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전기에 관한 실험 연구: 28번째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그동안 아껴 두었던 말을 꺼내 들었다.

이 논문을 쓰면서 지난 25-27번 연구에서 힘의 선이라는 용어를 가끔 애매모호하게 사용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이게 그저 힘을 나타내는 표현 방식에 불과한 것일 뿐인지, 아니면 힘이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경로를 나타내는 것인지 의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 그것[힘의 선]이 힘이 전달되는 물리적 방식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면, 내가 요즘 갖게 된 그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

특유의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하고 있지만, 패러데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했다. 자기력이 그려내는 힘의 선은 그저 힘의 공간적 분포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비유가 아니라, 힘이 실제로 작용하는 경로이자 공간에 존재하는 물리적 실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에 걸친 실험, 스물여덟 편의 논문을 거친 후에야 그는 꼭 집어 말할 수 있었다. 힘의 선은 실재한다고. 이렇게 힘의 선, 그리고 그것이 만드는 장field은 분명한 물리적 실재가 되어, 뉴턴이 만든 물리적 세계를 대체했다.

뉴턴의 물리적 세계의 중심에는 힘force이 있었다. 그 힘은 접촉하지 않은 채 두 물체의 질량 중심 간에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밀쳐내는 원거리 작용action at a distance이었다.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상대방을 날려 버리는 장풍처럼, 서로 닿지도 않았는데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면서도 믿겨 지지 않는 일인가? 오늘날 우리는 교과서로 만유인력을 배우며 원거리 작용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신기한지 고민해 볼 새도 없이 공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뉴턴의 원거리 작용 개념을 처음 접했던 17세기 사람들은 이 개념이 영 불편했다. 충돌로 힘이 전달된다는 생각에 익숙했던 이 시대 사람들은 원거리 인력에서 중세의 마술을 떠올렸다. 물리적 매개 작용이나 매질 없이 진공을 통해, 그것도 순식간에 힘이 전달된다는 개념은 당시의 상식과는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원거리 작용이라는 개념은 뛰어난 수학적 설명력과 예측력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잦아들게 했다. 두 점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정전기력을 계산하는 쿨롱의 법칙을 생각해 보자. 쿨롱의 법칙은 수학적 형태가 만유인력과 동일하다. 그래서 물리를 공부할 때 힘을 들이지 않고 외울 수 있었던 공식이다. 쿨롱은 뉴턴의 만유인력을 모델로 하여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측정하는 실험을 설계했던 것인데, 역으로 이 성공이 뉴턴의 원거리 작용의 진리성을 확증해 주었다.

이제 원거리 작용은 자연계에 작동하는 가장 보편적인 힘의 형태로 여겨졌다. 프랑스 혁명 전후로, 사관학교와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라플라스, 몽주, 라그랑주 등 최고의 수학자 아래에서 교육받은 푸아송, 비오 등 프랑스 과학 엘리트들은 뛰어난 수학 테크닉을 무기 삼아 열, 전기, 자기, 모세관 현상 등을 원거리 인력이나 척력으로 설명하는, 소위 “라플라스 프로그램”이라는 연구 프로그램을 추진해 나갔다. 일단 풀고자 하는 현상이 있으면 거기에 입자-열이면 열 입자, 전기는 전기 입자, 자기는 자기 입자 등-를 가정하고 그 입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거리의 n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을 가정하여 현상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세관 현상이 성공적으로 해명되었다.

패러데이의 전자기 연구는 뉴턴식 원거리 작용이 여전히 위세를 발휘하던 182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패러데이는 영국 왕립연구소Royal Institution에서 화학 교수 데이비의 실험을 도우며 전자기 연구에 뛰어들었다. 당시 덴마크의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흐르는 도선의 위나 아래에 나침반을 놓으면 나침반의 바늘이 도선과 직각으로 회전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데이비는 이 실험을 검토하고 있었다. 데이비는 도선을 바닥에 놓는 대신 공중에 수직으로 세웠다. 도선 주위를 쭉 돌게 나침반을 설치하여 도선에 전류가 흐를 때 나침반의 바늘들이 도선을 둘러싼 원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도선 주위에 철가루가 원형을 그리며 정렬되는 것도 알아냈다. 도선 주위에 생기는 자기장은 원형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패러데이는 여기서 더 나가아 전기와 자기의 상호작용의 본질이 회전 운동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패러데이는 [그림1]처럼 독창적인 실험 장치를 고안했다. 이 장치에서 패러데이는 자석을 수은이 담긴 그릇의 바닥에 설치했는데, 자석 하나는 바닥에 완전히 고정시켜 세워놓고(오른쪽), 다른 하나는 움직일 수 있게 설치했다(왼쪽). 도선은 수은 그릇의 위쪽에 설치했는데, 자석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도선은 고정된 채로 수은이 담긴 그릇의 중앙에 담기게 설치하고(왼쪽), 이와 연결된 다른 도선은 움직일 수 있게 해 두었다(오른쪽).

이제 도선에 전류를 흐르게 한다. 수은이 담긴 오른쪽 그릇의 바닥 도선에 (+)극을, 왼쪽 그릇 바닥 도선에 (-)극을 연결하자 오른쪽 수은 그릇으로 들어온 전류는 수은을 통해 공중에 매달린 도선으로 흘러간다. 이렇게 흐른 전류는 왼쪽에 고정된 도선을 따라 수은을 통과하여 왼쪽 바닥의 도선으로 흘러나간다. 이렇게 전류가 흐르고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눈앞에는 두 개의 회전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오른쪽에서는 도선이 고정된 자석 주변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고, 왼쪽에서는 바닥에 매달린 자석이 도선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 이 실험 장치를 통해 패러데이는 도선과 자석 사이의 상호작용의 본질이 원거리 작용에서 가정하는 직선의 인력이나 척력이 아닌 회전 운동이라는 확신을 굳히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뉴턴주의적 세계관에 익숙해 있던 대부분의 학자들은 회전 운동이 본질이라는 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도선과 자석의 회전 운동은 인정했다. 하지만 당시 학자들은 그것이 기본 입자의 인력과 척력의 복잡한 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것일 뿐이라고 짐작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일례로 프랑스의 앙페르는 자석 내부에 원형 전류가 흐른다고 가정한 후에 그 원형 전류와 도선의 전류 사이의 인력과 척력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이 회전 현상을 분석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1821년 전자기 회전을 입증했음에도, 뉴턴식의 원거리 힘의 개념을 벗어나는 과정은 패러데이에게도, 그의 동시대 사람들에게도 느리게, 몇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1831년, 패러데이는 고리 모양의 철심에 두 개의 절연 코일을 각각 감은 후에 한쪽 절연 코일에는 검류계를 연결하여 닫힌 회로를 만들고, 다른 쪽 코일에는 전지를 연결하여 회로를 만들었다. 전지를 연결한 코일에 전류가 흐르는 순간, 이와는 단절되어 있는 옆의 회로의 검류계 바늘이 움직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전류를 끊는 순간에도 검류계의 바늘이 움직였다. 회로에 흐르는 전류가 옆의 회로에도 전류를 만들어 낸 것이었는데, 패러데이는 회로에 흐르는 전류가 주위에 자기장을 발생시키고 이 자기장이 옆의 회로에 전류를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만약 이 생각이 맞다면 굳이 전류를 흐르지 않고도 자석만으로도 전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패러데이는 이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막대 철심에 코일을 둘둘 감아서 검류계에 연결한 후에, 철심의 양 끝에 막대자석을 갖다 대면서 전류가 흐르는지를 확인했다. 자석을 갖다 대거나 떼는 그 순간마다 검류계의 바늘이 흔들렸다. 다음 단계로 패러데이는 철심을 빼고 절연 코일을 원통으로 감은 후에 원통형 코일의 안쪽에 자석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 결과 코일에 연결된 검류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그는 자석으로 전류를 얻는 전자기 유도에 성공했다.

그런데 패러데이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유도 전류가 찰나의 현상이라는 점이었다. 패러데이는 자석을 원통형 코일 안에 집어넣으면 코일에 전류가 지속적으로 흐를 것으로 기대했지만, 전류는 자석을 움직이는 순간에만 흐르고, 자석이 정지해 있을 때는 흐르지 않았다. 고리형 철심에 감은 두 개의 절연 코일 회로에서도 전류가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 전류가 끊어지는 순간에만 그 옆의 회로에 전류가 잠깐 유도될 뿐, 전류가 지속적으로 흐르지는 않았다. 이 점은 뉴턴식으로 생각해도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뉴턴식의 원거리 작용에서는 질량이나 전기, 자기를 띤 입자들은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입자들끼리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전류가 발생하는 것이라면 지속적으로 전류가 흘러야 했다.

패러데이의 힘의 선lines of force, 역선과 자기장과 전기장과 같은 장field 개념은 이 순간적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패러데이는 데이비가 자석 주변의 철가루를 통해 가시적으로 보여줬던 자기력선의 이미지에 주목했다. 1831년 그는 철가루가 나타내는 자기력선을 자기작용선magnetic curve이라고 이름짓고, 자기작용선을 자르는 효과가 나타날 때 도선에 전류가 유도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코일 안으로 자석을 넣으면 자석 주변에 만들어진 자기작용선이 도선에 의해 잘리면서, 수직 방향으로 전류가 만들어졌다. 원형 고리 철심을 감은 코일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도선 주위에서 자기작용선이 “도선에서 나와 팽창”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옆의 코일에 의해 자기작용선이 잘리면서 전류가 발생하고, 반대로 코일에 흐르던 전류를 끊으면 자기작용선이 도선으로 수축해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도 반대 코일에 의해 자기작용선이 끊기면서 전류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즉, 유도전류는 자기작용선이 변화할 때 그 선을 끊는 작용이 생기는 경우에 발생한다고 패러데이는 생각했던 것이다.

힘의 선 개념의 다음 단계는 자기작용선이 힘을 전달하는 통로이자 그 자체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전기화학 분해 실험이었다. 패러데이는 황산나트륨에 적신 리트머스 시험지와 강황 시험지를 1.2m 떨어뜨려 놓고 그사이를 젖은 끈으로 연결한 후에 리트머스 종이에는 정전기 발생 장치를, 강황 시험지에는 방전 꼬리를 연결하여 하나의 회로를 완성했다. 그런 뒤에 전류를 흘려 두 시험지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리트머스와 강황 시험지 모두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관찰했는데, 두 시험지 사이를 21m까지 더 멀리 떨어뜨려 놓아도 이 변화는 동일했으며 전기 분해의 양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만약 원거리 작용이 맞다면, 그래서 거리의 n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한다면, 거리가 멀어질 경우 전기 분해의 양은 달라져야 하지만, 실험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와 함께 이 실험은 두 개의 전극 사이에서 화학분해를 일으키는 힘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기작용선의 잘림에 의한 유도 전류의 발생, 그리고 전기 화학분해에서 전류의 역할 등에 대한 실험을 통해 패러데이는 점차 자기작용선이라는 것이 그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재하는 물리적 실재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굳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확신은 처음 연구를 시작하고도 30년이 넘게 지난 1852년에서야 “전기에 관한 실험 연구: 28번째 시리즈”에서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었다. 공개적인 발표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흘러야 할 만큼 그의 생각은 원거리 작용에 익숙해 있던 당대의 물리학자들에게는, 그리고 패러데이 자신에게조차도 낯선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패러데이로 하여금 당대의 주류였던 생각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힘의 선과 장 개념으로 갈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는 어떻게 힘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일까?

그에 관한 첫 번째 설명은 학계의 비주류였던 그의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패러데이는 가난한 대장장이 집안에서 태어나 읽기와 쓰기를 겨우 배우고 인쇄소의 제본공 도제로 들어갈 정도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제본하는 책들로 스스로 독학을 하면서 당대의 과학 이론들을 배웠지만 막 프랑스에서 수입되어 들어오던 어려운 해석학calculus은 독학으로 깨닫기가 어려웠다. 당시 프랑스의 과학 엘리트들과 영국 케임브리지 출신의 과학 엘리트들이 수학 도사로 거듭나고 있던 시절, 수학은 패러데이의 최대의, 그리고 평생의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패러데이는 그들이 가진 뛰어난 수학적 테크닉이 없었기에 회전 운동을 직선 원거리 작용의 복합적 작용으로 환원하여 사고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실험의 시각적 효과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전자기 회전 운동이나 전자기 유도 실험, 그리고 전기화학 분해 실험은 도선과 자석의 회전으로, 검류계 눈금의 움직임으로, 그리고 지시약 시험지의 색깔 변화로 전자기 현상을 명시적으로 보여주었다. 수학이라는 언어 대신, 그는 실험의 결과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를 개발했던 것이다.

패러데이가 조수로 고용되어 후에 교수로 평생을 지낸 왕립연구소Royal Institution가 대중강연을 위한 기관이었다는 점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다. 인기 있는 과학 강연가로서 패러데이는 강연홀을 채운 청중을 감동시킬 시범 실험demonstration experiment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수학이나 어려운 설명 없이도, 그 실험의 가시적인 효과만으로도 청중을 놀라게 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많은 실험들이 실험 그 자체의 효과만으로도 많은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왕립연구소의 대중강연가로서 그의 지위와 연관되어 있던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기 현상들을 연구하고 그것을 하나로 연결해서 사고할 수 있었던 점도 선의 힘과 장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주로 물리적 전기 현상에 초점을 맞췄던 다른 학자들과 달리, 전기분해라는 화학적 현상까지도 패러데이의 전기 연구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전기 화학분해에 대한 연구 덕분에 그는 원거리 작용에서 중요했던 거리(r)라는 변수를 빠르게 포기할 수 있었다.

실험 현상의 시각화visualization라는 강점으로 바꾼 패러데이는 자기력선과 그 작용을 우리 눈앞에 인상적으로 펼쳐냈다. 하지만 수학의 부족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패러데이의 주장대로 자기력선이 공간에 물리적으로 실재하고, 그 선을 따라 힘이 전달된다면, 그 힘이 전달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원거리 작용에서는 힘이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데 비해, 자기력선을 통해 힘이 전달된다면 힘이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인가? 자기력선이 물리적 실재라면 자기력선이 펼쳐져 있는 그 공간에는 에너지가 실려 있을까? 그 에너지의 크기는 얼마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현상을 보여주는 실험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제 수학적 무기가 필요한 순간이 되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패러데이는 이런 질문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는 못했다. 그는 힘의 선과 장의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그것의 발전에는 가시적 실험 결과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이제 그 일은 엄청난 수학적 훈련을 통해 단련된 신세대 물리학자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이제 맥스웰의 시간이 시작된다.

참고문헌

  1. 정동욱, <패러데이&맥스웰: 공간에 펼쳐진 힘의 무대> (김영사, 2010)
  2. Robert D. Purrington, Physics in the Nineteenth Century (Rutgers University Press, 1997)
박민아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