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현대과학에서 널리 존경받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필자 또한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깊이 감명을 받은 바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the special theoryof relativity은 고전역학에 반하는 두 가지 가정에서 출발한다. 첫 번째 가정은 임의의 관성계에 있는 두 관측자에게 동일한 물리학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즉, 빛에 대한 파동 방정식이 같은 모양이 되어야 한다는 가정이다. 두 번째 가정은 진공에서 빛의 속도는 관측자에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기존에 알려진 로런츠 변환Lorentz transformation을 이용하면 관측자와 관계없이 동일한 빛에 대한 파동 방정식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마이켈슨-몰리 실험Michelson-Morley experiment, 시간 팽창, 길이 수축, 질량-에너지 등가, 상대론적 질량 등을 일거에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라모어Joseph Larmor는 로런츠Hendrik Lorentz보다 2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보다 7년 앞서서 시간팽창 그리고 길이수축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은 이전의 논문 결과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빛의 속도는 관측자에 무관하게 동일하다는 가정 속에 통합함으로써 특수상대론을 확립하였던 것이다. 지식보다 상상이 더 중요하다고 한 그의 말이 이해가 된다. 알려진 사실을 새로운 시각과 가정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통합하는지가 과학을 진보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교과서로 과학을 배울 때, 우리는 파울리 배타원리Pauli exclusion principle같이 연구자 이름이 붙은 원리 또는 법칙에 관해 배운다. 이러한 학습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 연구자가 관련 원리 및 법칙을 발견하고 증명했다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게 된다. 그런데 그 연구자가 해당 원리나 법칙을 최초로 발견하거나 증명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10년, 20년, 또는 30년이 지나서 알게 된다면 기분이 어떠할까? 오랫동안 영웅으로 삼았고 존경해 마지않았던 과학자에 대한 환상이 일거에 깨지는 기분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양자 상태에 두 개의 동일한 페르미 입자는 있을 수 없다. 좀 더 기술적으로 쓰자면, 두 개의 동일한 페르미 입자의 전체 파동함수는 페르미 입자의 바뀜에 대해 반대칭이다. 원자 안의 전자에 적용하면, 두 전자가 같은 양자수를 가질 수 없다.”
파울리는 명실공히 새로운 양자상태 개념에만 의존한 원소의 주기율적 성질에 대해 위와 같은 설명을 얻어냈다. 그런데 영국의 물리학자 스토너Edmund Stoner는 파울리보다 1년 앞선 1924년 전자구조 연구를 통해서 배타원리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파울리는 배타원리의 중요성을 남달리 강조했다고 한다. 그의 적극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후세 사람들은 배타원리를 논할 때 스토너 대신파울리를 언급하게 되었다.
스티글러의 법칙
스티글러Stephen Stigler는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통계학자이다. 스티글러는 1980년 하나의 법칙을 발표했다. 이를 법칙이라고까지 명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나름 흥미로운 면이 있다. 스티글러의 명명법칙Stigler’s law of eponymy은 과학사에 나타나는 명명법칙에 관한 통계결과를 다룬 것으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어느 과학상의 발견도 원래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지 않는다.”
스티글러의 법칙도 이 법칙의 지배를 받는데, 이 법칙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머튼Robert Merton이라고 한다. 보이어Carl Boyer도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수학공식, 정리의 이름이 최초 발견자의 것으로 정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과학사에 존재하는 일종의 사회학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최초의 발견자가 아닌 사람의 이름이 과학상의 발견자로 등재되는 예는 실제로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수학의 왕자라는 별칭을 지닌 수학자 가우스Carl F. Gauss는, 분명 해당 항목에 대한 최초의 연구자가 별도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우스의 정리, 가우스 분포, 가우스 소거법 등 가우스의 이름으로 명명된 정리 및 법칙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페르미 황금률Fermi’s golden rule은 디랙Paul Dirac이 20년 앞서서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양자역학에서 페르미 황금률Fermi’s golden rule은 하나의 고유상태에서 여러 에너지 고유상태의 연속체로 전환되는 전이율(단위 시간당 전이 확률)을 계산하는 방법으로써, 미동이론perturbation theory을 이용하여 유도된다.”
물리학과 수학을 중심으로 봤을 때 스티글러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례는 아래와 같다. 좌측에 표시된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식 혹은 법칙이고, 우측은 처음으로 해당 연구를 수행한 인물이다. 이 리스트를 보면서 과학 연구의 자세한 부분과 치열했던 당시의 논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아하로노프-봄 효과Aharonov-Bohm effect − W. Ehrenberg, R. E. Siday : 하전 입자가 전기장, 자기장이 없는 상황에서도 전자기적 퍼텐셜에 영향을 받는 양자역학적 효과이다. 하전 입자 파동함수의 복소 위상이 전자기적 퍼텐셜과 결합하는 것이다.
- 아레니우스 방정식Arrhenius equation − J. H. van’t Hoff : 물리화학에서 다루는 반응률의 온도 의존성을 나타내는 공식이다.
- 오제 효과Auger effect − L. Meitner : 들뜬 상태에 있는 원자가 X-선을 외부에 방출하는 대신 궤도전자를 방출함으로써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옮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 쿨리-튜키 알고리듬Cooley-Tukey algorithm − C. F. Gauss : 쿨리-튜키 알고리듬은 재귀적으로 분할하여 이산 푸리에 변환을 수행하고 합치는 방법을 지칭한다. 대부분의 고속 푸리에 변환에 사용된다.
- 퀴리 점Curie point − C. Pouillet : 강자성체가 강자성 상태에서 상자성 상태로 변하거나 그 반대로 변하는 전이온도를 말한다.
- 드 모르간의 법칙De Morgan’s law − J. Buridan : 논리학이나 집합론에서 논리곱, 논리합, 부정 연산간의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 오일러의 수Euler’s number − J. Bernoulli : 오일러의 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 e }=\sum _{ n=0 }^{ \infty }{ \frac { 1 }{ n! } } \)
- 오일러의 공식Euler’s formula − R. Cotes : 실수 \(x\)에 대해서 허수 \(ix\)를 정의할 때, 오일러 공식은 다음과 같다. \(e^{ ix }=\cos { (x) } +i\sin { (x) } \)
- 벤 다이어그램Venn diagrams − L. Euler : 서로 다른 집합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다이어그램이다.
- 가우스의 정리Gauss’s theorem − M. V. Ostrogradsky : 벡터 장의 선속이 그 발산의 삼중 적분과 같다는 정리이다.
- 가우스 분포Gaussian distribution − A. de Moivre : 연속 확률분포의 하나이다. 평균과 표준편차에 의해서 모양이 결정된다. 평균이 0이고 표준편차가 1인 가우스 분포를 표준 정규분포라고 한다.
- 가우스 소거법Gauss elimination − Simpson : 연립일차방정식을 풀이하는 알고리듬이다. 일부 미지수가 점진적으로 소거되어 결국 남은 미지수에 대한 선형 결합으로 표현되면서 풀이가 완성된다.
- 허블의 법칙Hubble’s law − Lemaître : 먼 우주로부터 오는 빛의 적색 편이는 거리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 로피탈의 규칙L’Hôpital’s rule − J. Bernoulli : 도함수를 통해 부정형의 극한을 구하는 정리이다.
- 메트로포리스 알고리듬Metropolis algorithm − E. Fermi, S. Ulam : 직접적으로 표본을 얻기 어려운 확률분포로부터 표본의 수열을 생성하는데 사용하는 기각 표본추출 알고리듬이다.
- 스털링의 근사Stirling’s approximation − A. de Moivre : 큰 계승, 즉 \(N!\)을 근사하는 방법이다. \(N! \sqrt { 2\pi N } { (N/{ e }) }^{ N }\)
- 스토크스의 정리Stokes’ theorem − L. Kelvin : 매끄러운 다양체 위의 미분 형식의 적분에 관한 정리이다. 미분 형식의 외미분을 다양체에 적분한 값은, 그 미분 형식을 다양체의 경계에 대하여 적분한 값과 같다.
과학사의 풍경들
과학의 역사는 예상 밖의 방향으로 상황이 급전되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쪽으로 편집된 결과들로 점철되어 있다.
라이트 형제Wilbur Wright, Orville Wright의 비행이 인정받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최초의 비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논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이유들이 있다. 자전거 제작에 대한 전문가로서 기계 제작에 깊은 노하우를 가졌던 라이트 형제는 당시 비행기가 가능하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과 정보를 수집하였다.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강력한 엔진 제작이 아닌 섬세한 비행기 조종이라는 관점에서, 비행에 필요한 날개 구조와 엔진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반면에 당대에 엄청난 권위를 갖고 있었던 물리학자 켈빈(William Thomson과 Lord Kelvin 동일인으로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은 1902년 비행기가 불가능함을 이론적으로 계산했다고 주장했고 사람들은 켈빈의 주장을 신뢰하였다. 하지만, 1903년,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올랐다. 연구자의 영향력이 뒤집히는 반전이 일어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에 대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켈빈은 위대한 물리학자로서 업적을 이루었다. 1848년 그는 열역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절대 온도’ 개념을 제안하였다. 지금 알려진 절대 온도는 에너지 보존의 개념이 자리 잡은 후에 다시 정확하게 정의되었지만, 그가 1848년에 처음으로 제안했기 때문에 이후 그의 이름을 딴 켈빈(K)이 단위로 지정되었다. 고전적으로 입자의 운동이 정지하는 것에 해당하는 차가운 온도가 0K이다. 1851년에 톰슨, 즉 켈빈은 열역학 제2법칙을 공식화하였고, 이듬해에는 진공 속에서 기체가 팽창할 때 온도가 내려간다는 주울-톰슨 효과를 발견한다. 스토크스 정리를 제일 먼저 완성한 사람은 스토크스가 아니라 켈빈이었다. 문서에 따라서 스토크스 정리를 켈빈-스토크스 정리라고 표시하기도 한다. 스티글러의 법칙이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26년 발표된 슈뢰딩거 방정식은 양자역학 역사의 걸작 중 걸작으로 평가되어도 손색이 없다. 슈뢰딩거는 양자역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소 문제를 직접 풀었다. 이때 미분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 수학자 바일Hermann Weyl의 도움을 얻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본인이 직접 고안했을 뿐만 아니라 실험값과 일치하는 수소 원자에 있는 전자 상태의 에너지 고유값을 정확하게 얻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비해 보어Niels Bohr의 원자 모형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전혀 정량적이지도 못했고, 정성적으로도 모순이 내재되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보어는 자신의 원자모형에 도전장을 내민 슈뢰딩거를 왜 전자가 다른 상태로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으로 괴롭혔지만, 결국 슈뢰딩거의 방정식은 하이젠버그와 함께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슈뢰딩거보다 시간상으로 앞서 보다 더 근본적으로 양자 물리학이 수학적으로 도입되었었는데,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플랑크 상수Planck constant를 최초로 도입하면서였다. 물리학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오기가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시점에 출현한 양자 물리학의 신호탄 같은 것이 플랑크 상수이다. 과학 개념이 단 하나의 문제풀이에만 적용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개념일 때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과학의 발견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사례가 있다. 아울러 과학사 집필과정에서 특정 발견자가 무시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통상 에디슨Thomas Edison이 처음으로 백열등을 만들었고 고된 연구를 통해 성능을 최적화하였다고 배운다. 하지만 백열등 발명의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에디슨의 천재적인 언변, 쇼맨십, 그리고 사업가 고유의 철학적 소양만큼이나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역사적 사실만을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에디슨은 백열등 속 대나무 소재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해 40시간 정도 버티는 백열등을 발명하였다. 탄소 필라멘트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후 최종적으로 대나무 소재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물론 10년 후 대나무 기반 탄소 필라멘트는 텅스텐 필라멘트로 대체되었다. 1879년 스완Joseph Swan과 에디슨Thomas Edison은 백열등에 대한 특허를 등록한다. 하지만 그들보다 앞서 1835년 린제이J. B. Lindsay가 가장 먼저 백열등을 만들었다. 실제 연구과정은 세부항목이고 과학의 역사는 간략한 요약일 수밖에 없다.
맺음말
지금까지 여러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과학사가 어떻게 집필되는지를 살펴봤다. 현대 사회에서는 업적이 거의 같은 시기에 발표되는 사례가 더욱더 많아지고 있다. 연구 성과의 가치는 개개 연구의 가치로도 평가를 받지만, 과학사의 맥락에서도 평가를 받는다. 연구자가 당시에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연구자가 행한 연구가 과학사에 기록되려면 과학의 흐름과 일치해야만 한다. 물론 유행에 휩쓸리지 않은 독특한 연구도 존중되어야 한다. 201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의 요시노Akira Yoshino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쓸데없어 보이는 일을 많이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 자신만의 호기심으로 새로운 현상을 열심히 찾아내는 게 필요하다. 연구결과를 무엇에 사용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마지막으로 최근 과학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얘기로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AlphaGo 대국을 생각해보자. 당시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소수였다. 현재 대부분의 일류 바둑 인공지능들은 프로기사들을 확실하게 이긴다. 실로 수천 년 바둑의 역사에 신기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상 탄생할 것 같지 않았던 ‘바둑의 신’이 탄생한 것이다.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간결한 수학적 표현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알파고 알고리듬은 바둑에서 사람을 이기는 체계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바둑의 승패에 관한 규칙만을 입력으로 활용하여 바둑 알고리듬을 완성한 알파고 제로AlphaGo Zero의 출현은 진정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급진전된 과학의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향방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