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일반적인 문학작품의 문헌에서 발견되는 여백 혹은 행간의 기록을 난외주석 및 난외주해scholia라고 부릅니다. 호메로스의 작품을 비롯한 여러 문학작품의 난외주해들은 대부분 원문의 어휘나 표현에 대한 부가 설명을 제공합니다. 그 때문인지 지금까지 난외주해는 대부분 텍스트 주해textual scholia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유클리드 원론의 난외주해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평적으로 원론을 읽었던 독자들이 실상 두 갈래의 형태로 자신들의 기하학적 아이디어를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글을 통해 기하학적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텍스트 주해 외에도, 그림을 통해서 기하학적 상황을 묘사하는 시각적 주해visual scholia가 등장한다는 점이 원론의 난외주해가 갖는 독특한 매력입니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독자들이 여백에 남긴 시각적 주해를 살펴보았습니다. 주변부에 위치해 중심부의 본 그림과 대비를 이루는 이 그림들은 원론의 독자들이 그림을 읽고 남겨놓은 다양한 반응들을 보여줍니다. 저는 여백의 그림의 역할을 크게 네 가지 기능–(1)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2)계산을 위해서, (3)다른 사본의 그림들을 서로 비교하기 위해서, (4)여러 상황을 표현하는 다수의 그림을 보여주는 기능으로 간추려 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서 다루지 못했던 마지막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원론의 전승과 관련해 시각적 주해가 가지는 고유한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시각적 주해의 마지막 기능은, 독자들이 원론을 읽는 과정에서 얻게 된 새로운 기하학적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왔다는 점입니다. 독자들은 원론을 읽으면서 떠오른 기하학적인 아이디어들을 여백의 공간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시각적 주해의 마지막 기능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사례로 원론 6권 4번 명제의 시각적 주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명제는 두 개의 닮은 삼각형에서 대응하는 변들은 서로 비례를 이룬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여섯 개의 주요 그리스어 사본에서는 [그림1]처럼 공통적으로 서로 닮은 두 삼각형 ΑΒΓ와 ΔΓΕ이 한 점 Γ를 공유하고 있는 양상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여백에 남겨진 시각적 주해는 두 닮은 삼각형이 서로 교차하는 경우 혹은 한 삼각형이 다른 삼각형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 등 더 다양한 상황에서도 이 비례관계가 성립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각적 주해를 그린 독자는 본 그림의 닮은 두 삼각형이 놓인 특수한 위치를 흐트러뜨린 경우에도 이 명제가 성립한다는 점을 보임으로써 이 명제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슷한 사례를 1권 22번 명제의 시각적 주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소개했던 이 명제는 주어진 세 선분과 같은 길이를 갖는 세 변을 가진 삼각형을 작도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명제는 어떤 문제나 정리가 성립하기 위한 선결 조건인 디오리스모스diorismos가 원론 안에서 처음 등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를 풀기 전에 기하학자는 먼저 주어진 세 선분을 변으로 갖는 삼각형을 작도하는 것이 가능한가의 문제부터 검토해야 했는데, 그 선결 조건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삼각부등식이라고 부르는 내용입니다. 세 선분 중 어떻게 두 선분의 길이를 더하더라도 그 길이의 합이 나머지 한 선분의 길이보다 커야만 그로부터 삼각형을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 텍스트와 본 그림은 선결 조건이 충족된다는 것을 가정하고 삼각형을 작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바티칸 코덱스에 남아있는 시각적 주해는 선결 조건이 어떻게 충족되는가를 그림으로 표현해 두었습니다. [그림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첫 번째 시각적 주해는 서로 접하고 있는 두 원을 보여줍니다. 이 상황은 두 선분의 길이의 합이 나머지 한 선분과 같을 때 삼각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시각적 주해는 서로 교차하지 않는 두 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두 선분의 길이의 합이 나머지 한 선분의 길이보다 작을 때 삼각형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시각적 주해는 본 텍스트, 본 그림에서처럼 삼각부등식을 만족하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두 선분의 길이의 합이 나머지 한 선분의 길이보다 크기 때문에 각 선분을 반지름으로 갖는 원을 그렸을 때 서로 교차하는 두 원을 갖게 되고, 그 교차점을 이용하여 원하는 삼각형을 얻게 됩니다.

 

 

혹자는 시각적 주해를 원론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여백에 남겨진 잉여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원론에서부터 기하학적 지식을 흡수하는 경로가 대개 (1)본 텍스트, (2)본 그림을 통해서이고, (3)여백의 텍스트텍스트 주해나 (4)여백의 그림시각적 주해을 참고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론의 현대어 번역본에서 텍스트 주해나 시각적 주해를 수록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원론의 기하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네 가지 통로 중에서 시각적 주해가 다른 나머지 수단으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시각적 주해는, 원론의 수백 개가 넘는 수많은 명제로 촘촘히 이어진 연역 체계로부터 독자들이 잠시 일탈할 수 있는 유일한 여유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각적 주해 중 일부는 원론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을 보충하기 위한 부연설명이기도 했고, 또 다른 일부는 원론의 한계라고 생각된 부분을 확장하려는 노력이기도 했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원론의 오류를 수정하려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백의 기록들은 독자들의 읽기가 가장 상위의 차원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 지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각적 주해의 매력은 비단 새로운 기하학적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는 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시각적 주해는 원론의 전승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원론의 주석가, 필사가, 번역가, 인쇄업자들이 원론을 읽으려고 사본을 펼쳤을 때, 그들이 보게  된 것은 원론의 본 텍스트와 본 그림들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본 그림, 본 텍스트와 함께 여백에 적힌 앞선 독자들의 기록들과 그림들도 함께 읽게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여백의 기록들이 원론의 전승에서 어떻게 살아남았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물음이 생깁니다. 아직 여백의 기록들에 대한 꼼꼼한 검토가 이루어진 적은 없는데, 지금 단계에서 제가 생각하기로는 시각적 주해는 원론의 전승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여백의 그림들이 원론을 읽는 다양한 자양분을 제공해 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시각적 주해들이 원론의 전승 과정을 더욱더 다채로운 역사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아래에서 시각적 주해가 갖는 두 가지 매력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첫째, 시각적 주해는 원론을 읽는 독자들에게 지속적인 자양분들을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시각적 주해는 독자들이 원론을 읽으면서 다양한 기하학적 아이디어를 여백에 그림으로 남긴 결과입니다. 여러 세대를 거친 원론의 오랜 전승 과정에서 많은 독자들의 반응이 축적된 것이지요. 그래서 원론의 사본들이 전수되는 동안 독자들은 유클리드 원론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앞선 시대의 독자들이 원론을 어떻게 읽었는지 그 반응도 함께 읽게 됩니다. 우리는 때로 유클리드의 원론이라는 하나의 고전이 진공 상태 속에서 지금의 우리에게 전달되었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고전을 훼손시키지 않고 원론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은 고전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 고전은 박제된 상태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독자들과의 대화를 이끌어왔습니다. 우리가 보는 시각적 주해들이 곧 독자와 원론의 기하학자 (유클리드) 사이의 가상의 대화의 결과이겠지요.

비유를 들자면 원론이 2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서구의 기하학적 사고가 뿌리내릴 든든한 나무 기둥의 역할을 했다면, 원론의 여백에 남겨진 기록들은 나무 기둥 속에 켜켜이 새겨진 나이테들과도 같습니다. 원론은 분명 아주 오래되었고 또한 잘 보존된 기하학적 기록으로서 가치를 가집니다. 그러나 원론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오랜 시간 동안 수학의 대표적인 교과서였던 만큼 원론을 통해 기하학을 배웠던 학생들의 중요하고 자잘한 기록들이 그 안에 살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하학적 지식들의 아카이브인 동시에 원론의 열람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각적 주해도 원론의 역사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둘째, 그렇다면 실제로 시각적 주해들이 어떻게 원론의 역사를 더 다채롭게 만들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때로는 텍스트 주해가 본 텍스트에 반영되기도 했고 시각적 주해가 본 그림의 영역으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시각적 주해가 원론의 전승의 역사를 더 다채롭게 만들었다고 말씀드린 이유 중 하나는 어떤 그림이 여백에서 중심부로 이동한 경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백에 있던 시각적 주해가 중심부로 흡수된 사례로 3권 11번의 명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명제의 여백에는 두 원ΑΒΓ, ΑΔΕ가 서로 접하고 있는 그림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본 그림은 텍스트에서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에 의한 증명을 전개함에 따라 모순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이 시각적 주해는 올바른 상황, 즉 한 원이 다른 원 안에 내접하는 상황에서 두 원의 중심을 연결하는 선은 두 원의 접점을 지난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명제의 본 그림과 시각적 주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림4]처럼 여섯 개의 주요 그리스어 사본들의 페이지 레이아웃 mise-en-page을 서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비교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여섯 개의 사본 중 바티칸, 옥스포드, 비엔나 사본에서는 본 그림과 시각적 주해가 다른 필체로 그려진 반면에, 나머지 피렌체, 볼로냐, 파리 사본에서는 본 그림과 시각적 주해가 같은 필체로 그려졌다는 점입니다.1

 

사본들 간에 본 그림과 시각적 주해를 그린 필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은, 시각적 주해가 점점 더 격상되어 다뤄졌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여섯 사본의 시각적 주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그리스어 사본 중에서 가장 초기의 것 (9세기경) 이라고 할 수 있는 바티칸과 옥스포드 사본이 필사되었을 때, 시각적 주해는 함께 필사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시각적 주해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바티칸과 옥스포트 사본의 본 그림과 시각적 주해의 필체가 다르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두 사본을 읽었던 9-10세기경 후대의 독자들이 여백에 시각적 주해를 그려 넣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때가 이 시각적 주해가 만들어진 최초의 시점이 됩니다. 그러다가 10-12세기경 피렌체, 볼로냐, 파리 코덱스를 필사했던 필사가는 본 그림과 시각적 주해가 함께 그려진 바티칸 혹은 옥스포드 사본 계열을 모체로 필사 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피렌체, 볼로냐, 파리 사본들에서 공통적으로 본 그림과 시각적 주해가 동일한 필체로 그려졌다는 점이 설명됩니다.2

 

시각적 주해가 여백을 떠나 점진적으로 본 그림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이동 과정은 베니스에 소장된 한 사본Marciana 301에서 절정을 맞게 됩니다. [그림 5]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사본은 본 그림과 시각적 주해를 그려 넣을 별도의 공간을 텍스트 안에 마련해 놓았습니다. 초기의 사본들에서는 후대의 독자에 의해 사본의 귀퉁이에나 그려졌었던 시각적 주해가 이제는 본 그림에 견줄만한 대접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원론이 한 사본에서 다른 사본으로 옮겨질 때 언제나 본 텍스트와 텍스트 주해 사이에, 본 그림과 시각적 주해 사이에 넘나들 수 없는 벽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시각적 주해가 여백으로부터 원론의 텍스트 안으로 들어와 본 그림과 대등하게 자리하게 됨에 따라, 원론의 그림의 역사를 구성하는 일은 더 많은 질문을 동반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누가 시각적 주해를 고안했는가, 왜 시각적 주해가 본 텍스트에 편입되었는가, 이렇게 격상된 시각적 주해는 독자들에게 다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같은 질문이 떠오릅니다.

다만 아직은 위의 물음들에 대한 답을 얻을 만큼 시각적 주해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게 쌓이지 못했습니다. 하이베르그는 원론의 그리스어 편집본을 만들면서 주요 그리스어 사본들의 텍스트 주해를 꼼꼼하게 수집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시각적 주해에 관해서는 아직 그와 비슷한 수집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섯 개의 주요 사본들의 시각적 주해가 어디서 등장하는지, 그것이 텍스트 주해를 동반하는지, 후대의 사본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시각적 주해에 관한 전체 일람표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은 풀어나가야 할 질문이 많지만, 여백의 그림들을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가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유클리드 원론의 역사의 본류를 구성했던 고대의 주석가들, 필사가들, 번역가들, 인쇄업자들처럼 독자들도 자신들의 그림을 통해 유클리드 원론 속 그림의 역사의 한 지류를 만들어왔다는 점입니다. 수학 과학 고전을 연구하는 과학사학자로서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은, 원론이 우리에게 전달되기까지 그 전승의 계주를 달려온 사람들을 하나하나 조명해 보는 일입니다. 대부분 그들은 유클리드라는 거인의 이름 아래 자신의 이름을 감추었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그림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보게 해주는 워터마크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유클리드 원론에 관해 아직 무르익지 않은 제 생각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론 속 그림의 역사에 관해서는 이번 호까지 총 다섯 편의 글로 마무리 짓고, 앞으로는 그리스 수학 전반에 관한 새로운 연재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의 근원으로 돌아가ad fontes, 우리의 수학을 그들의 수학에 빗대어 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수학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되찾은 것은 무엇인지, 다시 회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은수
스탠포드대학 고전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