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서론

인공배아 artificial embryo  또는 합성배아 synthetic embryo 는 듣기만 해도 거부감이 드는 용어이다. 생명 전체를 만드는 씨앗인 배아를 합성 또는 인공적으로 만든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 미래를 다루는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클리셰로 등장하는 이미지로, 큰 수조 속에 인간 배아가 둥둥 떠다니면서 배양되는 장면이 있다. 인공배아라는 말을 들으면 대략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최근 발생학적 연구의 발전과 함께, 이러한 용어들이 학계와 미디어를 통해 종종 회자되고 있다. 현재 인공배아 기술은 이것과는 상당히 다르며, 이런 수준에 있지도 못하긴 하지만, 이러한 기술의 대두와 함께 윤리적 이슈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생명체의 발생과정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과, 배아줄기세포처럼 다분화능력 pluripotency, 즉 우리 몸 전체를 구성하는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능력 을 가진 세포가 개발되면서, 전통적이며 생물학적인 방법 즉 정자와 난자가 만나 배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배아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 출현하게 되었고, 이를 일각에서 인공배아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배아모델 기술은 전분화능줄기세포를 체외에서 3차원으로 배양하면서 적절한 조건을 부여하여, 인간 초기 배아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배양체를 만드는 기술이며, 이러한 발전에는 최근의 3차원 세포응집 배양기술도 한 몫 하였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던 생명체를 합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합성 배아나 인공 배아는 과도하게 선정적인 용어이다. 그러므로, 학계에서는 ‘배아모델 embryo model’이라는 표현을 권장하고 있다. 진짜 배아가 아니라 배아연구를 위한 모델을 체외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의미다. 이 글에서도 배아 모델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할 것이다.

배아 모델 기술은 생식세포, 즉 정자와 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체외수정 IVF, in vitro fertilization 관련 기술과는 확연히 다르다. 또한 3차원 장기 유사체를 체외에서 배양하는, 오가노이드 기술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으나 확연히 다르다. 오가노이드 기술은 초기 배발생 과정을 매우 단순화하거나 건너뛰어서, 특정 장기로 발생하는 경로만 열어 단일 장기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므로, 완전한 개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없다. 하지만, 배아 모델은 초기 배아가 가진 완전성이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탐구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거나, 적어도 완전한 배아로 발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상태로 모델을 만들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한 윤리적 고려가 필요하다. 배아는 개체 전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격체를 다루고 있는 느낌이 들고, 이러한 심리적 저항감이 윤리적 우려를 일으킨다. 모든 윤리적 문제가 그렇듯이, 명료한 정답을 내기보단, 생각의 범위와 방향을 잡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윤리적인 문제는 매우 광범위하고 고려해야 할 일이 많기는 하지만, 이성적으로 논리적 전후 관계를 잘 따져보는 일도 필요하고, 이에 대한 감정적 반응 또는 사회적 수용성을 들여다 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배아 모델 기술의 현주소를 들여다 보고, 이러한 기술에 의하여 촉발된 핵심적인 윤리 이슈들만을 한정하여 다루어 보려고 한다. 시험관아기 논쟁이나 배아줄기세포 논쟁 등의 내용 역시 배아 모델에 관련한 논쟁의 맥락을 파악하는데 중요하나, 간략히 축약한 약점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찾아보는 수고를 기울이시라는 부탁도 드리고 싶다.

본론

배아 모델의 현주소

수정란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만들어지는 단 하나의 세포이며 새로운 개체의 시작점이다. 이 세포가 분열을 거치면 여러 개의 세포가 되어 덩어리를 이루게 된다. 난생 생물과 달리 포유류의 경우, 이 수정란은 배아가 되는 동시에, 양막이나 융모막처럼 배아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막도 만들어야 하고, 태반의 일부도 되어서 모체와 연결되어야 한다. 수정란이 분열하여 만들어진 세포 덩어리에서 안쪽과 바깥에 위치한 세포들은 서로 약간 다른 세포로 분화하게 된다. 이 중 바깥쪽에 있는 세포들을 영양세포trophoblast 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배아를 감싸거나 태반을 형성하는 조직으로 분화된다. 반면, 안쪽에 있던 세포 덩어리 inner cell mass 는 이후 배아가 된다. 이렇게 두 종류의 세포로 구분된 초기 배아를 배반포 blastula 라고 한다. 독자들이 대부분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배아줄기세포는 이 안쪽의 세포 덩어리를 배아로부터 꺼내서 2차원 배양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세포주이다. 배아줄기세포는 다분화능 pluripotency 이 있다고들 하지만, 좀 더 완전한 전분화능 totipotency 이 있다고는 하지 않는데, 배아줄기세포는 배반포의 안쪽세포덩어리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막과 태반 등 배아외 조직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단 착상이 일어나면, 안쪽세포덩어리는 상배엽과 하배엽으로 나누어지고, 상배엽은 외배엽-중배엽 등을 만들고, 하배엽은 원시내배엽을 만들어 낸 뒤, 이 배엽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낭배 gastrula 시기로 접어든다. 이후 외배엽과 중배엽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신경관이 만들어 지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몸을 이루는 각종 장기가 만들어지는 단계로 이어져 나간다. 이러한 배 발생 과정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복잡한 세포들의 상호작용과 형태형성의 연속이다.

배아줄기세포는 그 출신 성분이 배반포의 안쪽세포덩어리이므로, 적절한 조건에서 배아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뭉쳐서 키우면, 앞서 설명한 복잡한 발생 과정을 유사하게 흉내내면서 발달하여, 낭배와 유사한 형태를 갖출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낸 3차원 구조체를 ‘낭배유사체gastruloid’라고 부른다. 배아줄기세포 덩어리를 어떤 방식으로 배양하는가에 따라서, 좀 더 이후 시기의 배아와 비슷한 배양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데, 그 형태적 유사성에 따라 신경배neurula와 유사성이 높은 경우, ‘신경배유사체neuruloid’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워낙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유사체-oid들이 보고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결과들은, 배아줄기세포가 시험관 안에서도 배아와 비슷한 형태형성 과정을 자기조직화 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어떻게 사람의 배 발달 과정이 진행되는지를 자세히 관찰하고, 실험적 조작을 하여 인과관계를 파악한다거나, 특정 과정을 촉진 또는 저해하는 약물을 찾는 등의 연구를 할 수 있는 획기적인 모델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배아유사모델을 만드는 방법에는 확실한 한계가 있다. 좀 복잡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배아줄기세포를 이런 방식으로 배양하는 과정 중 하배엽은 잘 만들어지지 않는 등의 문제점이 있어, 배아와 비슷할 뿐 똑같지 않다. 뿐만 아니라, 배아줄기세포는 배반포 유래 세포 중 하나에서 기원하였으니, 배반포 유사체 blastoid 는 배아줄기세포만으로는 만들 수 없고, 잃어버린 영양세포가 역시 꼭 필요하다. 이들 배아유사 모델들은 결코 완전한 인간 배아로 발달할 수 없는 근원적 한계가 있으므로, 인간 배아의 일부 특징만을 가진 세포덩어리로 간주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까지의 대부분 배아유사 모델들은 완전하지 못하고, 이러한 불완전성은 윤리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지였으며 세간의 주목을 크게 끌지 않았다. 배아줄기세포 자체가 수정란을 파괴하여 만들어낸 세포이고, 이 세포에 관해서는 매우 특별한 윤리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으므로 배아유사 모델 연구는 이미 높은 윤리적 가이드라인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배아유사모델들에 대해서 추가적인 윤리적 고려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실험동물의 경우, 배반포 영양세포를 다른 개체의 초기배아로부터 얻는 것이 가능하므로, 빌려온 태반구성 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합쳐 배반포 유사체를 만들 수 있다. 예전부터 줄기세포 연구자들은 배아줄기세포가 다분화능을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생쥐 배반포의 영양세포층은 그대로 둔 채, 안쪽세포덩어리만을 무력화한 뒤에 실제 실험 방법은 너무 복잡해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배양하던 마우스 배아줄기세포를 넣어주어 재구성한 배아를 대리모에 착상시키면 정상적인 새끼가 태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을 이용해 왔다. 심지어는 배반포에서 영양세포층을 벗겨내어 단세포로 만든 후, 배아줄기세포와 섞어주어도, 이들 세포들이 헤쳐모여 배반포와 비슷한 형태로 자리잡아, 실제 마우스 배반포와 비슷한 모양을 띠게 되었다. 또한 응집체를 계속 배양하면, 실제 배발달과정과 흡사한 과정을 체외에서 재현하였다. 이러한 대 성공은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배반포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주었다. 결국 어디서 인간 영양세포를 구하는가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해결 과제였다. 혹시 마우스의 태반구성세포를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이러한 연구는 인간-동물 키메라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윤리적 쟁점을 야기하므로, 기관연구윤리심의위원회를 통과할 수 없는 계획이다.

하지만, 마우스 배아줄기세포를 조작하여 영양세포를 유도하는 방법을 알아내게 되면서부터, 이 분야 연구의 도약이 일어났다. 체세포를 배아줄기세포로 ‘역분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야 야마나카 박사의 역분화줄기세포 기술로 증명된 이래, 발생학적 순서를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상식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시도가 끊이지 않았고 그 결과, 생쥐 배아줄기세포에 몇 가지 약물을 처리하거나, 단 한개의 유전자를 도입하는 것 만으로 배아줄기세포를 영양세포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이러한 진전과 실험 과정이 좀 더 최적화 되어서, 마우스 초기 배아를 거의 완전한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연구실에서 이 초기 마우스 배아를 인공 배양기 안에서 뇌와 심장이 형성되는 약 8일간 배양하는 것에 성공하였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배반포 배아 모델은 실제 마우스 8일째 배아와 모양과 세포 조성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또한 대리모 생쥐에 이식하는 경우, 완전한 개체가 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초기 착상반응과 배 발달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법은 마우스뿐만 아니라 사람의 배아줄기세포에도 적용 가능하였으므로, 2023년에 미국 예일대, 영국 캠브리지대,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 이렇게 3개 연구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로부터 초기배아 재구성에 필요한 영양세포 및 하배엽 세포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고, 이를 이용하여 거의 완전한 인간 배반포 모델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 배반포 모델은 체외에서 14일간 배양하여, 배엽형성 과정이 재현됨을 보고하였다. 14일 동안만 배양을 유지한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인간 배반포 모델을 더 이상 키울 수 없어서가 아니라, 연구윤리위원회에서 정의한 ‘14일-규칙’ 을 의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든 배반포 배아 모델은,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배아유사 모델과 비교할 때 정상적인 인간 배아처럼 인간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기 때문에, 기존의 모델과는 차원이 다른 윤리적 고려가 필요하다. 배반포 배아모델과 배아유사 모델 둘 다 일종의 배아모델이지만 혼돈을 막기 위하여 이 글에서는 배반포 배아모델만을 배아모델이라 부르고, 배아유사 배아모델은 배아유사모델이라고 부를 테니 구분하여 읽기를 바란다.

그림 1.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자콥 한나 교수연구팀이 인간 배아 모델의 14일 배양 성공을 보고하는 Nature지의 논문. ‘완전한’이라는 용어가 인상적이다 못해 도발적이다. 이 논문에는 배아 모델을 8일간 배양한 배지가, 약국에서 시판되는 임신테스트기에서 양성을 보이는 사진(오른쪽)도 실려 있다. @ nature


14일 규칙

‘14일 규칙’은 1984년 영국의 워녹위원회에서 제안된 이래, 1990년 영국의 인간 수정과 배아에 관련한 법안에 포함되게 되어, 세계적인 기준이 된 규칙이다. 많은 국가에서 영국과 유사하게 14일 규칙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우리 역시 생명윤리법에서도 14일 이상 배아를 배양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규칙이 만들어졌던 이유는, 당시 체외수정법이 임상에서 사용되게 되면서, 불임시술 과정 중 인간 초기배아를 배양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규칙을 정함에 있어서, 배아 연구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라는 관점보다는 임상시술 현장에서 배아를 얼마나 체외에서 배양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하는 관점이 우선하였다. 14일은 신경관이 형성되는 22일 보다 약 1주일 전이기 때문에 신경계의 형성에 따른 자아 의식이라거나 통증과 같이 전통적으로 윤리적인 논쟁이 있을 만한 단계보다 한참 이전이긴 하지만, 보수적 입장에서 초기 인간 배아를 윤리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최대한 짧게 배양 허용 일자를 정하자는 의견과, 배아 연구를 통하여 인류복지에 이바지할 수 있게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인간 배아의 체외 배양을 허용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이 충돌하고 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적당한 합의점으로 설정된 날짜이다. 사실 당시 기술로는 인간 배아를 14일 이상 체외에서 키우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으므로, 보수적인 원리주의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본다면 인간배아 연구를 최대한 열어둔 결정이었다.

인간 배아는 수정 후 5-6일 이내에 자궁에 착상하여 그 이후 발생을 진행하기 때문에, 체외에서 1주일을 넘겨 배양하는 것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마우스 배아 모델을 이용한 연구의 진전을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 배아모델 역시 14일을 넘긴 장기 배양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며, 캠브리지대학의 연구진들은 2016년에 인간 배아를 자궁세포와 공배양하는 방식으로 13일까지 안정적으로 키우는 것에 성공하였다는 보고를 하였다. 14일 규칙이 인간배아 배양의 진전을 막아서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신경계의 형성은 22일 정도가 되어야 완성되므로, 연구자들 사이에선 21일까지로 인간 배아 배양의 허용 기간을 늘여도 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따라 세계줄기세포학회가 주도하는 윤리위원회에서는 21일까지 인간 배아 배양을 가능하게 하자는 윤리적 가이드라인 개정을 제안하고 있다. 그 만큼 불임 문제를 관찰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연구자들에게 늘어날 것이며, 이러한 연구 성과는 인류에게 큰 기회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인간 배아는 이후 인간이 될 수 있으므로, 성인과 동등한 윤리적 지위를 가진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는 14일 규칙 그 자체가 불만족스러운 규정이다. 이런 주장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는 것이 배아줄기세포에 관련한 윤리규정들이다. 배아줄기세포는 배반포를 파괴하여 만들어낸 세포주이므로, 다른 인간 세포주와는 현저히 다른 윤리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어서 높은 수준의 규제와 보고 의무사항 등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보수주의적인 미국의 부시 정부하에서 ‘인간과 동등한’ 윤리적 지위를 가진 배반포를 파괴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이므로, 이미 완성된 세포주 이외에 추가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정책을 펼친 이래, 심지어는 이미 확립된 배아줄기세포까지도 특별한 법적 지위와 관리 체계가 만들어졌다. 반면, 14일 규칙의 논리적 맥락에 따르면, 배반포 시기는 다소 낮은 단계의 윤리적 지위가 부여된 일종의 인간 세포 집합체이다. 이러한 논리라면, 윤리적 지위를 고려할 필요가 낮은 배반포를 파괴하여 만들어진 배아줄기세포에 대하여 특별한 감정이입과 법적 윤리적 보장을 줄 필요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역분화 줄기세포의 경우 배아줄기세포와 거의 동일한 다분화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인간세포와 같은 수준의 규제를 받는 것을 보면, 과학적인 결정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정치사회적 맥락에 의하여 그 기준이 정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완전성과 배아모델의 윤리적 지위

14일 규칙은 원래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시술 및 연구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주로 체외수정을 통하여 불임시술을 하는 과정에서 남은 배아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소수의 연구자만이 접근 가능한 분야였지만, 배아 모델의 경우엔 이야기가 다르다. 잘 확립된 프로토콜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인간 배아줄기세포만 있으면 한꺼번에 수백 수천 개의 배아 모델을 동시에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경험이 있는 연구자라면 누구라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다 심각한 윤리적인 고려와 현실적인 관리 방안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배아 모델이 진짜 배아는 아니기 때문에 배아 모델 연구에 이 규칙을 반영하는데 있어서, 배아와 배아 모델이 얼마나 비슷한지에 대한 판단이 먼저 필요하다. 배아 모델과 실제 배아가 동일하다면, 배아 모델은 정상적인 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실험동물에서 하듯이 사람을 대상으로 아기가 태어나는지 보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지 않으므로, 실천 가능한 튜링테스트가 필요하다. 배아모델 연구자들이 제안한 방식은 1) 허용 가능한 시점까지 배아 모델을 유지하면서 이 배아모델이 실제 인간 배아와 차이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과, 2) 동일한 방식으로 만든 실험동물(특히 유인원)의 배아 모델이 정상적으로 새끼를 낳을 수 있음을 확인한다면, 인간 배아모델도 완전한 상태라고 보자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며, 현재 시점은 1)번 기준을 통과한 셈이지만, 2)번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진하다. 마우스와 원숭이 모델에서 배아 모델을 만들어 대리모에 착상시킨 경우, 초기 발생은 일어났지만, 아직 완전한 개체가 탄생한 사례는 없다. 즉 아직 ‘완전한’ 인간 배아합성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분야 연구자들의 인터뷰나 기고문 들을 읽어보면, 완전한 배아 모델 확립은 시간 문제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배아 모델이 완전해서, 인간 배아와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면 우리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않은 배아 모델에 실제 배아와 동등한 윤리적 지위를 부여해야 할까? 체외수정 기술이 개발되고 임상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려던 시점에 진행되었던 윤리적 논쟁들을 살펴보면, 자식을 원하는 부모에게 이득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적인 방법이 아니라 시험관 내에서 수정이 일어나서 태어난 아이들이 본인의 존재(출생의 비밀?)을 알았을 때 받을 정신적 충격을 고려해야 하고, 이에 따라 체외수정 인간에게 더 자살률이 높지 않은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체외수정이 일반화된 지금 이러한 주장을 다시 들여다 보면, 명백하게 과도한 걱정이었다. 만일 체외수정 인류에게 정신적 충격을 줄 만한 일이 있었다면, 이는 체외수정 인간이 가진 결함 때문이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다수자, 즉 자연수정 인간의 차별에 의한 결과였을 것이다. 존재의 특성이 아니라 존재의 형성 과정 차이를 기준으로 다른 윤리적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윤리적이기보단 폭력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완전한 배아 모델이 있다면, 이 배아 모델은 초기 배아와 동등한 윤리적 가치와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 대부분은 배아 모델과 실제 배아를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둘 모두에 대하여 윤리적을 허용 가능한 시점을 14일에서 21일로 늘여야 한다는 입장에 있다. 아직 완전한 배아 모델 수립에 성공한 사례는 없지만, 실험을 시작하는 시점에는 그 실험이 성공하여 완전한 배아모델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배아모델 연구는 인간 배아 배양에 대한 윤리적 규칙인 14일 안에서만 시도되어야 하며, 이를 넘어서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14일 규칙 자체를 수정하여 인간 배아와 배아모델 모두 체외배양 연구를 21일까지 허용받아야 한다.

하지만, 체외수정을 불임시술법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완전한 배아 모델을 불임시술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또 다른 층위의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배아 모델은 누군가로부터 나온 세포를 이용하여 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아 모델은 결국 ‘인간 복제’의 결과물이 된다. 인간 복제에 관한 수많은 윤리적 논의를 다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지만, 인간복제는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실현 가능하다 하더라도 현 시대의 윤리적 법적 기준은 인간 복제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복제 인간이 태어날 때 일어날 혼란과 예측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를 회피하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아예 ‘그런 일을 만들지 말자’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아 모델을 이용하여 14일 또는 21일까지 일어나는 인간의 생물학적 발생 과정을 이해하고 불임이나 발달 장애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직접적으로 불임치료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편, 완전한 인간 배아모델을 만들지 말고, 가급적으로 실제 배아와는 조금 다른, 불완전한 배아 모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윤리학자들의 조언이 있다. 낭배유사체-신경배유사체-오가노이드 등 의심할 바 없이 불완전한 배아유사모델을 활용하는 것이 더 안전한 길이라는 의미이고, 배아모델, 즉 배반포유사체를 이용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정상 발생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이 주장의 흥미로운 부분은, 배아 모델을 ‘완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이를 회피하여 불완전한 배아 모델을 만들 수 있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불완전한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윤리적 권고는 완전한 배아 모델을 만들기 위한 시도까지 정당화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이 윤리적 딜레마를 회피하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배아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가 인간 초기 배발달 과정을 이해하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해결해 인간 불임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볼 때, 불완전한 배아 모델은 그 효용성이 떨어진다. 또한, 불완전성을 보이는 배아 모델에 더 낮은 수준의 윤리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딜레마가 있다. 만일 불완전하다고 해서 배아 모델에 낮은 윤리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면, 발달장애아에게 다른 윤리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인간이 존엄성을 가진 존재인 이유는, 존재 그 자체 때문이지 인간이 가진 특정 능력의 유무 때문이 아니다. 오랫동안 인류가 수립해 놓은 이 윤리적 기준에 비추어볼 때 완전성 유무를 가지고 배아 모델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어딘가 불편하다. 더구나 의도적으로 연구자가 불완전성을 유발한 것이라면, 연구자의 불완전 유도 행위 자체도 윤리적 고려의 소지가 생긴다.

결론

모든 윤리적 문제는 맥락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윤리적 쟁점들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편익 대비 위험성을 비교하여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다. 이런 관점 하에서 배아모델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폭넓게 허용하자는 것이 학계의 대세 입장이다. 배아 모델은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초기 배발생 장애의 해결책을 찾거나 초기 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피임약을 만들기 위한 약물 탐색을 하는 것처럼, 배아 모델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연구주제들이 있고, 이러한 연구의 성공은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이 될 것이다. 거의 완전한 인간 배아모델의 출현은, 새로운 윤리적 도전이다. 배아 모델이 임상적 불임시술로 발전하여 배아 모델 아기가 태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하지만, 과학기술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발전하여 확산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러한 쟁점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확립하기 위한 논의와 탐색은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인간 발생의 문제는 인류의 근원과 존엄성의 원천을 다루는 것이어서, 시험관 아기 논쟁으로부터 줄기세포, 인간복제, 낙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윤리적 쟁점들이 있어 왔다. AI와 로봇기술이 임계점에 접근하고 있는 현 시대의 또 다른 논쟁들 역시 배아 모델에 대한 윤리적 논쟁과 상호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는 이들 혁신 기술의 진보가, 인간에 대한 윤리적 공론의 문을 열고, 인간의 본질과 존재에 대한 개념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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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웅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