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과 원자

20세기 초 물리학자들은 원자를 기반으로 물질을 이해한다는 거대한 혁명 속에 휘말려 있었다. 새로운 현상이 잇달아 발견되었고, 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원자라는 개념이 확립되었으며, 원자는 차츰 개념에서 실체가 되어 갔다. 원자를 물리적 실체로 다루게 되자 원자의 스케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하고 실험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와 관련해 전 세기말에 이루어진 새로운 발견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95년 말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뢴트겐Wilhelm Konrad Roentgen, 1845-1923은 음극선관을 가지고 실험을 하다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매우 투과성이 강한 전자기파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현재 우리는 이 전자기파를 X선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 소속의 과학자 베크렐은 1986년 초 우라늄에서 투과성이 강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앞으로 방사선이라고 불리게 되는 현상이었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톰슨은 1987년 전기장과 자기장이 음극선에 미치는 효과를 조사하여 음극선이 일정한 전하-질량 비를 가지는 입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밝혔다. 오늘날 이 입자는 전자라고 부른다.

특히 방사선은 원자 자체의 특별한 성질로서 관심 있게 연구되었다. 방사선의 정확한 의미는 외부에서의 자극 없이 원자에서 저절로 나오는 에너지를 말한다. 처음에는 방사선이 단순히 전자기파라고 생각해서 선 ray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곧 방사선에는 [그림1]과 같이 자기장에 영향을 받는 방식에 따라, (+)전기를 띠는 무거운 입자, (-)전기를 띠는 가벼운 입자, 그리고 전자기파라는 세 종류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들을 각각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이라고 한다. 알파선을 이루는 입자는 헬륨의 원자핵이고, 베타선을 이루는 입자는 전자임이 밝혀졌다.

이 중 알파선은 입자가 무겁기 때문에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커서 물질 내부를 탐구하는데 매우 유용했으므로, 여러 과학자들이 알파선을 이용해서 물질의 구조를 탐구했다. 특히 뉴질랜드 출신의 영국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897는 190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을 때 노벨 강연으로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알파 입자의 화학적 본성The Chemical Nature of the Alpha Particles from Radioactive Substances>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을 정도로 알파선을 중요한 도구로 삼았다.

알파선을 이용한 러더퍼드의 주요한 업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실험이 있다. 알파선을 금박에 쏘아서 크게 튕겨 나오는 것을 발견해서 원자 속에 원자핵이 존재함을 보인 유명한 산란 실험과, 질소 기체에 알파선을 쏘아서 산소와 수소가 나오는 것을 관찰하여 원자핵이 다른 원자핵으로 변환될 수 있음을 보이는 동시에 수소 원자핵이 원자핵을 이루는 기본 단위임을 간파한 실험 등이 있다. 한편 독일의 보테, 프랑스의 졸리오-퀴리 부부, 그리고 러더퍼드의 제자인 채드윅 등은 알파선으로 베릴륨 원자를 때려서 중성자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물질 속으로

러더퍼드는 1919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캐번디시 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당시 캐번디시 연구소는 원자물리학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러더퍼드와, 러더퍼드의 스승이기도 한 전임 소장 톰슨을 비롯해서, X선으로 물질의 결정구조를 알아내어 191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브래그 부자, 질량분광계를 만들어 원소들의 질량 스펙트럼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192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애스톤 등이 연구소에 포진하고 있었고, 러더퍼드의 탁월한 리더십에 힘입어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계속 들어왔다. 이후로도 캐번디시 연구소는 러더퍼드의 지도 아래 다섯 명이 더 노벨상을 받게 된다. 노벨상이 1901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시 케임브리지 물리학의 위용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존 콕크로프트John Cockcroft, 1897-1967는 1924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세인트 존 컬리지에서, 어니스트 월튼Ernest Thomas Sinton Walton, 1903-1995은 1927년 트리니티 컬리지에서 학위를 받은 후 각각 러더퍼드 사단에 합류했다. 콕크로프트와 월튼은 1928년부터 함께 입자를 가속시키는 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속 장치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원자핵에 대해 더 깊은 탐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원자핵의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탐사 도구인 알파 입자를 원자핵과 상호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당시 실험에서는 폴로늄 등의 방사성 원소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알파 입자를 사용했는데, 알파 입자는 모두 (+) 전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자핵과는 반발력이 작용했다. 따라서 알파 입자가 반발력을 이기고 원자핵과 상호작용하게 하려면 매우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자연적으로 나오는 알파선의 에너지는 조절할 수 없으므로 인위적으로 입자를 가속시키면 실험의 효율이 크게 좋아질 것이었다.

가속기 자체의 원리는 간단하다. [그림2]와 같이 전위차를 만들면 (+)극과 (-)극 사이에서 전기를 띤 입자가 전기적인 힘을 받아 가속된다. 더 높은 에너지를 얻으려면 더 높은 전압을 걸어서 가속시키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가속 장치를 만들려면 고전압을 얻는 문제, 가속되는 입자가 공기 분자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진공을 만드는 문제 등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콕크로프트와 월튼은 회로를 개발해서 [그림3]처럼 수십만 볼트를 발생시킬 수 있는 고전압 발생기를 제작했고, 여기서 나온 직류 전압을 전극에 걸어 입자를 가속시키는 가속기를 만들었다. 1932년 4월 이들은 직접 개발한 가속기를 이용해서 가속된 양성자를 리튬 원자에 충돌시켜 헬륨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원자핵 물리학에 가속기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콕크로프트와 월튼은 ‘인공적으로 가속된 원자 입자로 원자핵을 변환시키는 선구적인 일을 한 공로for their pioneer work on the transmutation of atomic nuclei by artificially accelerated atomic particles’로 195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29년 미국의 젊은 물리학자 반 데 그라프Van de Graaff , 1901-1967 역시 높은 전압을 얻을 수 있는 고전압 발생기를 구상해서, 수백만 볼트를 낼 수 있는 전압 발생기를 제작했다. 그의 이름을 딴 ‘반 데 그라프 발전기’는 지금도 대학 물리학 실험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반 데 그라프 발전기는 두 개의 전극에 전위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하를 하나의 전극에 모아서 접지 상태보다 높은 전압을 얻기 때문에, 가속기로 이용할 때는 전극과 표적 사이의 전압 차이에 의해 입자가 가속된다.

 

 

사이클로트론

두 전극 사이에 직류 전압을 걸어서 입자를 가속시키는 방식은, 고전압을 무한정 만들 수도 없고 전극 사이의 거리를 원하는 만큼 멀리 놓을 수도 없으므로 높은 에너지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르웨이의 롤프 비데뢰Rolf Widerøe, 1902-1996는 여러 개의 가속 장치를 이어 붙여서 가속을 반복하는 선형 가속기를 제안했다. 비데뢰는 1928년 독일의 아헨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 중에 가속 장치의 전압을 교대로 바꿔주어 지나가는 입자를 계속해서 가속시키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미국 버클리 대학의 어니스트 로렌스Ernest Orlando Lawrence, 1901-1958는 비데뢰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현대 가속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클로트론cyclotron을 발명했다. 사이클로트론의 원리는 [그림4]와 같다. 전기를 띤 입자가 자기장 속에서, 자기장과 수직인 방향으로 움직이면 진행 방향과 자기장에 모두 수직인 방향으로 전자기적인 로렌츠 힘을 받는다. 즉 자기장의 방향이 아래에서 위쪽이면, 양성자는 진행 방향의 오른쪽 방향으로 힘을 받는다. 그런데 이 힘의 방향은 입자가 방향을 바꾸어도 여전히 입자가 진행하는 방향의 오른쪽으로만 작용한다. 따라서 이런 힘을 받는 입자는 일정한 속도로 원운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가속기가 자기장 속에 있으면 가속된 입자는 회전하여 반원을 그리고 다시 가속기로 돌아온다. 이때 입자가 반대 방향에서 가속기로 들어오므로 가속기에 걸리는 전압의 부호를 바꾸어주면 다시 가속시킬 수 있다. 이렇게 자기장 속에서 가속기에 걸리는 전압의 부호를 바꾸어서 하나의 가속기로 반복해서 가속시키는 장치가 바로 사이클로트론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자기장의 세기가 일정할 때 입자가 가속되어 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큰 원을 그리며 회전하게 되는데, 이때 입자의 궤도가 길어진 효과와 속도가 빨라진 효과가 정확히 상쇄되어 가속기로 돌아오는 시간이 같아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입자의 질량과 자기장의 세기를 고려해서 가속기에 일정한 진동수의 교류 전압을 걸어주면, 가속기 양단의 전압의 부호가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바뀌므로 입자는 저절로 반복하여 가속되면서 점점 큰 원을 그리게 된다. 이 교류 전압의 진동수를 사이클로트론 진동수라고 부른다. 입자가 충분히 가속되면 자기장을 끄고 바깥으로 빔을 뽑아내어 이용한다.

로렌스가 1931년 1월 2일 최초로 제작한 사이클로트론은 지름이 5인치(약 12cm)이고 제작비는 25달러에 불과했는데, 2000 V의 전압으로 가동해서 양성자를 8만 eV까지 가속시켰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값싸고 간단하게 높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사이클로트론의 장점이다. 즉 하나의 가속기만을 사용하므로 작은 공간에서도 사용이 가능했고, 한꺼번에 높은 속도를 얻는 게 아니므로 고전압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공로로 로렌스는 193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 노벨상은 미국의 주립대학에서 수상한 첫 번째 노벨상이기도 했다.

사이클로트론으로 입자를 더 높은 에너지까지 가속시키려면 원리적으로 크기가 더 커져야 한다. 로렌스의 조수 리빙스턴과 슬론이 만든 두 번째 사이클로트론의 지름은 약 11인치(약 27cm)였고, 출력은 100만 eV에 이르렀다. 로렌스는 다시 더 큰 사이클로트론을 만들었다. [그림5]에서 볼 수 있는 세 번째 사이클로트론은 지름이 27인치(약 67cm)가 넘었고 양성자는 5백만 eV까지 가속되었다. 한편 로렌스의 연구실은 독립된 연구소로 확대되었다. 1931년 8월 개원한 이 연구소의 이름은 “방사선 연구소Radiation Laboratory“였다. 27인치 사이클로트론은 연구소의 첫 사이클로트론이 되었다.

 

방사선 연구소는 1930년대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하여 핵물리학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했다. 새로운 사이클로트론을 설계하고, 제작하고, 운용하기 위해 물리학자는 물론 테크니션과 인접 분야의 과학자 등이 연구소에 모여들었다. 로렌스는 학문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고, 연구소에 기부금을 모금하는 일도 잘 해냈다. 방사선 연구소는 전통적인 학과의 틀을 넘어서는 학제 간 연구 및 대형 팀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과학을 구현하는 곳이었다. 이에 대학은 1936년 7월 1일 자로 방사선 연구소를 물리학과에서 분리하여 독립된 연구소로 만들었다.

1940년부터 로렌스는 지름 184인치(약 4.6m)의 사이클로트론을 계획했다. 이를 위해 샌프란시스코만을 내려다보는 캠퍼스 뒤쪽의 언덕에 새로운 연구소 건설을 시작했고, 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늦어지기는 했지만, 1946년 184인치 사이클로트론과 함께 연구소가 완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로렌스가 사망한 후 1959년 연구소의 이름을 로렌스 방사선 연구소Lawrence Radiation Laboratory로 바뀌었다. 1971년 리버모어에 제2연구소가 생기면서 버클리 캠퍼스의 연구소는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5년에는 당시 소장이었던 찰스 섕크의 요청으로 연구소의 정식 이름이 로렌스의 완전한 이름대로 어니스트 올랜도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Ernest Orlando 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가 되었다.

사이클로트론은 원자핵 물리학 연구에 어마어마한 발전을 가져왔고, 핵 이하의subatomic 세계를 연구하는 문을 열었다. 최초로 입자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도 버클리의 사이클로트론이었다. 가속기에서 만들어낸 에너지가 충분히 높으면 E=mc2에 의해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입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브라질 출신의 라테스는 영국 브리스톨 대학에서 우주선으로부터 파이온을 처음 관측하는 실험에 참가했는데, 이후 그는 버클리에서 가드너와 함께 사이클로트론으로 가속시킨 알파 입자를 탄소 원자에 충돌시켜 인공적으로 파이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싱크로트론

로렌스의 184인치 사이클로트론은 사실 사이클로트론의 한계에 다다른 가속기였다. 사이클로트론의 한계는 명백했다. 입자가 가속될수록 입자 궤도의 회전 반경이 커지기 때문에 가속기가 점점 더 커져야 했다. 그런데 사이클로트론은 전체가 자기장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하므로 사이클로트론이 커지면 자석도 따라서 커져야 했다. 이러한 자석을 만드는 일, 자석의 무게, 그에 따른 비용 등은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184인치 사이클로트론의 경우 자석의 무게만 4,500톤에 달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큰 문제는 한스 베테Hans Albrecht Bethe, 1906-2005가 지적한 상대성 이론의 효과다. 사이클로트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기장의 세기가 일정하고 가속기의 전압 부호를 바꿔주는 교류 전압의 진동수도 일정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입자의 속도가 가속되어 빛의 속도의 10%가 넘으면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입자가 무거워지는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더 이상 입자가 원운동을 할 때 걸리는 속력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아서, 가속 장치 전압의 진동수나 자기장의 세기를 조절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가속기 전압의 진동수나 자기장의 세기를 조정하는 가속기를 ‘싱크로사이클로트론Synchrocyclotron’이라고 한다.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의 184인치 가속기는 사실 싱크로사이클로트론이었다.

초기 방사선 연구소의 스타 과학자였던 에드윈 맥밀런Edwin Mattison McMillan, 1907-1991은 뛰어난 실험가였다.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1934년 방사선 연구소에 합류한 맥밀런은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해서 우라늄보다 무거운 93번 원소를 최초로 만들고 이 원소에 ‘넵투늄neptuni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맥밀런은 2차 세계대전 동안 MIT에서 레이더 연구를 했고,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방사선 연구소로 돌아왔다.

1945년 맥밀런은 사이클로트론을 개선시킨 새로운 가속기를 만들었다. 맥밀런의 가속기는 사이클로트론처럼 입자가 원형 궤도를 돌게 하는 원형 가속기지만, 입자의 궤도가 일정하게 정해지고 자기장은 전적으로 입자의 움직임에 연동해 변하면서, 입자가 궤도를 따라서 움직인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가속 장치 역시 입자의 움직임에 연동하여 반복해서 입자를 가속시킨다. 가속장치와 자기장이 입자의 움직임과 연동synchronized되므로 이러한 가속기를 싱크로트론synchrotron이라고 부른다. 싱크로트론에서는 자기장과 가속 전기장이 별개로 작동하므로 원리적으로는 반복 가속함으로써 입자를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높은 에너지까지 가속시킬 수 있다.

[그림6]에서 빨간색 부분이 자기장으로 입자의 궤도를 조정하는 부분이다. 사이클로트론이라면 가속기 전체가 자기장 안에 있어야 하지만, 싱크로트론에서는 이렇게 아주 작은 구역에만 자기장을 걸어주면 충분하다. 따라서 가속기가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이로써 오늘날의 거대 가속기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자기장으로 궤도가 조절된 이후 입자는 직선으로 움직이는데, 가속 장치는 이 부분에 설치되어 입자를 가속시킨다. 그래서 사실 싱크로트론은 원형이라기보다 다각형 모양이다.

독일 출신으로 시카고에서 페르미 밑에서 공부한 잭 슈타인버거와 동료인 파노프스키, 스텔러는 방사선 연구소의 330 MeV 싱크로트론을 이용해 중성 파이온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가속기를 통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입자를 발견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후 더욱 높은 에너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거대 가속기가 계속 건설되었다.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의 베바트론Bevatron, 브루클린 국립 연구소의 코스모트론Cosmotron, AGS, 페르미 연구소의 테바트론Tevatron 등이 미국의 거대 가속기의 흐름을 이었으며, 유럽에서는 CERN 연구소에 PSProton Synchrotron, SPSSuper Proton Synchrotron, LEPLarge Electron Positron collider, LHCLarge hadron Collider 등이 건설되었다. 그 밖에도 러시아, 독일, 일본, 중국 등에 입자물리학 연구를 위한 대형 가속기가 건설되었다. 가속기의 에너지는 수백 MeV였던 로렌스의 184인치 사이클로트론에서 최초로 GeV의 출력을 낸 코스모트론, 베바트론의 6.3 GeV, 약 30 GeV 출력의 PS와 AGS, 약 400 GeV 출력의 SPS와 테바트론의 전신 가속기, 최초로 TeV 에너지에 도달한 테바트론을 거쳐 현재 7 TeV의 에너지를 내는 LHC에 이르고 있다. 이들 가속기는 모두 싱크로트론이다.

이들 거대 가속기에서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이루는 많은 입자들이 만들어지고 확인되었다. 이러한 입자들의 연구를 통해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이 철저하게 검증되었고, 지금도 더욱 자세히 연구되고 있다. 또한 표준모형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도입된 이론이 예측하는 새로운 입자를 찾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가속기의 진화

지금까지 주로 가속기의 에너지를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가속기의 원리와 역사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가속기는 새로운 분야로 이용되며 발전하기도 하였다. 가속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온 모습을 간단히 살펴보자.

충돌장치collider는 가속시킨 입자를 반대 방향에서 서로 충돌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1970년대까지의 가속기 연구는 말 그대로 입자를 가속시켜서 가속된 입자 빔을 만들고, 이 빔을 고정된 표적에 충돌시켜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에너지의 대부분이 표적 입자를 튕겨내는 데 사용되어 실제 충돌 에너지는 약 10%에 불과하게 된다. 두 입자를 같은 속도로 가속시켜서 정면으로 충돌시키면 두 입자의 에너지의 전체 합이 곧 충돌에너지가 되어 훨씬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장치를 충돌장치라고 부른다. 1970년대에 빔 조종 기술이 발전하면서 충돌장치가 개발되었고, 최근의 높은 에너지를 얻기 위한 가속기는 처음부터 충돌장치로 건설된다. 

한편 저장 링storage ring이란 입자 빔을 일정한 속도로 유지하는 싱크로트론을 말한다. 저장 링이라고 해서 가속을 시키지 않는 것은 아니며, 여러 가지 이유로 입자의 에너지가 변하면 가속장치를 이용해서 이를 보정한다. 마지막 연재글에서 다룰 방사광 가속기는 대표적인 저장 링으로서, 전자를 저장 링 안에서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키며 여기서 나오는 방사광을 사용하는 시설이다. 방사광에 의해 전자는 계속 에너지를 잃게 되므로, 가속장치를 통해 이를 보충해 준다. 사실 고에너지 입자 충돌장치도 입자 빔을 원하는 에너지까지 가속시킨 다음에는 그 에너지를 유지하면서 계속 충돌시키기 때문에 저장 링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가속기가 입자를 전자기력으로 가속시키기 때문에 전하를 띠고 있어야 하며 가속 중에 붕괴되어 버리지 않도록 충분히 수명이 긴 안정된 입자여야 한다. 입자물리학 실험에서는 주로 전자와 양성자를 가속시킨다. 초기 가속기에서는 알파 입자도 많이 사용되었다. 원자핵 물리학 실험에서는 원자에서 전자를 제거한 원자핵 자체를 가속시킨다. 사용되는 원자핵은 가벼운 탄소부터 금, 납 등 무거운 원자핵까지 다양하다. 한편 고에너지 가속기에서는 광자 충돌장치도 논의되고 있다. 빛 자체를 직접 가속시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지만, 가속된 고에너지 전자에 레이저를 쏘아서 고에너지 광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만든 고에너지 광자를 충돌 시킨다는 구상이다. 또한 힉스 입자를 대량으로 만드는 장치로서 뮤온 충돌장치도 논의되고 있다. 힉스 입자의 상호작용은 입자의 질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전자보다 무거운 뮤온을 이용하면 전자 충돌 실험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힉스 입자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아직은 연구 단계에 있다.

가속기는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속기는 그리 멀리 있는 기계가 아니다. 오늘날 대형병원은 대부분 암 등을 치료하기 위해 방사선 치료용 가속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가속기는 보통 사이클로트론인데, 국립암센터의 사이클로트론은 출력이 무려 230 MeV에 달한다. 양성자를 직접 사용하는 방사선 치료 외에도, 의료용 가속기는 방사광을 이용하거나 치료용으로 쓰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드는 데에도 쓰인다. 사실 예전 TV의 브라운관은 가속시킨 전자빔을 자기장으로 조종하여 앞쪽의 형광판에 상이 나타나게 하는 장치이니, TV마다 전자 가속기가 모두 달려있던 셈이다.

지금까지 입자 가속기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보았다. 가속기는 현대 물리학의 지식과 고도의 기술이 망라된 최첨단 장치이며, 점점 더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는 현대 기술의 총아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가속기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이강영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