이유가 없다. 흑연 속에 있는 탄소 원자들이 손을 잡고 있는 꼴이 바로 이렇다. [그림2]처럼 같은 층에 있는 탄소 원자들끼리는 엄청나게 강한 결속을 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층에 있는 원자들끼리는 서로 나몰라라 하는 구조다. (탄소 원자는 팔이 세 개씩 있기 때문에 그림처럼 세 군데의 이웃과 서로 강하게 손을 잡는다.) 연필심을 종이에 꾹꾹 누르면 위층에 있는 탄소층부터 한 꺼풀씩 벗겨져서는 종이 위에 버려진다. 남아 있는 흑연 친구들은 손을 잡아 주지 않는다. 탄소끼리 손을 잡고 있는 한 층짜리 구조를 그래핀이라고 부른다. 흑연은 그래핀이 차곡차곡 쌓여 만든 3차원 구조물이다.
선배는 그래핀을 흑연으로부터 분리해내는 문제를 두고 꽤 오랫동안 씨름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 채 버클리 대학에서의 연구원 일을 끝냈다. 다행히 그의 실력과 잠재력을 알아본 미국 동부의 명문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선배에게 제안했다. 필자는 한국의 어느 대학교에 자리를 잡았고, 우리는 나름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버클리에서의 마지막 여름을 가끔 테니스를 치면서 즐겁게 마무리했다. 2001년 여름이었다.
귀국한 필자는 한동안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선배와의 재회는 2005년 가을에야 이루어졌다. 미국의 명문 대학 물리학과 몇 곳을 벤치마킹해 오라는 임무가 필자에게 주어졌고, 때마침 선배가 있던 동부 명문 대학이 대상 대학 중 하나였다. 선배의 도움을 받아 벤치마킹 업무를 무사히 마치고는 학교 부근에 있는 간소한 이태리 식당에서 파스타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선배의 최근 관심사에 관해 들을 기회가 생겼다. 버클리 대학 연구원 시절 시작한 그래핀 문제를 아직 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그래핀을 성공적으로 분리해 내는 방법이 세상에 알려졌다고 했다.
놀랍게도, 아니 우스꽝스럽게도 그 비법은 스카치테이프였다. 2018년 개봉된 영화 <스카이스크레이퍼skyscraper>에서 주인공 역할을 했던 드웨인 존슨이 남긴 명대사 “If you can’t fix it with duct tape, then you ain’t using enough duct tape”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 연금술적 비법은 이러했다. “연필심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뗀다. 테이프에 연필 가루가 묻어난다. 그 테이프를 유리판 위에 문지른다. 그럼 테이프에 묻었던 연필 가루가 유리판에 옮겨붙는다. 현미경으로 유리판을 잘 관찰한다. 한 장짜리 그래핀이 보인다.” 이 엉뚱한 방법을 제안한 가임Andre Geim과 노보슬레프Konstantin Novoselov, 두 명의 물리학자 이름을 접한 것도 그날 선배를 통해서였다.
비록 그래핀 분리 방법을 착안하는 데는 선수를 빼앗겼지만, 스카치테이프 방법을 얼른 배운 선배는 그 무렵 그래핀 한 장짜리를 놓고 한 실험에서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고, 곧 최고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으로 실릴 것이라는 귀띔을 해주었다. 선배가 관측한 재미있는 현상이란 건 그래핀에서의 양자 홀 효과였다. 아쉽게도, 양자 홀 효과에 대한 박사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필자에겐 그 관측이 멋진 결과이긴 했지만 특별히 새롭고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저 “그래요? 재미있네요.”라는 의례적인 대꾸만 하고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진 기억이 없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서 시차 적응이 덜 된 탓이었을까, 아니면 필자의 물리를 보는 안목이 부족했던 것이었을까. 어쨌든 그날로부터 불과 5년 후인 2010년, 가임과 노보슬레프가 그래핀을 성공적으로 분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고, 그래핀은 물성 물리학에서 가장 폭넓고 치열한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로 자리 잡게 된다.
양자홀 효과는 1980년에 발견된 현상이다. 가운데 딸기잼이 얇게 발라진 샌드위치를, 그런데 보통 샌드위치와는 달리 위쪽은 호밀빵, 아래쪽은 귀리빵을 이용해 만든 샌드위치를 한 번 생각해 보자. 호밀빵 – 딸기잼 – 귀리빵, 이런 층 구조를 상상해보자. 양자 물성 실험실에서 만드는 샌드위치에서 호밀빵과 귀리빵은 서로 다른 물질로 만들어진 두 장의 절연체로 대체된다. 딸기잼은 절연체 사이에 낀 아주 얇은, 그러니까 2차원적인 자유 전자의 층을 가리킨다. 자리를 잘 골라 땅을 깊이 파기만 하면 저절로 물이 고여 우물이 되듯, 적당한 절연체 물질 두 가지를 골라 접합시키면, 그 사이에 “양자 우물”이 생기고, 물 대신 전자가 거기 고인다. 그렇게 고인 전자들은 위아래의 절연체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오직 2차원에서만 (즉 딸기잼이 발라진 면에서만) 운동할 수 있다. 이렇게 양자 우물 속에 고인 2차원 전자의 세계에 대단히 강한 자석을 동원해 자기장을 걸어주고, 홀 저항이란 양을 측정해 보면 어떤 특정한 상수를 정수로 나눠준 값만 관측되는 특이한 일이 벌어진다. 전기 회로나 전자 제품에 대한 상식이 조금만 있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어떤 금속 물질이든지 일정한 저항값을 갖는데, 그 구체적인 값은 물질마다 제각각이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2차원 전자계의 홀 저항은 놀랍게도 자연의 기본 상수인 플랑크 상수 h와 전자의 전하량 e를 이용한 특별한 조합, 즉 h/e2 에 해당하는 값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h/e2 값을 계산해 보면 25812옴(Ω)이란 저항값이 나온다. 양자 홀 효과를 보이는 2차원 전자계에서 홀 저항을 측정해 보면 25812Ω, 25812/2 Ω, 25812/3 Ω, 이런 값만이 관측된다. “양자 물질의 역사 [1]: 최초의 물질 이론”에서 원자의 구조를 어떤 정수값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2차원 전자계란 물질계는 수없이 많은 전자들이 2차원의 거대한 운동장을 마구 뛰어다니는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이런 정확한 정수 값으로 그 상태가 구분 지어진다.
그래핀은 완벽한 2차원 금속이다. 단 한 겹의 탄소 원자층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이보다 더 얇은 금속막은 상상할 수도, 만들 수도 없다. 따라서 그래핀에 강한 자기장을 가했을 때 양자화된 홀 저항이 관측될 것으로 기대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그래핀에서는 매우 독특한 변화가 하나 생긴다. 정수가 아니라 반정수 값, 그러니까 25812/(0.5) Ω, 25812/(1.5) Ω, 25812/(2.5) Ω, 이런 홀 저항 값이 측정된다. 그 이유는 그래핀의 자유 전자가 “상대론적”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를 초당 2미터씩의 속력으로 움직이게 하고 싶으면, 같은 물체가 초당 1미터씩 움직일 때에 비해 네 배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에너지)는 (속력)2에 비례한다. 물리학적으로 좀 더 정확히 그 관계를 표현하고 싶으면 운동량이란 개념을 도입해서 (에너지)는 (운동량)2에 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다: \(E\propto { p }^{ 2 }\).이런 관계를 만족하는 입자를 비상대론적 입자, 또는 고전적 입자라고 부른다. 뉴턴이 만든 고전 역학 체계에서 이런 관계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에서는 입자의 운동 속도가 빨라질수록, 즉 운동량이 커질수록 이 관계식이 차츰 붕괴한다. 어떤 입자도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는 없지만, 빛의 속도에 매우 근접할 수는 있다. 거의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입자라면, 에너지와 운동량이 서로 비례하는 관계로 바뀐다. 고전적 입자는 에너지가 운동량의 제곱에 비례했는데 말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에너지와 운동량이 서로 비례하는 입자는 상대론적 입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건 이론에 바탕을 둔 예측일 뿐, 정말로 어떤 입자가 상대론적으로 거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특히 상대론적인 운동을 하는 입자는 모두 소립자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존재여서, 그 거동을 개별적으로 관찰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 여러 가지 간접적인 유추를 통해 상대론적인 운동의 여부를 대신 가려낼 수밖에 없다. 그런 유추를 돕는 것이 바로 이론 물리학자의 역할이다.
이론적 계산은, 상대론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전자가 양자 홀 효과를 보일 경우, 그 신호는 정수 값이 아닌, 반정수 값에서 관측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미 보여준 상태였다. 선배의 실험은 이 반정수화 된 양자 홀 숫자가 그래핀이란 물질에서 아름답게 구현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정수값, 가령 1을 측정하는 것과 반정수값, 가령 1/2을 측정하는 것은 큰 차이다. 저항을 재는 기계의 눈금이 무례 두 배나 차이 날 테니 말이다. 따라서 홀 효과 측정만으로도 전자의 속성이 상대론적인지, 아니면 비상대론적인지 정확하게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래핀 속의 전자는 이론에서 예측한 그대로, 상대론적 입자처럼 거동한다는 점을 선배의 실험이 입증해 주었다. 이번 글과 다음 연재글에서 다루게 될 상대론적 입자가 지배하는 양자 물질세계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실험이었다.
선배는 그날, 그래핀에서 양자 홀 효과를 측정했다는 소식과 함께 필자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이미 1980년대부터 잘 알려진 대로, 양자 홀 효과에는 정수 양자 홀 효과와 분수 양자 홀 효과의 두 종류가 있다. 기본 저항의 단위인 25812 Ω을 정수로 나누기한 값으로 저항이 관측되면 정수 양자 홀 효과, 25812 Ω 을 어떤 홀수 정수로 곱한 값, 가령 25812×3 Ω, 25812×5 Ω에서 저항이 관측되면 분수 양자 홀 효과라고 한다. (왜 분수인지는 저항 값 대신 그 역수를 생각해 보면 된다. 3, 5가 ⅓, 1/5로 바뀌게 되니까 분수다.) 자기장을 차츰 더 세게 걸어주다 보면 정수 홀 효과가 분수 홀 효과로 바뀌어 나타난다는 사실이 2차원 전자계(딸기잼)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래핀이란 상대론적 전자계에서도 분수 홀 효과가 관측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은 당연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선배가 질문을 던진 그 당시에는 아직 그래핀의 분수 홀 효과가 관측되지 않고 있었다.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미 분수홀 효과가 관측된 2차원 전자계와 그래핀 전자계 사이에는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훨씬 많아 보였다. 때마침 선배를 방문한 직후, 버클리 대학의 예전 지도 교수를 방문할 일정이 있었기에 필자는 그 질문을 그에게도 던져 보았다. 그도 역시 비관적인 의견을 보였다. 자신감을 얻은 필자는 즉시 선배에게 이메일 답장을 썼다. 몇 가지 그럴듯한 이유와 함께 그래핀에서는 분수 양자홀 효과를 관측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09년, 선배는 그래핀에서 분수 양자 홀 효과가 관측되었음을 알리는 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한다.
필자가 선배를 또 한 번 만났을 때는 2007년 1월쯤이었던 것 같다. 이미 그래핀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끌기 시작한 선배는 그 모든 일이 시작되었던 버클리 대학에 세미나 발표를 위해 잠깐 들렀고, 필자는 같은 곳에서 첫 안식년을 보내던 참이었다. 오클랜드항의 하역장 야경이 보이는 어느 딤섬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후에도 선배가 한국을 방문할 때 학회장에서 마주친 경우는 있지만, 필자의 관심사는 다강체, 스커미온 자성체 등으로 이미 떠나 있었고, 선배와의 학문적 접점을 찾을 기회는 얻지 못했다.
필자와 선배의 의미 있는 다음 만남은 2015년 미국 보스턴에서 있었다. 세계적인 그래핀 학자로서 명성이 자자했던 선배는 보스턴 어느 대학교의 종신 교수 자리를 받아 옮겨 왔고, 필자는 두 번째 안식년을 같은 도시에서 보내던 참이었다. 하버드 광장Harvard square으로 알려진 일대에는 아담한 가게와 매력적인 식당이 많은데, 그중에 핫초콜렛을 잘 만들기로 유명한 가게가 하나 있었다. 마침 눈이 펑펑 쏟아지던 2월의 어느 날, 쏟아지는 눈을 피하려고 두툼한 외투에 털모자를 뒤집어쓴 채 나타난 선배와 함께 진한 핫초코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새 직장에서 실험실을 재건하는 일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날 선배는 엉뚱한 제안을 했다. 수학자, 이론물리학자, 실험물리학자가 모여 서로 각자가 알고 있는 위상수학, 위상물리에 대한 얘기를 해보면 재미있지 않겠냐고. 중학교 시절 독서 모임을 제안했던 선배의 엉뚱함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추진력이 강했던 선배는 그다음 해 겨울, 그러니까 2016년 1월, 서울대학교에서 수학자 한 명, 이론물리학자 두 명, 실험물리학자 한 명이 번갈아 가면서 강의하는 모임을 주관했다. 이론 물리학자 중 한 명이었던 필자는 양자 물질에서 발견되는 각종 위상 숫자에 대해 강연했고, 선배는 두 장의 2차원 물질이 서로 엇갈려 쌓여 있는 모아레moire 구조에서 발견된 양자홀 효과에 대해 강연했다.
모아레 구조. [그림3]처럼 동일한 줄무늬 두 장을 살짝 각도를 틀어 겹쳐 보거나, 아니면 간격이 약간 다른 두 장의 줄무늬를 겹쳐 보면, 본래 줄무늬에는 없었던 새로운 구조의 무늬가 문득 드러난다. 이렇게 두 장의 엇비슷한 구조를 겹쳤을 때 발현되는 새로운 구조를 모아레 구조, 모아레 무늬라고 부른다. 비슷한 원리로 인해 고운 비단 스카프 두 장을 겹쳐 보면 밝고 어두운 무늬가 드러날 때도 있다. 모아레의 어원은 본래 이렇게 천 두 장을 겹쳤을 때 나오는 무늬를 말한다. 새로 등장하는 “발현된” 무늬는 본래 무늬의 간격보다 훨씬 크다. 촘촘한 비단의 낱줄 간격을 눈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두 비단을 겹쳤을 때 발현되는 모아레 구조는 크고 눈에 잘 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라는 재료로 짠 일종의 아주 얇은 천이다. 두 개의 천이 겹치면 두 장짜리 그래핀이 되고, 수도 없이 많은 그래핀이 차곡차곡 쌓이면 흑연, 석탄, 연필심이라고 부르는 물질이 된다. 두 장짜리 그래핀을 살짝 어긋나게 포개면 어떻게 될까. 마치 위에서 본 첫 번째 모아레 구조 [그림3-1]처럼, 한 장의 그래핀 위에 다른 그래핀을 각도 1도 정도 틀어서 올려놓으면 어떻게 될까. 방법은 또 있다. 위에서 본 두 번째 그림인 [그림3-1]처럼 그래핀과 비슷하지만 크기가 살짝 다른 또 다른 2차원 물질을 얹으면 어떻게 될까. 탄소는 주기율표에서 여섯 번째로 등장하는 원자 번호 6인 원자이고, 그 좌우에는 붕소(원자 번호 5, Boron)와 질소(원자 번호 7, Nitrogen)가 있다. 탄소 원자 대신 붕소와 질소를 절반씩 섞어 잘 합성하면 그래핀과 똑같은 육각 격자이긴 하지만, 탄소 자리에 붕소와 질소가 번갈아 들어간 질화붕소가 만들어진다. 질화붕소의 기하학적 구조는 그래핀과 동일하지만 그 크기는 그래핀과 다르다. 질화붕소 한 장과 그래핀 한 장을 겹치면 살짝 다른 격자의 크기 때문에 모아레 구조가 형성된다.
모아레 구조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가령 작은 사과를 한 줄로 나란히 배열한다고 하자. 그 위에는 그보다 크기가 살짝 큰 사과를 일렬로 배열한다.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작은 사과 10개를 채울 때 큰 사과는 9개밖에 채우지 못한다. 이렇게 두 줄로 쌓은 작은 사과-큰 사과 모양을 멀리서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면, 마치 작은 사과 10개를 채울 때마다 모양이 반복되는 꼴로 보일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사과의 크기보다 훨씬 더 큰 크기의 구조가 새롭게 “발현”된 셈이다. 이렇게 자연이 허락하는 눈속임 효과를 잘 이용하면 두 장의 그래핀을 서로 꼬아 올리거나, 그래핀 위에 비슷하지만 살짝 다른 물질을 얹는 방법으로, 본래의 원자 간격보다 훨씬 큰 간격을 가진 초구조superstructure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선배는 그래핀 위에 질화붕소를 얹어서 생긴 모아레 구조체에서 관측된 양자홀 효과에 대해 강연했다. 아뿔싸, 선배가 강연에서 얘기했던 새로운 종류의 양자 홀 효과, 호프스태터 나비Hofstadter butterfly는 필자가 대학원에서 지도교수에게 받은 첫 연구 주제였다. 이번에도 필자는 선배의 강연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실험적으로는 대단한 노력이 들어간 성과였다는 걸 알았지만, 이론가인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뒤인 2018년, 그래핀을 이용한 모아레 구조체는 전 세계 응집 물리학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새로운 물성 연구 분야로 부상하는 중이다.
곰곰 생각해 본다. 왜 2005년의 만남에서 필자는 그래핀의 중요성을 감지하지 못했을까? 왜 2016년 만남에서는 모아레 구조의 중요성을 감지하지 못했을까. 어떤 의미에선 필자가 지나치게 이론적인 이론 물리학자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양자 홀 효과는 필자의 박사 논문 주제였다. 모아레 구조에서 발견된 호프스태터 나비 효과는 필자의 지도 교수였던 사울레스David Thouless, 201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가 1982년 그의 기념비적 논문에서 이미 다룬 문제였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론 물리학자들에겐 이미 친숙한 얘깃거리였다. 물론 좀 더 탁월한 이론물리학자라면 똑같은 상황에서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더 주목했을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대사가 떠오른다. 까다롭기도 악명 높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 앞에서 어느 직원이 모양도 색깔도 엇비슷한 허리띠 두 개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던 여주인공 앤디(앤 해서웨이)는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만다. 그 모습을 본 패션 잡지 편집장 미란다는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 앤디가 입고 있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파란 스웨터가 사실은 수십 년 전 어느 디자이너의 영감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막힘 없는 대사로 지적하면서 앤디에게 패션이 뭔지 한 수 가르쳐 준다. (그 동영상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같은 양자홀 효과처럼 보이지만, 2차원 전자계에서 관측된 양자 홀 효과와, 그래핀이 보이는 양자 홀 효과와, 모아레 구조에서 보이는 양자 홀 효과는 섬세한 의미에서 보면 서로 다른 현상이었다. 파인만은 나노 과학을 주창하는 그의 강연문을 “There i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이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필자가 한 마디 더하자면 이 바닥의 방은 늘 문이 열려 있는,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그런 방이 아니다. 오히려 해리 포터의 마법 학교 호그와트에 있던 필요의 방Room of Requirement처럼 필요한 게 무엇인지 뚜렷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출입문이 열리는 그런 방이다. 물리학자 사이의 안목의 차이는 앤디와 미란다의 패션 안목 차이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필자와 선배와의 가장 최근 만남은 2019년, 올해 여름에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매콤달콤한 맛의 양념으로 버무린 코다리찜으로 점심을 나누면서 요즘의 연구 관심사를 설명해 주었다. 여전히 모아레 구조체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었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 보였다. 듣다 보니 중학교 시절의 엉뚱한 발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소심한 후배는 뭔가 많이 알고 있는 선배에게 이제는 제대로 한 번 빠져 볼 참이다. 어쩌면 그 필요의 방이 이번엔 필자에게도 열릴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