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고 있는가? 아직 아니라면 앞으로 포스트휴먼 시대가 도래하긴 할 것인가? 인간은 인간이 아니면서도 인간 같은 존재, 혹은 인간이면서도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포스트휴먼과 곧 대면하게 될 것인가? 포스트휴먼이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등장하리라는 단초는 과연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어떤 존재로서 포스트휴먼을 말할 때 우리는 대체로 두 가지를 상상한다. 인간이 테크놀로지를 통해 또는 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전통적인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리고 인간이 창조한 인공적인 존재가 마침내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과 가까워지는 것. 전자를 말할 때 우리는 <로보캅RoboCop>, <아이언맨Iron Man> 같은 영화를 인용하고, 후자를 말할 때 <그녀Her>, <엑스 마키나Ex Machina>같은 영화를 끌어온다. 영화 속 사이보그, 인공지능, 로봇은 포스트휴먼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그에 대한 기대와 공포를 함께 부추긴다.


이 글의 목적은 이런 영화들을 참조하지 않고 포스트휴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전자의 포스트휴먼을 말할 때 우리는 영화 속 ‘아이언맨’ 대신 현실에서 ‘아이언맨’ 또는 ‘사이보그’라고 불리는 존재들을 찾아볼 수 있다. 2020년 11월에 열린 사이배슬론Cybathlon 국제대회에 참여하면서 첨단 공학 기술과 결합한 장애인 선수들이 그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포스트휴먼이 과연 존재하는지 말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에서 개발하고, 시험하고, 출시하여 사용하고 있는 실제 로봇을 살펴볼 수 있다. 나는 장애인 선수들을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사이보그나 아이언맨으로 부르고 이들을 미래에 도래할 새로운 인간형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보다는 후자의 포스트휴먼이 도래할 가능성, 즉 인간이 창조한 로봇이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모양과 특성을 지닌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로봇은 과연 인간과 흡사한 존재, 인간과 대등한 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기대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과 똑같이 생겼을 뿐 아니라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설정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R.U.R.』이나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아이, 로봇I, Robot』을 거치면서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해 왔다. 픽션에 등장하는 인간 같은 로봇은 21세기의 공학자들이 연구실에서 로봇을 설계하고 개발할 때에도 영감을 준다.

많은 로봇공학자들이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여 인간과 로봇이 상호작용하는 시나리오를 구현하고자 노력한다. 이들은 로봇과 인간이 직접 마주치는 상황에서는 로봇이 인간과 닮은 형태일 때 더 나은 서비스와 상호작용이 가능하다고 기대한다. 인간-로봇 상호작용HRI 분야에서는 로봇의 ‘인간다움’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공학자들이 만들고 있는 로봇은 과연 얼마나 인간처럼 생겼을까? 우리는 앞으로 몇 년 내에 길거리에서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운 로봇을 마주치게 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진짜 로봇을 눈으로 볼 기회는 많지 않다. 뉴스 영상에 등장하는 로봇도 영화에서 빌려온 경우가 많다. 또 극소수의 실제 로봇만 반복적으로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주목을 받는다. 픽션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로봇이 과연 얼마나 인간을 닮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참고할 만한 곳으로 ABOTanthropomorphic robot 데이터베이스가 있다.[1] 브라운 대학 연구진이 2018년 처음 공개한 ABOT은 현존하는 인간 형태의 로봇 정보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연구용이나 상업용으로 개발된 실제 로봇 중 얼굴과 몸의 형상을 인간에게서 따왔다고 할 만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 두었다.

2020년 기준으로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모두 251종의 인간 형태 로봇anthropomorphic robot이 들어 있다. 관점에 따라 많다고 할 수도 있고 적다고 할 수도 있는 데이터다. 인간과 로봇이 대등하게 공존하면서 관계를 맺는 상상을 이렇게나 오래 해왔는데도 인간을 본떴다고 할 수 있는 로봇이 아직 251종에 불과하다고 실망할 수도 있고, 포스트휴먼의 후보가 될 만한 로봇이 251종이나 된다고 기대를 할 수도 있다. 이 중에 정말 영화 속 캐릭터 같은 포스트휴먼이 들어있는 것일까? 데이터베이스를 잠시 들여다보면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현존하는 인간 형태 로봇을 가장 많이 모아 놓은 ABOT 데이터베이스의 운영자들은 수집된 로봇 이미지를 이용해서 각 로봇의 인간유사성human-likeness을 0점에서 100점 사이의 점수로 표시했다. 로봇연구자가 아닌 일반인들을 온라인으로 섭외하여 로봇 사진을 보여주고 각 로봇의 생김새가 얼마나 인간과 가까운지 판단해서 점수를 주도록 했다.

251종의 로봇 중 인간유사성이 90점을 넘은 로봇은 네 종밖에 없다. 70점을 넘은 로봇을 다 합쳐도 11종에 불과하다. 2015년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재난로봇 대회에 참가하여 유명해진 휴보Hubo 모델은 43.32점을 받았고, 휴보의 몸에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머리를 붙인 알버트 휴보Albert Hubo는 그보다 훨씬 높은 63.72점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의 얼굴을 꽤 사실적으로 재현한 로봇 얼굴이 득점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알버트 휴보를 제작한 핸슨로보틱스Hanson Robotics가 내놓은 여성형 로봇 소피아는 78.88점을 받았다. 소피아는 몇 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명예시민권을 받았다고 해서 널리 알려진 바 있고, 2018년 1월에는 한국에 와서 ‘4차산업혁명, 로봇 소피아에게 묻다’라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노랑과 빨강 한복을 입은 모습이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로봇이다.


ABOT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로봇들의 인간유사성 평균은 100점 만점에 겨우 33.81점이다.(중앙값 31.76) 전체 로봇의 82%가 50점 미만의 점수를 받았다.[2] 간단히 말해, 현재 나와 있는 인간 모양 로봇들은 대체로 인간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이 로봇들을 인간과 구별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ABOT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장 높은 인간유사성 점수(96.95)를 받은 로봇 ‘나딘Nadine’은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나디아 탈만 교수 연구진이 개발했다. 탈만 교수를 닮은 얼굴을 한 나딘은 손을 흔들기도 하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기도 한다. 2017년 싱가포르 아트사이언스 박물관ArtScience Museum에서 열린 ‘휴먼 플러스Human+‘ 전시에 등장하여 탈만 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방문객들을 만나는 나딘의 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그림3]) 현존하는 로봇 중 가장 인간유사성이 높다고 평가받은 로봇이라 큰 기대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막상 영상을 보면 나딘을 두고 포스트휴먼의 도래를 점칠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나딘은 포스트휴먼이 아니라 아주 잘 만든 로봇이다. 

나딘의 이미지에서 ‘섬뜩함의 계곡언캐니 밸리, uncanny valley’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언캐니 밸리’는 로봇이 인간과 유사해질수록 로봇에 대한 친밀감이 점점 증가하지만,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지점에 도달하기 직전에 그 친밀감이 급격히 감소하여 모종의 섬뜩함이나 불길함을 느끼게 되는 구간이 있다는 가설이다.

그림3 휴먼 플러스Human+‘ 전시에서 탈만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 나딘

2020년 4월에 발표한 논문에서 한 미국 연구진은 ABOT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언캐니 밸리의 존재를 검증하려고 시도했다.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로봇 251종의 이미지를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섬뜩함’uncanniness의 정도를 표시하도록 했다. 이들은 인간유사성이 70점에서 90점 사이에 있는 로봇들이 언캐니 밸리에 빠진다고 보았다. 251종의 로봇 중 일곱 종이 이에 해당한다. 인간유사성 78.88점을 받은 소피아가 바로 언캐니 밸리의 가장 깊은 지점 근처에 놓일 것이다. 반면 96.95점을 받은 나딘은 언캐니 밸리를 탈출하여 다시 상당히 높은 친밀감을 느끼는 지점에 놓이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과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는 거의 모든 로봇을 모아서 언캐니 밸리 곡선을 확인한 것은 포스트휴먼의 도래에 대한 전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언캐니 밸리를 걱정할 만큼 인간과 유사해진 로봇들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로봇들이 언캐니 밸리를 빠져나와 마침내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게 될까?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지만, 언캐니 밸리에 빠진 소피아와 밸리를 벗어난 나딘의 이미지를 비교해 보면서 그런 기대를 품기는 쉽지 않다. 소피아와 나딘 어느 쪽이든 영화 <엑스 마키나>를 보며 사람들이 상상하는 포스트휴먼, 즉 인간이 창조했으나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존재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현실의 포스트휴먼은 아직 먼 얘기다.

포스트휴먼의 가능성을 로봇의 겉모습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로봇의 생각과 행동, 특히 인간과 같은 자율성을 보여주는 생각과 행동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결국 중요한 것은 포스트휴먼의 생김새가 아니라 인간과 대등하게 관계를 맺을 만한 생각과 행동의 수준이 아니겠는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 심심치 않게 뉴스에 등장하는 자율주행차 등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보면 포스트휴먼의 등장은 자율적 판단과 행동의 주체를 통해 가능해질 것도 같다. 인간과 자유롭게 대화를 하거나 인간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존재가 있다면 겉모습과 관계없이 포스트휴먼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와 <엑스 마키나>를 비롯해서 이런 존재가 등장하는 영화의 목록은 계속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은 그렇게 자유롭거나 자율적이지 않다. 중요한 임무에 투입되고 있는 로봇을 깊이 있게 관찰해보면, 흔히 자동으로 혹은 자율적으로 작동한다고 여겨지는 로봇들도 모두 제한적인 의미에서만 자율성을 발휘한다. 아무리 첨단 로봇이라고 해도 엔지니어와 오퍼레이터가 미리 설계하고 설정한 범위 안에서, 미리 테스트한 조건에 따라, 미리 지정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 작동 방식을 피상적으로 파악한 경우에만 마치 로봇이 완전한 자율성을 가진 것처럼 오해하게 된다.

공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민델David Mindell은 심해탐사 로봇, 민간 항공기 시스템, 드론 시스템, 화성탐사 로봇 등 위험한 환경에서 민감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의 실제 작동 양식을 분석하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인-무인, 수동-자동, 타율-자율의 구분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3]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이들이 인간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생각을 민델은 ‘완전 자율성의 신화’라고 비판한다.

인간이 개입하는 시간, 장소, 방식이 계속 변화하고 있을 뿐, 로봇은 끊임없이 인간과 연결을 맺고 있는 상태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가끔 특정한 상황에서 마치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 첨단의 로봇일수록, 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수록, 로봇은 인간으로부터 독립할 것이 아니라 인간과 더 세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온전히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로봇은 오히려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현실의 로봇 연구는 그런 식의 자율성을 추구할 이유가 별로 없다. 즉 생김새가 아닌 역할의 관점에서 보아도, 우리가 영화를 통해 상상하는 포스트휴먼은 현실성이 부족하다.

로봇이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겉모습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 로봇이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 이렇게 두 가지 기대가 포스트휴먼의 도래, 즉 인간과 (인간을 닮은) 비인간이 공존하는 사회의 도래에 대한 논의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면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로봇들을 관찰하고 분석해보면, 포스트휴먼의 가능성을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 자체에서 찾기는 어렵다. 이것은 현재의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 수준을 낮추어 보려는 관점이 아니라, 로봇과 인공지능이 사회 속에서 중요한 임무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려는 생각이다.

앞서 인용한 데이비드 민델이 지적하고 있듯이, 새롭게 등장해야 하는 것은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라는 포스트휴먼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구체적인 업무를 두고 인간과 로봇이 맺는 관계이다. <그녀>와 <엑스 마키나> 같은 영화를 참조하는 대신 실제 인간과 로봇 관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분석할 때 포스트휴먼에 대한 우리의 논의도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참고문헌

  1. Elizabeth Phillips, Xuan Zhao, Daniel Ullman, and Bertram F. Malle, “What is Human-like? Decomposing Robots' Human-like Appearance Using the Anthropomorphic roBOT (ABOT) Database,” Proceedings of the 2018 ACM/IEE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Human-Robot Interaction (HRI '18).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New York, NY, USA, 2018, pp. 105–113.
  2. B. Kim, M. Bruce, L. Brown, E. d. Visser and E. Phillips, “A Comprehensive Approach to Validating the Uncanny Valley using the Anthropomorphic RoBOT (ABOT) Database,” 2020 Systems and Information Engineering Design Symposium (SIEDS), Charlottesville, VA, USA, 2020, pp. 1-6.
  3. David A. Mindell, Our Robots, Ourselves: Robotics and the Myths of Autonomy (Viking, 2015)
전치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