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생겨난 지 93억 년이 지나서 광활해진 우주의 한 곳에서 태양과 지구라는 별과 행성이 형성됐다. 수억 년이 더 지나서 지구에는 생명이 탄생했고, 수많은 생물 종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진화의 과정이 38억 년 이상 이어지면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출현했다. 사람은 생명의 역사에서는 아주 최근이라 할 수 있는 30만 년 전쯤에 등장한 동물의 한 종이고,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에 펼쳐진 수많은 생명 가지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류는 진화를 통해 다른 종들은 도달하지 못한 고유한 속성들을 획득해서 지구의 정복자가 됐고 고도의 문명사회를 건설했으며 자신을 만든 우주와 생명에 대한 이해에 도전하고 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다른 종들에는 없었던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무엇이 인류를 그 외의 수많은 생물 종과 다르게 만들었을까? 빅 히스토리에서 인류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생물 종 중에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갖는 동질성과 차별성을 이어주는 이야기이자 인류의 진화 과정을 살펴서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류를 위한 서사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밝혀줄 자료는 어디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전통적인 고고학과 인류학에서는 퇴적층에 남겨진 인류 조상의 뼈와 인류가 남긴 도구나 예술품을 통해서 인류 진화의 역사를 추적했다. 이제는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우리 몸의 구조와 그것을 결정하는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게 됐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 몸의 구조뿐만 아니라 우리 뇌에 담긴 마음도 많은 부분이 진화를 통해서 형성됐음이 확실해졌다.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의 발전으로 우리 마음에 남겨진 진화의 역사도 일부 살펴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뼈나 도구는 물론이거니와 유전자나 뇌에 기록된 내용을 온전히 해석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미 알려진 사실에 대해서도 해석의 여지와 불확실성이 크고, 그래서 새로운 자료의 발견이나 연구의 결과로 이야기의 전개가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이 여전히 있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인류 진화 과정의 단편 조각들을 모아서 전체적인 흐름을 위주로 인류의 역사 이야기를 펼쳐보려고 한다.
포유류의 출현과 번성
사람은 포유강 영장목에 속한 동물이다. 포유류는 미성숙한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동물이다. 수정된 후 고립된 알이 번식이 가능한 성체로 성장하는 과정의 낮은 성공률을 극복하기 위해 알의 수를 늘리는데 에너지를 투자하는 기존의 전략 대신 수정된 알을 태아로 품고 낳은 후 새끼를 양육하는데 투자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포유류가 출현한 시기는 약 2억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로 거대 파충류인 공룡이 지배하던 시절이었고, 초기의 포유류는 포식자를 피해서 지하 생활이나 야간 활동에 적응했던 현재의 쥐와 유사한 동물이었다. 새끼를 양육하는 선택은 이런 삶의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포유류가 처했던 환경과 새끼 양육의 선택은 포유류에 고유한 여러 속성을 만들어 냈다. 어두운 환경에서 활동하다 보니 색 구별의 중요성이 감소했고, 대부분 포유류의 색 감각이 3원색에서 2원색으로 퇴화했다. 반면 시각의 기능을 대체하는 청각과 후각의 기능은 향상됐다.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도 활동할 수 있도록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항온 동물이 됐고, 체온 유지를 위해 포유류의 특징 중의 하나인 털을 갖추게 됐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뇌에서 일어났다. 포유류는 같은 공통 조상에서 분기한 파충류와 비교해 몸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뇌를 가지고 있다. 포유류 대부분은 신피질을 포함해서 인간과 거의 같은 뇌 구조를 가졌으며, 의식의 세계를 가졌으리라 추측된다. 신체 무기를 강화하기보다는 행동 양식을 발달시켜 생존과 번식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의 결과로 보인다. 양육 투자는 어미와 새끼 간의 유대감 형성을 바탕으로 했고, 이는 가족은 물론 다른 개체와의 공감 능력으로 확장돼 포유류 동물들이 협력을 바탕으로 사회를 형성하는 데도 작용했다.
거대 파충류가 지배하는 세상의 틈새 공간에서 명맥을 이어가던 포유류에게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6,600만 년 전 커다란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충돌로 촉발된 기후변화로 백악기-고진기 대량 멸절이 일어났고, 중생대 육지를 지배하던 거대 파충류 대부분이 사라져 버렸다. 작은 몸집 덕에 대량 멸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포유류는 그들이 차지했던 생태계 공간을 대신 채워 나갔다. 주요 천적이 사라진 데다 신생대 초 고진기에는 온난한 기후가 지속되면서 소위 적응방산1을 통해 포유류 종의 수와 개체의 수가 모두 늘었고, 몸집이 큰 포유류 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포유류는 신생대 육지의 지배자로 등극했다.
영장류와 유인원의 출현
인류로 진화하는 계통인 영장 동물은 중생대 말인 7~8천만 년 전에 가장 가까운 친척인 설치 동물과 분기했고, 이들은 백악기-고진기 대멸절에서 살아남았다. 신생대 초에 영장류의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환경변화가 일어났다. 꽃을 피워 번식하는 속씨식물은 중생대에 등장하여 신생대에 다양한 종으로 분화하며 번성했는데, 신생대 초 고진기는 온난했던 시기로 속씨식물에 속한 나무들이 번성하면서 아열대 우림이 고위도 지역까지 넓게 확장됐다. 이런 환경변화에 맞춰 영장 동물 일부는 나무 위라는 새로운 환경을 거처로 삼아서 영장류로 진화했다. 나무는 과일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생하는 곤충이 풍부해서 이들을 먹이로 삼을 수 있고, 땅에 비해서 포식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안전한 피난처였다. 2 영장류는 나무로 올라감으로써 새로운 생태적 지위를 개척했고,
나무 위 생활에 적응하면서 영장류에 고유한 속성들이 진화했다. 나무 위 생활은 영장류의 신체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땅을 딛고 도약하는 발의 기능이 중심이던 사지는 나무 위에서 이동하기 위해서 가지를 움켜잡는 손의 기능이 더해졌다. 모든 발가락이 나란한 발과 달리 엄지의 방향이 옆으로 뻗어 다른 손가락과 맞닿을 수 있게 변했고, 어깨 관절도 유연해졌으며, 거기에 더해서 손바닥의 감각도 예민해졌다. 시각과 후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나무 사이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거리 감각과 입체 인식이 중요했고, 이를 위해 두 눈은 한 곳을 동시에 응시하는 양안시로 바뀌었다. 색 감각도 2원색에서 과일의 성숙도를 판단할 수 있도록 적색과 녹색이 구분되는 3원색으로 회복했다. 반면 땅속과 지면 생활에 비해 나무 위의 생활에서는 그 중요성이 줄어든 후각은 퇴화했다. 냄새를 잘 맡기 위해 촉촉하게 유지되던 코는 점차 건조해졌고 형태도 곡선형에서 직선형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영장류를 곡비원류와 직비원류를 나누는 외형적 기준이기도 하다. 시각과 공간 지각력의 향상과 손 기능의 발달에는 뇌 기능 향상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뇌의 크기도 증가했다. 뇌의 발달은 사회성의 증가와도 연결되어 영장류 대부분이 강한 유대감을 갖춘 무리를 형성하는 데도 작용했다.
팔레오세-에오세 열적 최고점에서 5,600만 년 전, 대규모 화산 활동이 원인으로 추정 아열대 우림이 고위도 지역까지 이르렀고, 이에 따라 영장류의 거주지역도 넓게 확장됐으며 이들이 적응방산을 통해 다양한 종들로 분화하는 계기가 됐다. 4,000만 년 전 아시아에서 진원류인 직비원류가 출현했다. 하지만 올리고세로 넘어와 한랭건조기가 시작되면서 3,400만 년 전, 남극대륙의 분리와 소행 충돌 등의 영향으로 추정 삼림이 줄어들고 서로 지리적으로 격리되면서 각 지역의 영장류들은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걷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종이 사라졌고, 직비원류 중에서는 최종적으로 동남아와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무리만이 생존에 성공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살아남았던 직비원류 중 일부는 당시에는 이주가 가능한 거리였던 섬들로 연결된 경로를 통해 남미 대륙으로 진출해서 현재의 신세계원숭이로 진화했다. 동남아에 살아남았던 직비원류는 구세계원숭이로 진화했다.
2,300만 년 전, 마이오세에는 아프리카 동부에 있던 직비원류에서 유인원이 출현했다. 최초의 유인원은 프로콘술로 다양한 종이 출현했으며, 이로부터 진화한 케냐피테쿠스는 현존하는 유인원들의 조상으로 간주 된다. 1,700만 년 전쯤에 아프리카 동북단과 유라시아 대륙의 연결 통로가 형성되면서 유인원은 유라시아의 아열대 지역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중기 마이오세 기후 과도기에 1,400~800만 년 전 극심한 기후변화가 반복되면서 유인원은 시련의 시간을 겪으며 대부분 지역에서 멸종했고, 상대적으로 기후변화가 적었던 동남아시아에 진출했던 유인원과 중동지역에서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온 유인원만이 살아남았다. 동남아시아에 있던 유인원은 오랑우탄으로 진화했고, 아프리카로 돌아온 유인원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고릴라 계통, 침팬지 계통, 인류 계통의 순서로 분기해서 진화를 이어갔다.
영장류는 온난기에서 빙하기로 넘어가는 기후변화로 인해 반복되는 시련을 견디며 적응해서 살아남았다.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영장류는 뇌 기능 강화를 통해 집단의 협력을 비롯한 적응 행동을 발달시키는 방향의 진화가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생존 투쟁의 결과는 뇌뿐만 아니라 다른 내부 기능에도 흔적을 남겼다. 반복되는 굶주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섭취한 영양분을 몸에지방으로 비축하는 기능이 강화됐는데, 이는 먹거리가 풍족한 현재의 인류에게는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병 등 성인병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됐다. 원숭이monkey 와 유인원ape 이 분기하면서 유인원은 꼬리가 사라졌는데, 이는 이 둘을 구분하는 중요한 외형적 차이가 됐다. 꼬리가 사라진 원인은 단순한 돌연변이의 결과인지 어떤 진화 압력과 관계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팔과 손의 기능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꼬리가 하던 몸의 중심을 잡기, 의사 표현, 또는 감염이 일어나기 쉬운 항문 주위의 관리 같은 기능을 대치함으로써 꼬리의 중요성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인류의 출현
1,000만 년 전쯤 동아프리카에 거주하던 유인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지질학적 변동이 시작됐다. 지각판의 이동으로 아프리카 대륙이 동서로 분리되면서 동아프리카 열곡대의 형성이 시작됐고, 열곡대의 양쪽으로 높은 산맥이 솟아올랐다. 그 영향으로 동아프리카 일대는 기후가 변했고, 습한 열대 우림에서 건조한 사바나3로 차츰 변모해 갔다. 나무의 수가 점차 줄어들자, 나무 위에서 살아가던 이 지역의 유인원은 땅으로 내려와 숲과 초원이 섞여 있는 사바나의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 결과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서식하던 인류와 침팬지의 공통 조상은 700~500만 년 전 사이에 비교적 기후변화가 적었던 열대 우림에서 진화를 이어간 침팬지 계통과 수만에서 수십만 년 주기로 습한 기후와 건조한 기후가 반복되던 사바나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진화한 인류 계통으로 분기했다. 사바나의 혹독한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여러 고인류 종이 출현했다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됐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다른 유인원과 구별되는 인류만의 특징이 진화하는 데 일조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사헬란트로푸스 챠덴시스670~530만 년 전, 오로린 투게넨시스620~600만 년 전,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580~440만 년 전 등 몇 종의 원시 고인류가 분기했으며, 그 중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은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의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를 시작으로 여러 종이 분기했으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를 거쳐 현생 인류가 속한 호모 속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그림 2에서 현재 알려진 고인류 종들의 상세한 분기 과정을 볼 수 있다.
나무 위의 생활이 초원 위의 생활로 바뀌자 주식은 과일과 곤충에서 풀과 열매로, 그리고 육식의 비중이 늘어나는 쪽으로 바뀌었다. 생활환경과 주식의 변화는 골격과 치아 등 신체 변화를 가져왔다.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2족 직립 보행의 진화다.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온 고인류는 사지를 모두 다리와 발로 다시 되돌리지 않고 앞쪽 2개는 팔과 손으로 유지하고 뒤쪽 두 개의 발만 써서 걷는 2족 직립 보행의 길로 접어들었다. 직립 보행의 진화 과정은 척추가 두개골에 연결되는 대후두공의 위치, 엄지발가락의 방향, 다리뼈 형태의 변화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대후두공의 위치는 직립 보행이 진행됨에 따라 몸을 곧추세우면서 뒤쪽에서 점차 중앙으로 이동했고, 엄지발가락의 방향은 잡기보다 달리기에 적합하도록 나머지 발가락과 나란하게 복원됐으며, 두 발로 모든 체중을 지탱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다리뼈는 길어지고 굵어졌다. 침팬지 계통과 분기된 이후부터 진행된 직립 보행은 여러 중간 단계 종을 거쳐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 완성됐다. 2족 보행으로 인해 걷기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진 팔과 기능이 향상된 손을 활용할 수 있게 됐고, 이는 도구의 제작과 활용을 촉진해서 이어지는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2족 보행은 4족 보행에 비해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고 더 빨리 달리는 데는 불리하다. 포유동물 대부분이 4종 보행을 한다는 점이 4족 보행의 효율성을 입증한다. 인간 신생아가 걸음을 익히기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2족 보행이 쉽지 않은 행동임을 말해준다. 또한 직립 보행은 인류에게 척추에 누르는 힘이 가해져 생기는 척추 질환, 높이진 뇌까지 혈액을 보내느라 생기는 심장 질환 등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골반 형태의 변화로 여성에게 출산의 고통을 가져왔다. 이렇게 4족 보행에 비해 불리한 면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인류는 2족 직립 보행으로 진화했을까?
나무에서 내려와 사바나 초원을 다닐 때 2족 보행으로 인한 느린 속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빠른 속력의 포식자를 따돌리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바나의 환경과 관련된 여러 가설에 근거한 설명들이 있다. 한 설명은 초원에서 직립함으로써 눈의 위치가 높아지고 시야가 넓어져 포식자나 먹이의 발견에 유리하다는 점을 든다. 다른 설명은 직립함으로써 몸의 단면적을 줄여 그늘이 없는 사바나 초원의 뜨거운 햇볕을 덜 쬘 수 있다는 점을 든다. 햇볕과 더위로 인해 포식자들이 활동하지 않는 한낮 동안에 먹이활동을 함으로써 생존력을 높일 수 있다. 한편 2족 직립 보행의 장점이 충분히 커서 단점을 능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2족 직립 보행의 두드러진 장점은 팔이 자유로워졌다는 점과 4족 보행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점이다. 먼 거리까지 이동해서 먹이를 구할 수 있고, 손을 써서 그것을 포식자로부터 안전한 장소까지 이동해서 먹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2족 직립 보행의 장점은 훗날 인류가 속도는 느리지만 장거리 추적을 통해 유능한 사냥꾼으로 변모하는 데 작용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뇌의 발달과 더불어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협력을 통해 조직력을 높임으로써 포식자를 물리쳤을 가능성도 있다. 여러 설명이 있지만 아직 근거가 확실한 유력한 설명은 없다. 제시된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호모 속의 출현
현생 인류와 같은 호모 속에 속하는 최초의 종인 호모 하빌리스는 240만 년 전쯤 아프리카 동부에서 출현했으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서 분기했다고 추정된다. 이전의 고인류와 호모 속을 나누는 기준은 뇌 용량이다. 호모 하빌리스의 평균 뇌 용량은 700cc 정도로 현생 인류의 절반 정도지만 침팬지나 이전의 고인류에 비해서 훨씬 커졌다. 하빌리스라는 종명은 손재주가 좋다는 뜻으로, 이들의 화석이 손을 잘 활용해야만 만들 수 있는 많은 석기 도구와 같이 발견됐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일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도 석기 도구를 제작했음이 새롭게 밝혀져서 이들이 최초로 도구를 사용한 인류는 아니다. 사실 도구 자체가 인간만 사용해 온 것도 아니다. 까마귀, 침팬지 등도 간단한 도구를 사용한다. 도구와 관련해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그 정교함에 있다. 어쨌든 동물들이 도구를 사용하는 주된 목적은 먹이 획득이고, 호모 하빌리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들의 석기 제작과 사용은 식단 변화와 연결돼 있다. 호모 하빌리스는 여전히 신체가 작아 큰 동물을 잡는 사냥꾼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자유로워진 팔과 정교해진 손 기능을 사용해 석기를 제작하고 활용함으로써 작은 동물을 잡거나 다른 포식자들이 먹고 남긴 동물의 뼈를 부숴서 골수를 먹는 육식 위주의 식단으로 전향했다. 식단의 변화는 먹이를 구하는 전략과 경쟁 상대의 변화를 동반했고, 이는 결국 이어지는 인류의 진화 방향이 신체의 크기뿐만 아니라 뇌와 행동 발달을 통해 상위 포식자로 진행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호모 하빌리스는 100만 년을 존속한 꾀나 성공적인 종으로 140만 년 전쯤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멸종의 원인은 단정하기 어렵지만, 기후변화에 더해서 뒤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와 공존하면서 경쟁에서 밀려났을 수도 있다.
호모 에렉투스는 호모 하빌리스에서 분기하여 190만 년 전쯤 아프리카 동부에서 출현했다.4 이들의 몸은 호모 하빌리스보다 커졌고, 머리를 제외한 몸의 형태와 걸음걸이가 현생 인류와 거의 같아졌다. 에렉투스라는 종명은 직립한다는 뜻으로 이들의 직립 보행이 완전해졌음을 나타낸다. 머리도 뇌의 평균 용량은 930cc로 현생 인류의 3분의 2 수준이었지만, 편평한 얼굴과 튀어나온 코 등 현생 인류의 주요 특징에 근접했다. 뇌의 기능이 호모 하빌리스보다 더 발전했음은 정교해진 석기 제작에서 엿볼 수 있다. 호모 하빌리스의 올도완 석기에 비해 호모 에렉투스의 애슐리안 석기는 여러 단계를 거쳐 정교하게 다듬어졌으며, 이런 수준의 석기 제작에는 상상과 예측력에 더해서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까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뇌의 발달이 더욱 드러난 부분은 사회성의 진전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조직된 집단으로 이동과 사냥을 했으며 아프거나 다친 구성원을 돌보았다. 또한 원시적인 언어를 쓰기 시작했으며, 정교한 석기의 제작과 집단 사냥에는 언어를 통한 학습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는 창과 화살촉 같은 사냥 도구의 제작뿐만 아니라, 협력을 통해 거대 동물도 사냥할 수 있는 조직된 집단 사냥꾼으로 변모했고, 그럼으로써 최상위 포식자의 지위까지 올라갔다. 또한 이들은 월등한 적응력을 발휘하여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진출한 최초의 인류이며, 해상 항해를 통해 동남아의 섬까지도 진출했다. 물론 이들을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게 만든 근본 원인은 기후변화였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 또한 매우 성공적인 종으로 2백만 년 가까이 존속했으며, 진화를 통해 포유류의 특징이었던 털이 사라지는 등 현생 인류의 여러 신체적 특징이 만들어졌고,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여러 지역에 적응한 다양한 아종이 출현했다. 이들로부터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를 비롯한 새로운 호모 종이 진화했고,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그리고 현생 인류로 진화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30만 년 전쯤에 공존하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에 의해 대부분 지역에서 밀려나고 10만 년 전쯤 최종적으로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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