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물질을 나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고체의 특성을 논할 때는 전기가 흐르는 정도에 따라서 분류할 수 있다. 전기가 잘 흐르면 전도체, 그 반대의 경우에는 절연체 혹은 부도체라고 부른다. 금, 철, 구리 같은 금속은 전도체에 속하고, 유리, 고무, 플라스틱 같은 물질은 절연체에 속한다. 그리고 전도체와 부도체 사이의 어딘가에 반도체가 있다. 실리콘으로 대표되는 반도체는 원래는 절연체에 해당하지만, 조금만 불순물을 추가하거나, 전기장을 가해주면 전기를 흘리는 도체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전도체와 부도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성질 때문에 절반만 도체인 반半도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인 초전도체 Superconductor 가 있다.

초전도체는 말 그대로 전도체를 뛰어넘는 전도성을 갖는 물질을 말한다. 슈퍼맨을 일반적인 사람보다 힘이 더 센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초전도체는 평범한 전도체보다 단순히 전기를 조금 더 잘 흘리는 물질이 아니다. 초전도체는 전도체가 가질 수 없는 세 가지 놀라운 성질을 보인다.

첫 번째로 초전도체는 전기 저항이 0이다. 같은 전지를 연결했을 때 저항이 큰 물질은 흐르는 전류의 양이 적다. 같은 모양을 가졌다고 했을 때, 부도체는 전도체보다 훨씬 높은 저항을 가지며, 적은 양의 전류가 흐를 수밖에 없다. 전도체라고 해서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항이 부도체에 비해 작을 뿐, 전류가 흐를 때 이 저항의 값에 비례해서 전류의 손실이 일어난다. 그런데 초전도체는 이 전기 저항이 0이다.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초전도체의 저항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전기가 흘러도 전혀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초전도체는 물질 내부에 들어오려는 자기장을 모두 밀어내는 마이스너-옥센펠트Meissner -Ochsenfeld 효과를 보인다. 들어오는 자기장을 밀어내기 위해 초전도체는 표면에 전류가 흘러서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서로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가 되어 [그림1]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부상 효과를 일으킨다. 이 효과를 이용해 자기부상 열차는 공중에 떠서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초전도체가 거시적 양자 현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있다. 초전도체는 다른 물질과 접합했을 때 계면의 초전도체의 파동함수가 경계를 넘어가고 섞이며 조셉슨Josephson 효과라 불리는 특이한 전기적 성질을 보인다. 이 성질은 극도로 민감한 자기장 센서를 만들거나, 양자 컴퓨터의 큐빗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서는 초전도체를 매일 사용하고 있다. 일상에서 초전도체를 가장 많이 쓰는 장소는 병원이다. 전선을 나선형으로 감아서 전류를 흘리면 그 중심에 자기장이 생긴다. 일반적인 금속 도선을 사용해도 자기장을 얻을 수 있지만,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려면 많은 양의 전류가 필요하다. 그런데 저항이 있는 전선으로는 얻을 수 있는 자기장의 세기에 한계가 있다. 큰 전류를 흘리면 저항 때문에 너무 많은 발열이 일어나서 전자석이 녹아버릴 것이다. 그래서 강력한 자기장을 필요한 경우에는 초전도체를 전선으로 사용한 전자석을 사용한다. 병원에 있는 자기공명영상 Magnentic Resonance Imaging 장치는 강한 자기장이 필요하므로, 초전도체로 만들어진 전자석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이 드는 것은 왜 아직 주변에서 눈으로 직접 초전도체를 본 적이 없냐는 것이다.

초전도체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초전도체를 쉽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이 약점 때문이다. 슈퍼맨이 크립토나이트에 맥을 못 추는 것처럼, 초전도체에게 크립토나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높은 온도이다. 낮은 온도에서 놀라운 특성을 보이던 초전도체는 온도가 올라가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전도체로 변한다. 이렇게 초전도 성질을 잃는 온도를 전이 온도transition temperature라고 한다. 문제는 초전도 현상이 사라지는 전이 온도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너무 낮은 온도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초전도체는 절대 0도보다 고작 몇도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성을 잃는다. (참고로 절대 온도는 섭씨 –273도를 0으로 시작하며 단위로는 켈빈 (K) 을 사용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발견된 초전도체인 수은은 4K (섭씨 -269도) 이하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고, MRI에 들어가는 전자석으로 사용되는 나이오븀-티타늄 (Nb-Ti) 합금도 약 10K의 전이 온도를 갖는다.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의 온도도 섭씨 영하 100도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으니, 우리 주변에서 초전도체를 만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이 약점만 해결하면 초전도체는 응용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초전도 현상은 양자 현상이기 때문에, 전자들의 열적 요동을 줄이지 않으면 발현될 수 없다. 따라서 초전도는 고온에서는 필멸의 존재이다. 게다가 낮은 온도를 만드는 일은 상당히 고되고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초전도체는 오랜 시간 동안 소수의 물리학자가 연구하는 영역이었다. (저온 실험과 초전도체의 첫 발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최형순, 액체의 재발견: 액화의 역사>를 추천한다) 하지만, 자연은 가장 놀라운 것들을 숨겨두고 있다가,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문제를 내놓곤 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은 지식과 지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처음 초전도체가 발견된 후 75년 후 고요하던 초전도라는 분야에는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태풍의 중심에는 이 글의 주인공인 고온 초전도체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고온 초전도체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초전도체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세기의 난제였던 초전도체

초전도 현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11년 네덜란드의 카메를링 온네스Kamerling Onnes에 의해서였다. 충격적이고 갑작스러운 발견이었던 만큼 초전도 현상을 설명할 이론적 기반이 없었고, 초전도 현상은 50년 가까이 난제로 남아있었다.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인 슈뢰딩거 방정식이 1926년에나 발표되었으니 초전도의 원리를 밝히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당연하다. 양자역학이 없는데 어떻게 양자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당시 막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1922년 온네스의 교수직 4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양자역학에 대한 우리의 무지로 인해 이론을 세우기에는 아직 멀었다.”라며 초전도 이론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 이후에도 많은 물리학계의 셀럽들이 초전도에 도전했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Niels Bohr, 양자 홀 효과의 이론적 기반인 란다우 준위를 발견한 레프 란다우Lev Landau,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를 비롯한 전설적인 물리학자들이 이 문제에 도전했지만, 초전도의 원리는 밝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천재 물리학자로 알려진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도 1950년대에 자신의 활동에 큰 공백은 초전도 문제를 풀려다가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얼마나 어려운 문제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오랜 물리학자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50년간의 노력은 BCS 이론으로 열매를 맺었다. 이론을 고안해 낸 세 명의 물리학자 바딘Bardeen, 쿠퍼Cooper, 슈리퍼Schrieffer의 이름을 딴 이론은 당시 초전도 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했고, 이론을 만들 당시 지도교수, 박사 후 연구원, 대학원생이었던 세 사람은 훗날 나란히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BCS 이론과 전이 온도의 한계

BCS 이론이 설명하는 초전도체의 원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온도가 낮아지면 물질 속의 전자 두 개가 짝을 이루어 쿠퍼 쌍Cooper pair을 이룬다는 것. 그리고 이 쿠퍼 쌍들이 모여 마치 한 몸같이 단체 행동을 하며 저항 없이 전기를 흘린다는 것이다. 전자 두 개가 모인 쿠퍼 쌍은 보손boson이기 때문에 낮은 온도에서 단체 행동을 하는 것은 보손의 양자역학적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기학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전자 두 개가 짝을 이룬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같은 전하를 갖는 두 입자는 보통은 짝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쿨롱 힘으로 서로 밀쳐내기 때문이다. 물론 금속 내에서는 가리기 효과screening effect에 의해서 전기장이 상쇄된다고 하지만, 서로 밀어야 할 두 개의 전자가 서로 묶인다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쿠퍼 쌍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음의 전하를 갖는 두 전자를 묶어줄 접착제가 필요하다. 물질 속에서 전자를 제외하고 접착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물리학자들은 원자의 떨림에서 그 답을 찾았다. 고체 안에서 원자는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고, 이들의 고유한 떨림을 포논phonon 이라 부른다. 초전도 상태에서의 전자는 포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서로 묶여있다. 어떻게 원자의 움직임이 전자를 묶는 접착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2]를 살펴보자. 그림에서 웃고 있는 파란 입자는 전자, (+) 표시가 되어 있는 노란색의 공은 원자핵을 나타낸다. 그림에서는 비슷한 크기로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 전자는 원자핵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작고 수천 배 이상 가볍다.

먼저 작고 가벼운 전자가 원자핵으로 만들어진 격자를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전자와 원자핵은 서로 반대의 전하를 띠므로 서로 끌어당긴다. 원자핵은 전자 쪽으로 끌려가지만, 큰 질량 때문에 전자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인다. 따라서 [그림2]처럼 원자핵이 움직였을 때는 이미 전자는 옆으로 이동한 상태이고, 결과적으로 국소적으로 원자핵의 밀도가 높아지는 구역이 생긴다. 양의 전하를 띠게 된 이 구역은 이미 지나간 전자와 뒤에 있는 전자를 끌어당긴다. 두 전자만 생각하면 마치 전자끼리 서로 잡아당기는 듯한 모습이다. 이렇게 격자 구조의 움직임은 전자가 서로 끌어당길 수 있게 해주는 중개자의 역할을 한다.

다음의 방정식은 BCS 이론에서 포논에 의해 매개되는 초전도체의 전이 온도에 방정식을 간략하게 표현한 식이다 [1].

\(T_{c}\) = \(\theta_D\)exp(-1/\(\lambda_{eff}\))

여기에서 Tc는 초전도 전이 온도이고, \(\theta_D\)은 디바이 온도Debye temperature로 물질이 가진 포논의 진동수 중 가장 큰 값과 관련이 있으며, 물질이 가벼운 원소를 포함하면 값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lambda_{eff}\)는 앞에서 언급했던 전자와 포논의 상호작용에 비례하는 값이다. 방정식을 보면 디바이 온도 값이 클수록, 전자와 포논의 상호작용이 강할수록 전이 온도가 올라간다. 이제 디바이 온도가 아주 높거나 \(\lambda_{eff}\)이 아주 큰 물질을 찾으면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주기율표상에 있는 대부분 금속의 디바이 온도는 500K 이하이고 \(\lambda_{eff}\) 값은 1/3 이하이기 때문에 전이 온도의 상한값은 25K 정도이다. 수소, 산소, 탄소 같은 가벼운 원소가 포함된 화합물들은 디바이 온도는 높지만, 절연체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수은과 같은 단 원소 금속과 합금 중 전이 온도가 25K를 넘는 물질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과학자들은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찾기 위한 사냥이 멈추지는 않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발견

초전도 사냥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냥꾼은 베른트 마티아스Bernd Matthias 라는 물리학자였다. 그는 수백 가지의 초전도체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초전도체를 찾는 여섯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유명한 마티아스의 규칙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대칭성이 높은 구조를 가질 것.
  • 전자의 상태 밀도가 높을 것.
  • 산소를 피할 것.
  • 자성을 피할 것.
  • 절연체를 피할 것.
  • 이론 물리학자를 피할 것.

간단하고 명료한 규칙이다. 하지만 만약 모두가 이 규칙을 따랐다면 고온 초전도체는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모두가 미쳤다고 생각하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취리히의 IBM 연구소에서 게오르그 베드노츠Georg Bednorz와 알렉스 뮐러Alex Müller는 초전도체를 찾고 있었는데, 그들이 연구하던 물질은 금속이 산소와 결합한 물질인 금속 산화물이었다. 말하자면 금속이 산화되어 만들어진 녹을 연구하고 있었다. 산화물은 부피 중 대부분을 산소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인 경우가 많았으며, 자성을 띠는 경우도 많았다. 마티아스의 규칙을 알고 있다면, 금속 산화물을 연구하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도 뮐러는 마지막 한 규칙은 잘 따랐다. 당시 이론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뮐러는 이론 물리학자들과 더 이상 얘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산화물에서의 초전도 연구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들의 연구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연구비도 넉넉지 않아서 작은 규모로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986년 그 일이 일어났다. 베드노츠와 뮐러는 금속 산화물에서의 초전도 현상을 논문을 통해 발표했다. 전이 온도의 이론적 한계로 알려져 있던 25K을 훌쩍 넘어 35K 가까이 되었고, 이론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이 물질에 고온 초전도체라는 이름도 따로 붙었다. 고작 10K 높은 것이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기존의 이론을 완전히 뒤엎는 발견이었다. 당시에는 그들의 발견을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몇몇 그룹이 이 실험을 재현하는 데에 성공했고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던 전이 온도의 장벽이 깨졌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Star is born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마치 금광을 찾은 듯이 고온 초전도 문제에 달려들었다. 전 세계의 물리학자, 화학자, 재료과학자, 전기공학자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가 더 높은 전이 온도를 가진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마치 호수를 막고 있던 댐이 무너진 것처럼 엄청난 양의 연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언제 25K이 한계였다는 듯이 전이 온도는 빠른 속도로 상승하며 기록을 연일 경신했다.

매년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은 미국 물리학회에서 모이는데, 베드노츠-뮐러의 논문이 발표되고 이듬해 열린 미국 물리학회의 초전도 세션은 지금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다. 당시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서 세션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사람들은 줄을 서야 했고, 학회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 모습이 마치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 해서, 유명한 록 페스티벌의 이름을 따서 물리학의 우드스탁[그림3]이라고 불렸다. 이 페스티벌의 스타는 당연히 고온 초전도체였다. 고온 초전도체의 발견이 얼마나 ‘핫’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 1986년 논문을 발표하고 바로 다음 해인 1987년 베드노츠와 뮐러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베드노츠와 뮐러가 처음으로 발견된 고온 초전도체는 La-Ba-Cu-O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된 물질이었다. 30K을 겨우 넘는 전이 온도를 가진 물질이었지만, 전혀 새로운 초전도 물질 군이었다. 이후 [그림4]에서 볼 수 있듯이 전이 온도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이렇게 발견된 고온 초전도체의 조성에서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림4]에 적혀있는 조성을 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듯이 모두 Cu-O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고온 초전도체는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라고 불린다.

 

 


전이 온도가 올랐지만, 여전히 지구상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온도보다는 터무니없이 낮은데 도대체 이게 왜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저온 과학은 온도의 범위에 따라서 사용하는 냉매가 다르고, 냉매의 종류에 따라서 온도를 달성하기 위한 난이도도 다르다. 냉각 과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냉매는 액체 헬륨과 액체 질소이다. [그림4]에 회색 점선으로 표시된 것이 이들의 끓는 점인데, 액체 헬륨의 경우 4.2K 그리고 액체 질소는 77K의 끓는 점을 갖는다.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려놓았을 때 아무리 불꽃의 온도가 높아도 끓는 물의 온도가 섭씨 100도 이상이 되지 않는 것처럼, 상온이 300K이어도 액체 냉매의 온도는 항상 끓는점으로 유지된다. 따라서 4.2K 이상의 온도가 필요할 때는 액체 헬륨을, 77K 이상의 온도를 얻기 위해서는 액체 질소를 이용해서 물질을 냉각한다. 최초로 발견된 구리계 초전도체는 액체 질소의 온도보다 낮아서 헬륨이 필요하지만, 그 뒤에 발견된 Y-Ba-Cu-O부터는 액체 질소의 온도보다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를 보이기 때문에, 액체 질소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초전도 상태를 얻을 수 있다. 심지어 몇몇 물질의 전이 온도는 흔히 사용되는 액화천연가스 온도 111K 보다도 높다.

액체 질소를 사용하는 것이 액체 헬륨을 사용하기보다 쉽기도 하지만, 훨씬 경제적이기도 하다. 실험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액체 질소는 물값이고 액체 헬륨은 위스키값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시세에 따라서 다르지만 액체 질소는 100L에 십만 원 정도, 액체 헬륨은 같은 부피면 오백만 원 정도의 가격을 갖는다. 따라서 헬륨을 사용했을 때는 할 수 없었던 응용도, 질소를 사용하면 가능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 국가는 이미 액체 질소를 이용해서 냉각된 초전도 송전선을 매설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많은 기술이 현실에 응용될 것이다.

 

 

많은 것은 어렵다More is difficult!

전자-포논 상호작용에 기반한 전이 온도의 상한값이 깨졌지만, BCS 이론이 틀린 것은 아니다. 새로 발견된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도 그 원리는 낮은 온도에서 형성되는 쿠퍼 쌍들에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자들을 묶어줄 접착제의 정체이다. 기존에 알려진 전자-포논 상호작용은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의 높은 전이 온도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종류의 접착제가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도 정확히 무엇이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에서 접착제 역할을 하는지 모른다. 손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물질이 눈앞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데, 원리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물리학자들에게는 답답한 동시에 도전 의식을 부르는 일이다.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가 계속해서 난제로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는 물질의 구조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응집 물질 물리학에 대한 큰 기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P. W. Anderson의 말 대로 ‘많은 것은 다르다More is different’, 그리고 많은 것은 어렵기도 하다. 이미 고전적인 초전도 현상도 많은 입자가 모여서 생긴 현상이지만, 이 경우는 그보다도 복잡도가 더 심해졌다. 고전적인 초전도체가 하나 혹은 둘 정도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고 높은 구조적 대칭성을 가지는 데 반해,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는 적어도 세 가지의 원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대칭성이 낮은 구조를 가진다. 게다가 같은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 내에서도 [그림5]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종류의 구조가 있으므로, 다양한 구조를 단위격자 안에 있는 CuO2 층의 개수를 기준으로 물질을 분류해야 할 지경이다.

구조가 복잡하기도 하지만,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는 화학적으로 ‘더러운’ 물질이기도 하다. 초전도를 얻기 위해서는 절연체인 어미 화합물에 불순물을 섞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원래 전기를 잘 흘리지 않는 반도체에 불순물을 섞어 전기가 잘 흐르게 해주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하지만, 반도체에서는 1000개에서 10억 개의 원자에 한 개 정도의 불순물을 섞어주는 데 반해,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에서는 5~30퍼센트 정도의 원자를 불순물로 치환한다. 이 불순물은 격자 구조에 무작위로 들어가고, 이미 복잡한 구조에 어려움을 더해준다. 더군다나 완벽한 주기성을 좋아하는 물리학자들에게는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리 현상의 보고

물리학계의 최대 난제 중 하나인 고온 초전도체 문제는, 아직도 세계의 많은 물리학자를 사로잡고 있다. 물질이 복잡한 만큼, 초전도 현상과 함께 다양한 물리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림6]에서 볼 수 있듯이, 몇몇 현상들을 간략하게 요약한 상 도표를 보아도 얼마나 많은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양자역학의 도움 없이는 설명 불가한 자기 현상, 전기 현상, 그리고 구조의 변화까지 다양한 현상들이 상 도표를 채우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화학적 조성이 복잡한 것에, 물리 현상의 복잡함이 더해져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는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가 발견된 지는 고작 36년밖에 되지 않았다. 1911년 처음 발견된 초전도 현상도 BCS 이론이 나오는 데 50년 가까이 걸린 것을 고려하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난제를 풀러 가는 길에는 상 도표를 채우고 있는, 그리고 지금도 종류가 늘어가고 있는 다양한 물리적 현상들을 하나하나 이해하는 것이 기초가 될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물리적 현상과 현재 가장 가능성 있다고 믿어지는 이론들을 소개하려 한다. 지금 현장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흥미로운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다.

 

참고문헌

 

  1. V. L. Ginzburg, Sov. Rev. Usp. 34 (4), 283 (1991)
김기덕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