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3월 3일, 『하버드 천문대 회보Harvard Collgege Observatory Circular』에는 소마젤란 성운에 속해 있는 25개의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변광성은 별의 밝기가 변하는 항성인데, 그중에서도 세페이드 변광성은 밝아졌다 어두워질 때까지의 주기가 심장 박동처럼 일정한 맥동 변광성이었다. 이런 밝기 변화는 별의 진화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중력에 의한 수축과 복사 에너지에 의한 팽창 사이의 균형이 깨져 팽창과 수축이 반복되면서 나타났다. 별이 수축하면 내부의 핵융합이 활발해져 더 밝게 보이고 팽창하면 어두워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광도 변화가 나타났던 것이다.
하버드 천문대에서 발표한 논문에서는 소마젤란 성운의 세페이드 변광성들을 관찰한 결과 변광성의 광도가 클수록 변광 주기도 길게 나타난다는 주기-광도 법칙을 주장했다. 이 논문은 하버드 천문대장이었던 에드워드 피커링Edward C. Pickering, 1846-1919과의 공동 저작으로 발표되었지만, 논문에는 첫 줄부터 진짜 저자가 누구인지가 명시되어 있었다. “소마젤란 성운에 포함된 25개의 변광성에 관한 다음의 주장은 리비트 양이 준비한 것입니다.”[2] 변광성의 비밀을 밝혀 별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는 지표를 확립한 것은 하버드 천문대의 여성 계산원 헨리에타 스완 리비트Henrietta Swan Leavitt, 1868-1921였다.
별의 밝기를 나타내는 겉보기 등급은 가장 밝은 별을 1등급으로, 가장 어두운 별을 6등급으로 별의 광도를 표시하지만, 이 등급이 별의 절대적 밝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겉보기 등급에는 지구로부터 별까지의 거리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대적 밝기가 같더라도 멀리 있는 별은 가까운 별보다 어둡게 보일 테지만, 겉보기 등급에서는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고려하지 못했다고 하는 말이 더 정확한데,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수도, 계산할 수도 없었기에 겉보기 등급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주시차 측정이 가능해진 뒤에는 100파섹 정도까지 가까운 별들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보다 멀어지면 연주시차 값이 너무 작아서 거리를 측정할 수 없었다. 별의 거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겉보기 등급만 가지고 별에 대해 유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리비트가 발견한 변광성의 주기-광도 법칙은 겉보기 등급이 가진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물론 리비트도 변광성의 절대 등급을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리비트는 소마젤란 성운에 속한 25개 변광성들의 겉보기 등급 간의 관계가 절대 등급 간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별의 광도의 절대 등급은 이론상 모든 별을 지구로부터 같은 거리에 가져다 놓고 밝기를 비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값이었다. 리비트가 관찰한 25개 변광성들은 모두 소마젤란 성운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성운 내에서의 미미한 위치 차이를 무시하면 모두 지구로부터의 거리가 같다는 전제하에서 별들의 밝기를 비교할 수 있었다. 25개 변광성들 각각의 겉보기 등급 간의 밝기 비율이 절대 등급 간의 밝기 비율로 환원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리비트는 소마젤란 성운에 있는 25개 변광성 주기의 로그값이 별의 등급의 중간값, 즉 최대 등급과 최소 등급의 중간값에 비례한다는 주기-광도 법칙을 밝혀냈다. 이 법칙은 변광성 사이의 거리 비를 계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주기가 같은 두 개의 변광성은 절대 등급이 같아야 하지만, 그중 하나가 더 멀리 있다면 그 변광성의 겉보기 등급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빛의 광도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관계에 따라, 멀리 있는 변광성이 가까이 있는 변광성에 비해 4배 어둡다면, 지구로부터 두 변광성 사이의 거리비는 2:1이 된다. 이 중 한 변광성이 지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절대 거리를 알 수 있다면, 이로부터 다른 변광성의 거리도 알아낼 수 있었다.
리비트의 법칙이 별의 거리 측정과 연결된다는 점을 알아챈 사람은 덴마크의 아이나르 헤르츠스프룽Ejnar Hertzsprung, 1873-1967이었다. 1913년 헤르츠스프룽은 우리 은하에 포함된 세페이드 변광성 13개의 연주시차를 측정하여 변광성들의 거리를 알아냈다. 이제 변광성의 거리 기준값이 고정된 것이다. 헤르츠스프룽은 이 거리 기준값과 리비트가 알아낸 소마젤란 성운의 변광성의 주기, 광도 값을 가지고 소마젤란 성운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다. 그 결과 소마젤란 성운은 우리 은하에서 3만 광년 떨어져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주에 있는 대부분의 은하와 성단에는 변광성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변광성만 관찰하면 천체들의 거리 계산이 가능해졌다. 그 시작에 하버드 천문대의 리비트가 있었다.
리비트는 하버드 천문대장 피커링이 뽑은 수십 명의 여성 “컴퓨터” 중 한 명이었다. 1881년 피커링은 천체물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하버드 천문대의 천문대장이 되었다. 어느 날 남자 조수의 비효율적인 업무 처리에 화가 난 피커링은 여자도 그보다는 낫겠다며 가사 도우미였던 윌라미나 플레밍Williamina P. Fleming, 1857-1911에게 복사와 계산 업무를 맡겼다. 플레밍은 피커링의 말을 입증했다. 이후 플레밍을 시작으로 1885년-1900년 사이에 20명의 여성 컴퓨터가 하버드 천문대로 들어왔다. 리비트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 래드클리프 칼리지에서 천문학을 공부한 리비트는 1895년 피커링의 팀에 무보수 조수로 들어왔다.
피커링이 다수의 여성 천문학자를 고용했던 것은 천체물리학자로서 항성분광학stellar spectroscopy이라는 신생 분야의 연구를 시작했던 것과 관련이 깊다. 피커링은 망원경의 대물렌즈 앞에 프리즘을 달아 대물렌즈로 들어오는 별빛을 분산시켜 그 가시광선 스펙트럼을 사진 건판에 찍는 방식으로 별의 데이터를 모으는 “objective-prism”방법을 사용했다. 피커링은 렌즈와 프리즘의 개선을 통해 스펙트럼의 폭을 1/4인치에서 5인치까지 늘릴 수 있었고, 사진 건판 하나에 동시에 수백 개의 스펙트럼을 찍어낼 정도까지 분광학 촬영술을 발전시켰다. 사진 건판이 늘어날 때마다 분류해야 하는 별빛 스펙트럼은 몇백 개씩 늘어났지만 남성 천문학자들은 이 일에 뛰어들지 않았다. 당시 천문학에서 주류는 여전히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천문학이었는데, 미국 여기저기에 최첨단 망원경을 갖춘 천문대가 문을 열면서 능력있는 남성 천문학자들이 자리를 옮겼다. 이와 같은 상황이 여성들에게 하버드 천문대의 문을 열어 주었지만, 여성들의 임무는 주로 별빛 스펙트럼 분류에 집중되어 있었다.
래드클리프 칼리지를 졸업한 리비트나 애니 점프 캐넌Annie Jump Cannon, 1863-1941도 다른 여성들처럼 별빛 스펙트럼 분류 작업에 투입되었지만, 이들의 작업은 하버드의 다른 여성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피커링은 캐넌에게 망원경을 다루는 일을 맡겨서 남성 천문학자들의 영역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 줬고, 리비트에게는 사진건판을 보고 해석을 하는 일과 변광성 연구를 맡겼다.
리비트는 천문대 사진사인 에드워드 킹의 도움을 받아 변광성을 찾아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그것은 바로 음화negative 사진 건판 위에 동일한 사진의 양화positive 사진을 겹쳐 비교하는 것이었다. 음화 사진 건판에서 검게 찍혀 나왔던 별이 양화 사진에서는 하얗게 나왔다. 두 사진 건판을 포개 놓으면 음화 사진의 검은 부분과 양화 사진의 흰 부분이 서로 포개져서 상쇄가 되어 이미지가 사라진다. 하지만 변광성처럼 광도가 변하는 물체는 두 사진 건판을 겹쳐 놓아도 이미지가 완전히 상쇄되지 않고 그 흔적이 나타났다. 이 방법을 사용하여 리비트는 첫 두 달 동안 오리온 자리에서 77개의 변광성을 발견했고, 1905년까지 소마젤란 성운에서만 900개의 변광성을 발견했다. 변광성 발견은 하버드 천문대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 되어 리비트 혼자서 마젤란 성운에서 총 1,777개의 변광성을 발견했고, 플레밍도 310개, 캐넌도 300개의 변광성을 발견했다.
리비트의 변광성 주기-광도 법칙 발견은 하버드 천문대에서 개발한 음화-양화 사진건판 포개는 기법에 힘입은 바가 크다. 마젤란 성운에서 발견한 1,777개의 변광성 중에서 리비트는 변동 주기와 밝기가 뚜렷한 25개의 변광성을 골라냈고, 이 정확한 데이터로부터 주기-광도 법칙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리비트와 하버드 여성 천문학자들의 사례는 과학 연구에서 종종 나타나는 성별 분업과, 분업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위계의 전복을 보여준다. 리비트와 여성 천문학자들이 하버드 천문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담당한 별빛 스펙트럼 분류 작업이 과학적으로 가치가 낮은 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버드의 남성 천문학자들은 페루의 아레키파에 있는 보이든 관측기지로 가서 남반구의 별을 찍는 일을 더 선호했는데, 거기에 진정한 발견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버드 천문대의 별빛 스펙트럼 연구에서는 항성 스펙트럼 촬영과 스펙트럼 분류 사이에 분업이 일어났고, 이 분업은 남녀 간의 성별 분업일 뿐만 아니라 지적인 위계에 따라 나뉜 것이었다. 이는 과학 연구에서 성별 분업이 지적 위계를 동반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남성들이 새로운 천체를 찾기 위해 최첨단 망원경을 쫓아 떠난 자리에서 여성 천문학자들이 새 천체들을 무더기로 발견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지적 위계는 전복되었다. 남성들의 조수로 여겨졌던 여성 천문학자들이 오히려 발견자가 되고 남성 천문학자들은 여성들의 조수가 되었다. 페루 아레키파에 있던 남성 천문학자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사진 건판을 하버드로 보내기 전에 페루에서 먼저 1차적으로 스캔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하버드 여성 천문학자들은 뒤집어진 위계를 되돌리려는 시도를 허용하지 않았다. 플레밍은 그들이 하버드에 뒤치다꺼리만 넘기려 한다고 피커링에게 불만을 표시했고, 피커링은 작업의 효율을 위해 페루에서의 1차 스캔을 중단시켰다.
하버드 연구에서 과학 연구의 지적 위계가 전복된 것은 하버드 천문대장 피커링이 뛰어들었던 항성분광학이 신생 분야였다는 점에 기인한다. 천문학 내의 지형도가 망원경을 이용한 전통적인 관측천문학에서 천체물리학으로 중심이 이동해 가는 과정에서 기존 천문학의 지적 위계가 흔들렸고, 지적 위계 위에 세워진 성별 분업의 위계 또한 뒤바뀌었다. 과학계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리비트와 하버드의 여성 천문학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천문학의 무게 중심이 관측천문학에서 물리천문학으로 이동해가던 변화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거기에 여성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하버드 천문대장 피커링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 에드윈 허블 저, 장헌영 역, 『성운의 왕국』 (지만지, 2014)
- H. S. Leavitt & E. C. Pickering, "Periods of 25 Variable Stars in the Small Magellanic Cloud", Harvard College Observatory Circular, vol. 173, pp. 1-3.
- Klaus Hentschel, Mapping the Spectrum: Techniques of Visual Representation in Research and Teaching (Oxford Univ. Press, 2002)
- Margaret W. Rossiter, Women Scientists in America: Struggles and Strategies to 1940 (Johns Hopkins Univ. Press, 1982)
- 데이바 소벨, 양병찬 역, 『유리 우주: 별과 우주를 사랑한 하버드 천문대 여성들』 (알마,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