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기본 단위, 주기율표, 그리고 핵종도표

‘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로서 원소’라는 개념은 그 기원이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랫동안 물리학, 화학 등 여러 자연과학 분야의 기틀이 되어왔다. 150여 년 전 멘델레예프가 처음 고안한 이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주기율표에는 지금까지 확인된 총 118개의 원소들이 ‘원자 번호’라고 하는 각자의 번호에 맞춰 자리를 잡고 있다. 원자의 중심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 둘을 묶어 ‘핵자’라고 한다) 이루어진 무거운 원자핵이 있는데, 원자핵에 포함되어있는 양성자의 개수만을 따져서 원자 번호를 부여한다.

그렇다고 중성자들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양성자의 개수에 따라 원소의 종류가 결정이 되지만, 중성자의 개수로는 원소의 동위원소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기율표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원자 번호 1인 수소 원자를 예로 들어보자. 자연상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부분의 수소 원자는 중심에 오직 한 개의 양성자만을 갖고 있다(약 99.985%). 하지만 아주 가끔은 수소 원자핵에 중성자가 1개나 2개 포함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수소 원자의 동위원소로서 각각 중수소(약 0.015%)와 삼중수소라고 부른다.

원소의 화학적인 성질은 원자 번호에만 영향을 받으므로 수소, 중수소, 그리고 삼중수소는 화학적으로 모두 같다. 하지만 핵물리학적으로는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이는데, ‘반감기’가 대표적이다. 수소와 중수소는 안정적인 동위원소라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일단 생성이 된 후에는 핵반응과 같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소멸되거나 다른 원소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삼중수소는 방사성 동위원소이기 때문에, 반감기라고 하는 일정한 시간(삼중수소의 경우 12.3년)이 지나고 나면, 원래 양의 절반은 방사성 붕괴를 통해 다른 원소로 변해버린다.

 

양성자 개수로 원소를 구분한 주기율표만으로는 모든 원자핵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같은 수의 양성자를 갖더라도, 중성자의 개수에 따라 반감기나 핵반응률 등 핵물리학적인 성질이 크게 다른 동위원소들로 나뉘기 때문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와 그 동위원소들까지, 다시 말해 양성자 수와 중성자 수로 정의할 수 있는 모든 핵종들을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게 그려놓은 것이 [그림1]의 핵종도표이다. 각 핵종의 중성자와 양성자 개수를 각각 x축과 y축에 표시함으로써 주기율표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던 각 원소의 동위원소들까지 하나의 도표 안에 모두 담았다. 자연에는 약 250여 개의 안정적인 핵종들이 존재하고(빨간색), 현재까지 약 3,000개의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발견되었으며(녹색), 이론적으로는 존재할 것으로 믿고 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핵종들도 약 10,000개 정도나 있다(회색).

 

방사성 중이온가속기 라온

총 사업기간 10년(2011년-2021년), 1조 4,314억 원에 달하는 사업비, 잠실야구장이 무려 36개 정도나 들어갈 수 있는 952,066 m2의 면적. 머릿속에 그리기 힘든 규모로 대전시 신동지구에 건설 중인 방사성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은 ‘희귀동위원소 기반의 최첨단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시설이다.([그림2])

라온은 충분한 시간 동안 가만히 두면 방사성 붕괴를 통해 안정적인 원소로 변해갈 무거운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성·가속하여 핵물리, 물성, 핵의학, 핵화학, 생물학 등 매우 폭넓은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 활용하겠다는 사뭇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그 양이 매우 작아 희귀한 방사성 동위원소를 가속한다는 점에서, 전자나 양성자를 가속하는 다른 종류의 입자가속기들과는 (방사광가속기, 사이클로트론 등) 뚜렷하게 구분된다. 희귀한 동위원소를 만들어내는 것부터가 힘든 일이고, 전자나 양성자에 비해 최소 수 배에서 최대 수십만 배까지 무거운 중이온을 (통상적으로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와 그 동위원소들을 말한다) 정확한 에너지로 가속하여 원하는 위치에 빔beam으로 제공하는 것 또한 힘든 일인데, 도대체 어떤 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일까?

 

미국의 FRIB, 캐나다의 TRIUMF, 프랑스의 GANIL, 독일의 GSI, CERN의 ISOLDE, 일본의 RIBF 등 세계 각국의 주요 방사성 중이온가속기 시설에서는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하기 위해 비행 파쇄 방식In-Flight Fragmentation, IF 혹은 온라인 동위원소 분리 방식Isotope Separation On-Line, ISOL 중 하나를 사용한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방사성 원소를 만들어내다 보니, 두 종류의 시설에서 제공할 수 있는 방사성 빔의 종류가 제법 다르다.

[그림3]과 같이 핵종도표 위에 IF 시설과 ISOL 시설에서 제공할 수 있는 중이온 빔을 그려보면 차이가 확실하게 보인다. 라온에서는 IF 방식과 ISOL 방식을 모두 이용할 예정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어느 가속기 시설보다 다양한 종류의 방사성 중이온 빔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단지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이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초로 ISOL 방식과 IF 방식을 결합하여 지금껏 지구상에서 보지 못했던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 역사상 아무도 가져보지 못한 빔으로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3]에서 ‘ISOL+IF’로 표현한 부분은 대부분 미지의 영역이다!)

 

라온에서는 천체의 핵합성 반응 및 핵구조를 연구하기 위한 시설인 KoBRAKorea Broad Acceptance Recoil spectrometer & Apparatus, 되튀김 분광기, 극한 핵물질 대칭에너지 연구를 위한 LAMPSLarge Acceptance Multi-Purpose Spectrometer, 다목적 대영역 입자측정장치, 핵에너지 생성과 무거운 원소 합성 방법 등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방사성 희귀 동위원소의 질량을 정밀한 수준으로 측정하기 위한 MMS/MR-TOFMass Measurement System / Multi-Reflection Time-of-Flight, 다중반사 시간비행장치, 물질의 미세구조를 비파괴 방식으로 연구하기 위한 mSRMuon Spin Rotation/Relaxation, 뮤온 스핀 분광기 등 다양한 종류의 실험 장비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KoBRA의 역할을 중심으로 방사성 중이온가속기 시설을 소개하려고 한다.

 

원소의 기원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3/4 정도는 수소, 1/4 정도는 헬륨이다.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원소들 중 가장 가벼운 두 개만으로도 물질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비율은 우주가 시작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우리 주변의 모든 물건을 이 두 종류의 원소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수소와 헬륨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생활에서 기체인 상태로 존재하니 말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몸의 구성 원소들만 따져봐도 그렇다.([그림4]) 우주 물질의 1/4을 차지한다는 헬륨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수소의 비율도 고작 10% 수준에서 그친다. 그에 비해 탄소(C, 18.5%), 산소(O, 65%), 질소(N, 3.2%)의 비중은 제법 높아, 수소(H)와 함께 생명체를 구성하는 4대 원소를 이룬다. (각 원소의 앞글자를 따서 CHON element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주가 수소와 헬륨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 몸에는 그보다 훨씬 무거운 질소, 탄소, 그리고 산소와 같은 원소들이 이렇게도 많이 있는 것인가? 이런 의미에서, 기본 원소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탐색하는 것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가장 오래된 철학적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제외하면, 모든 원자핵 안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섞여 있다. 두  번째로 가벼운 원소인 헬륨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헬륨-4를 예로 들어보자. ‘헬륨’ 뒤에 붙은 숫자 4는 핵종의 질량수라고 하는데, 원자핵에 포함된 핵자(양성자나 중성자)의 개수를 의미한다. 모든 헬륨에는 2개의 양성자가 있으니 (헬륨의 원자 번호는 2니까) 헬륨-4의 원자핵에는 2개의 양성자와 2개의 중성자가 묶여있을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의 질량을 모두 합친 값보다 헬륨-4의 질량이 미세하게나마 더 가볍다는 점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헬륨-4 원자핵에서 핵자들을 하나 하나 떼어내어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인 상태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미세한 질량 차이만큼의 노력을 더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 질량 차이를 결합에너지라고 하는데 (질량과 에너지가 동등한 개념이기에 가능한 표현이다), 큰 결합에너지를 가질수록 더 안정적인 핵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5]는 여러 핵종들의 결합에너지를 보여준다. 그래프의 가장 높은 곳에는 원자번호 26번의 철-56(56Fe)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 핵종을 가장 안정적인 원소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그림의 왼쪽 아래에 위치한 수소와 헬륨 원소 등은 서로 뭉쳐서 보다 무거운 원소로 나아가려 할 테고(핵융합), 우라늄과 같이 오른쪽 위에 위치한 무거운 원소들은 자꾸 쪼개어져서 가벼운 원소가 되려고 할 테다(핵분열). 그래야 가장 위에 있는 철-56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테니 말이다. 이미 1930년대에 한스 베테가 이론적으로 밝혔듯이,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별 내부의 충분한 온도와 압력으로 인해 수소의 원자핵 4개를 모아 1개의 헬륨 원자핵을 만드는 핵융합 반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스 베테는 이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196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약 1/4 정도를 담당하는 핵발전소는 우라늄-235의 핵분열을 이용하고 있으니, 핵융합과 핵분열 모두 우리 일상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에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하나 있다. 초기 우주는 수소와 헬륨, 그리고 극소량의 리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 가벼운 원소들이 핵융합 반응을 통해 점점 무거워지는 과정은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철부터 우라늄까지의 무거운 원소들은 애초에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핵융합 반응을 통해 가장 안정적인 원소인 철이 만들어졌으면 거기에서 그쳐야 했던 것은 아닐까? 단순해 보이지만 답하기 어려운 문제를 다루기 위한 학문이 핵천체물리학이다.

 

폭발하는 별

약 1011개 정도의 별을 품고 있는 우리 은하, 그러한 은하를 또 1011개쯤 품고 있는 우주.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밤하늘의 별들 대부분은 우리의 태양처럼 꾸준히 따분하다. 별의 중심부에서야 매우 활발한 핵반응이 일어나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 눈에 비치는 모습은 늘 한결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우리 태양과는 달리 매우 격렬한 인생을 사는 별들도 관측이 된다. 신성新星, nova이나 초신성超新星, supernova처럼 폭발하는 별들이 그러하다. 영어 표현인 nova나 한자 표현인 新星 모두 새로 생겨난 별을 의미하지만, 이들은 모두 별이 죽어가는 과정에서만 관측이 가능한 천문 현상이다. 이런 폭발에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동반되는데,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시기부터 오늘까지 태양이 내뿜은 모든 에너지를 초신성에서는 단 1초 만에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이다. 태양이건 초신성이건 핵반응으로 인해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일 텐데 어떻게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우리 태양은 약 45억 년 전쯤부터 매우 꾸준하게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태양 중심부는 온도를 높이는 효과와 낮추는 효과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어 항상 비슷한 환경이 유지되기 때문에, 핵융합 반응이 더 빨리 일어나거나 혹은 더 천천히 일어나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는다(일반적으로 핵융합 반응은 온도가 높아질수록 더 빨리 일어난다). 앞으로도 매우 오랜 기간동안, 태양은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는 일에만 전념할 것이다. 40-50억 년쯤이 더 지난 후에, 태양 중심부에서 수소가 고갈되어갈 즈음이 되어서야 헬륨을 핵융합 반응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온도에 다다르는데, 이 핵반응의 결과로는 탄소(원자번호 6번)나 산소(8번)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원소까지 생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자연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92번)은 고사하고 가장 안정적인 원소라는 철(26번)도 만들어낼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핵반응이 일어나는 확률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핵반응에 참여하는 입자들이 전하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수소를 헬륨으로 변환하는 과정의 핵반응들이 이에 해당한다) 쿨롱 장벽 투과율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장벽은 원자핵 내의 양성자 개수가 많을수록 높아지고 두꺼워지기 때문에, 같은 환경에서는 무거운 원소들일수록 핵반응을 일으킬 확률이 낮아진다. 태양에서는 탄소나 산소를 연료로 하는 핵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쿨롱 장벽 투과율은 일반적으로 온도가 올라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태양의 중심부보다 훨씬 극한의 상황이 연출되는 신성이나 초신성에서는 탄소나 산소는 물론 그보다 훨씬 무거운 원소들까지도 핵반응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밀도와 높은 전도율 등이 더해져서 이들 천체에서는 무거운 원소들이 순식간에 합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폭발적인 천체에서의 핵합성

빠른 중성자 포획 과정r-process, 느린 중성자 포획 과정s-process, 빠른 양성자 포획 과정rp-process 등은 모두 폭발적인 천체에서의 핵합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나리오들이다. 예를 들어 r-process는 초신성 폭발 환경의 핵합성 시나리오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 중 절반 정도가 생성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r-process 중에는 무거운 원소가 주변의 중성자를 연속적으로 빠르게 흡수하면서 더 무거운 핵종으로 변해간다.

r-process를 거치면서 점점 무거운 원소들이 합성되는 예상 경로는 [그림6]과 같다. 중성자를 빠르게 포획하는 과정이다 보니, 안정적인 원자핵(그림에서 보다 하얀색 점으로 표현한 부분)들에 비해서 한참 오른쪽에서 진행된다. r-process에 관여하는 핵종들은 대부분이 방사성 동위원소라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실험적, 이론적 핵물리학 정보들을 이용하여 얻어낸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그림6]의 경로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실험을 통해 그 핵반응의 확률(핵반응률)을 정확히 알아내야 하겠지만, 그 과정이 매우 험난하다.


보통의 경우 핵반응률 자체가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 특정 핵반응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똑같은 상황을 매우 많이 만들어주어야 한다. 핵반응률 측정 실험에서 같은 상황을 많이 만들어 준다는 것은 빔 입자와 표적 입자가 마주치는 횟수를 높인다는 의미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표적에 입사하는 빔 입자의 개수를 높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r-process와 연관된 핵종들은 대부분 방사성 동위원소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많이 만들기가 어렵다. 전 세계에 크고 작은 가속기 시설이 많이 있지만, 극도로 희귀한 방사성 동위원소 빔을 꾸준히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라온과 같은 중이온가속기 시설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라온의 핵심 실험 장비 7개 중 하나인 KoBRAKorea Broad acceptance Recoil Spectrometer & Apparatus([그림7])는 폭발적인 천체에서 일어나는 핵반응의 확률을 직접 측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 초신성과 같은 환경에서 주석-132 핵종(132Sn)의 양성자 포획 반응률이 어떻게 되는지를 측정하여, 현재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r-process의 예상 경로가 맞는지, 아니면 핵합성을 설명하는 모델을 수정해야 하는지 등을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감기가 약 40초 정도에 지나지 않는 희귀 핵종 주석-132와 상온에서는 기체 상태인 수소의 원자핵 사이에서 벌어지는 핵반응을 관측해야 하니, 그 과정이 험난할 것은 자명하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방사성 핵종은 많이 생성하기가 힘들고, 가만히 놔두면 사방팔방 돌아다닐 기체 입자를 빔이 지나가는 위치에 가두어두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원자핵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낸 러더포드의 산란실험(운동에너지를 갖는 질량수 4인 알파입자를 정지해있는 질량수 197인 금 원자핵에 쪼인 실험) 이후, 가벼운 빔 입자를 무거운 표적 입자에 조사하는 방식을 ‘정상운동학normal kinematics‘이라고 부른다. 라온의 KoBRA에서 기획하고 있는 방사성 중이온 빔과 가벼운 표적의 조합은 이와는 정반대인 ‘역운동학inverse kinematics‘에 해당하는데, 같은 실험을 정상운동학 상황에서 수행하는 것보다 여러 측면에서 불리하다. 무거운 입자에 의해 튕겨져 나오는 가벼운 핵반응의 결과물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분해능energy resolution과 각 분해능angular resolution이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oBRA에서 중점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핵반응들은 대부분 역운동학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r-process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핵천체물리학적으로 중요한 대부분의 핵반응들은 극도로 희귀한 방사성 동위원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감기가 40초인 주석-132를 표적으로 사용한다면, 표적으로 설치한 이후 400초만 지나도 원래 양의 약 1/1,000 (정확히는 1/210) 수준만 남게 될 테니, 정상운동학에서는 해당 핵반응을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KoBRA는 원소의 기원에 핵물리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렵지만 가야 하는 길이고,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생성해낼 방사성 중이온 빔은 물론이고, 수소나 헬륨과 같이 상온에서는 기체 상태인 가벼운 입자들을 표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초음속 분출형 가스 표적supersonic gas jet target system, 핵반응의 결과로 생성되는 하전입자들을 넓은 영역에서 측정할 수 있는 실리콘 기반의 입자 검출 시스템, 라온의 다양한 빔 종류를 하나하나 구분해내고 전류를 정확하게 측정하게 도와줄 고효율 이온화 상자 등 예상 가능한 문제점들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별의 폭발로 만들어진 무거운 원소, 그 원소들이 모여 생성된 지구, 그 지구의 양분을 받아들여 이 땅에 태어난 인류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매우 험난한 길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이 길의 끝에 다다르는 때가 올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건설하고 있는 라온은 우리가 이 멀고 먼 길을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를 한꺼번에 이 길의 끝에 데려다줄지도 모른다.

채경육
성균관대학교 물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