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알파고와 이세돌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같지만 불과 4년 전, 인공지능계를 대표하는 알파고와 인간계를 대표하는 이세돌 사이에 세기의 바둑 대결이 있었다. 이세돌이 0대 2로 밀리고 있을 즈음, 내 주변의 실험물리학자들은 이 대결의 부당함에 대해 분개하기 시작했다. 겨우 밥 한 그릇 먹고 200와트 정도의 전력을 소비하고 있는 이세돌에 비해, 알파고는 수천 개의 CPU와 GPU를 돌리기 위해 막대한 양의 전력을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글링을 해보니 알파고는 이세돌에 비해 최소한 5만 배 이상의 전력을 소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혹자는 “17 대 1”의 싸움만 해도 전설이라고 일컫는데,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무려 50000 대 1이라니! 이런 터무니없이 부당한 싸움에서도 이세돌은 1승을 거둠으로써, 인류 역사가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날카롭게 구분되는 “상전이” 시점에서 인간 두뇌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이제 이 부당함을 참지 못하고 분개하던 실험 물리학자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해 보자. “알파고”라는 실험 장비와 “이세돌”이라는 실험 장비가 있다면 당신들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아마도 대부분 주저하지 않고 “알파고”를 선택할 것이다. 왜 그럴까? 인류가 가 보지 못한 지평에 한 걸음이라도 더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과학기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희생이나 비용을 감수해서라도.

 

 

빛은 있어야 한다

방사광synchrotron radiation은 전자를 빛의 빠르기에 접근하는 속도로 가속시켰을 때 나오는 빛을 말한다([그림1]). 방사광 가속기는 방사광을 발생시키고, 동시에 방사광을 활용하는 실험 장치들이 집적되어 있는 시설을 의미한다. 10억원 정도의 연구비를 투자하면 각자 실험실에서 자외선 또는 X-선 실험장비를 구축하고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데 반해, 방사광 가속기 시설을 구축하려면 규모에 따라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엄청난 비용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결집하여 굳이 이런 방사광 가속기를 건설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방사광이 폭넓은 에너지 영역에서 압도적으로 밝은 빛을 제공하기 때문이다.1 [그림 2]는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X-선과 가속기에서 발생하는 방사광의 밝기를 비교하는 자료로, 방사광이 최소한 만 배 이상의 밝은 빛을 제공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여기서 말하는 밝기brilliance란 단위면적/단위각/단위시간/단위에너지 당의 발생하는 광자의 개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밝기를 좀 더 엄밀히 정의한 양이다). 이러한 막대한 양적 차이는 단순히 “깔끔한 데이터를 더 깔끔하게, 더 신속하게” 얻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질적 차이를 만들어 낸다.

방사광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질적 차이의 사례로 고체의 격자 구조 탐색을 들 수 있다.  고체는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격자lattice 구조를 갖고 있는데, 실험실의 X-선 회절 장비로는 구별할 수 없는 격자 구조의 미세한 차이를 방사광으로는 구분해 낼 수 있다. 고체 속에는 매우 작은 에너지를 갖는 준입자quasi-particle라는 것이 있는데, 이 준입자의 에너지-운동량 분산dispersion 관계가 어떤지도 방사광을 이용해 관측할 수 있다.

또한 궤도 질서orbital ordering, 전하 질서charge ordering, 스핀 질서spin ordering 등 고체의 물성을 탐색하는 데 중요한 여러 ‘장거리 질서long-range ordering’ 현상 역시 일반 실험실 X-선으로는 신호가 너무 약해 확인이 어려울 때에도 방사광은 관측 가능한 문턱값을 넘는 신호를 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방사광 가속기를 이용하면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화학적, 물리적 변화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면서 측정하는 작업도 가능해진다([그림3]). 이러한 측정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3세대2 방사광 가속기가 등장한 뒤 다양한 실험장치들이 개발되면서 가능해졌으며, 현재는 3세대 방사광 시설이라면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연구 방법이 되었다.


방사광의 두 번째 장점은 원적외선far-infrared에서부터 수십 keV의 높은 에너지를 가지는 X-선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의 스펙트럼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eV는 electron Volt의 약자로, 빛에너지를 측정하는 단위로 종종 사용한다.) 물질에 빛이 비치면, 빛을 구성하는 광자라는 입자와 물질을 구성하는 전자 사이의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 상호 작용의 결과로 빛이 에너지를 잃지 않은 채 다시 물질로부터 튀어나오는 탄성산란elastic scattering, 혹은 빛이 갖고 있던 에너지 일부가 물질에 흡수되고 대신 좀 더 낮은 에너지를 갖는 다른 빛이나 전자가 튀어나오는 비탄성 산란inelastic scattering이 관측된다. (빛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해 고체 밖으로 튀어나오는 전자를 광전자photo-electron라고 한다.)

규칙적인 원자 배열을 가진 물질로부터 탄성 산란한 빛은 원자의 결정 구조crystal structure를 알아내는 결정학crystallography에 사용된다.3 비탄성 산란을 하고 튀어나온 전자나 빛은 고체 속 전자가 갖는 에너지 값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분광학spectroscopy에 주로 사용된다. 그리고 시료를 투과하거나 반사한 빛들은 물질의 종류가 다르면 투과와 반사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물질이 만나서 만드는 미세 형상을 알아내는 현미경학microscopy에 사용된다.

결정학자들은 파장의 크기가 고체를 구성하는 원자와 원자 사이의 간격인 격자상수와 비슷한 빛, 다시 말하면 10 keV(1keV=1,000eV) 에너지 부근의 X-선을 주로 사용한다. 분광학자들은 고체가 광전자를 가장 많이 방출하는 에너지 영역인 진공 자외선Vacuum Ultra-Violet(10 eV ~ 100 eV)을 주로 사용한다. 현미경학자들은 투과율이 좋은 20 keV 이상의 빛을 선호한다. 초기 방사광 가속기 시대에는 이처럼 관심사도 다르고 사용하는 에너지 대역도 다른 세 가지 분야의 연구자들이, 마치 방사광 가속기라는 이름의 어느 “행성계”의 서로 다른 행성 주민처럼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 항공 기술의 발달로 지구인들이 화성을 넘나들기 시작하는 것처럼, 방사광 가속기 연구자들 역시 서로의 분야를 탐험하고 새로운 연구 생태계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런 동향은 분광학 정보를 현미경적으로 활용하는 분광현미경학spectromicroscopy 4에서 시작되었다. 연구자들은 분광기를 현미경의 검출기로 사용하거나 특정 원소의 흡수선에 해당하는 X-선을 이용함으로써, 현미경으로 얻어낸 이미지 각 지점의 화학적 성분 및 자화 방향 등을 얻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XANESX-ray Absorption Near Edge Spectroscopy 이미징을 통해 이러한 정보를 3차원으로 얻는 데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그림4]). 또한 분광학과 결정학을 조합하여 앞서 말한 각종 장거리 질서 중 특정한 질서에 참여하는 원자의 전자구조를 별도로 분리, 측정할 수 있는 AXSAnomalous X-ray Scattering, SXRSSoft X-ray Resonant Scattering 등도 나타났고([그림5]), 특정한 종류의 들뜬 상태에 대한 운동량-에너지 관계를 관측할 수 있는 RIXSResonant Inelastic X-ray Scattering도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광범위한 에너지 영역에서 발생하는 강한 빛이라는 방사광의 매력적인 성능은 이전에는 없던 다양한 실험기법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방사광의 활용 영역이 물리학에서 재료, 화학, 생명, 기계 공학 연구로 대폭 확장되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호사스러운 고성능 자동차처럼 보이던 방사광은 이제 과학 기술의 여러 분야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대중적인’ 빛이 되었다.

 

 

좌우를 구별하는 


방사광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편광이 잘 정의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림6]처럼 방사광을 발생시키는 전자빔은 원형 궤도로 회전하고 있다. 이 원형 궤도면에서 전자의 움직임을 보면 전자는 매 순간 직선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므로, 전자로부터 나오는 방사광의 전기장 방향이 궤도면 상에 있는 선편광이 된다. 그러나 전자빔의 궤도를 궤도면 위쪽이나 아래쪽에서 본다면, 돌아가는 방향이 서로 반대인 원형 궤도로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원형 궤도면 위, 또는 아래 방향으로는 서로 반대로 돌아가는 원형 편광5의 방사광이 발생하게 된다. 

 

가시광선 영역의 빛이라면 프리즘이나, 편광필름, 1/4 파장판quarter wave plate등을 이용해서 어렵지 않게 특정한 선형 또는 원형 편광성을 띠는 빛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X-선 영역에서는 모든 물질의 굴절률이 다 같아진다는 특성 때문에 이러한 도구를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방사광 가속기는 현실적으로 편광된 X-선을 제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편광된 방사광은 물질의 차원이나 대칭구조에 민감한 성질을 가진다. 두 물질이 서로 맞닿은 계면을 예로 들어 보자. 계면은 2차원이다. 계면 양쪽을 차지한 (3차원) 물질은 방향 특성이 없으므로 빛의 편광 방향에 따른 반응의 차이가 없다. 따라서 만약 어떤 물질에서 편광에 따라 다른 반응이 감지된다면 그것은 2차원적인 계면에서 나온 신호라고 판단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계면이나 표면은 3차원적인 덩치에 비해 원자 수가 극히 적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어떤 신호를 측정하는 일은 대단히 힘들다. 그러나 방사광의 편광을 바꾸면서 편광 변화에 따른 차이만 잘 측정할 수 있다면, 3차원 덩치에서 나오는 신호 중에서 계면의 신호를 분리해 낼 수 있다.

 

대칭 구조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바란다면 마이너 리그 야구팀인 앨버커키 동위원소들Albuquerque Isotopes에서 선수로 활약하는 후안 로드리게스를 떠올리기 바란다.6 우완 투수인 후안 로드리게스는 메이저 리그로 올라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거울에 반전시키는 실험에 참여해 좌완 투수가 된다.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원편광, 즉 우원편광의 빛도 거울 반전시키면 왼쪽으로 돌아가는 좌원편광 빛이 된다. 원편광의 빛을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회오리바람으로 생각해도 좋다. 좌완이 던지는 슬라이더(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꺾인다)에 같은 회전방향의 우편광 회오리가 불면 공의 각이 더 꺾이지만, 좌편광 회오리가 불면 슬라이더의 각이 줄어들어 직구처럼 날아간다. 우완이 던지는 슬라이더라면 이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거꾸로 생각해서 좌우 원편광에 해당하는 회오리바람이 모두 존재할 수 있다면, 날아가는 공의 궤적을 분석해서 거꾸로 공을 던진 투수가 우완인지 좌완인지를 구별해 낼 수 있다.

거울 반전 대칭성이 깨진 대표적 물질인 자석(물리학에서는 강자성체라는 용어를 더 자주 쓴다)에 대한 연구에 바로 이런 좌우 원편광된 X-선을 많이 이용한다. 편광된 빛을 이용한 각종 실험을 원형 이색성circular dichroism 또는 카이랄 이색성chiral dichroism이라고 부른다. 후안 로드리게스의 몸에 붙어 함께 반전된 거울 나라의 바이러스는 이런 X-선 이색성 측정에 의해 모두 검출될 수 있다. 이색성 실험은 단순히 광원의 편광 상태만 바꿔서 측정하면 되기 때문에 앞에서 소개한 각종 측정 방법을 구분하지 않고 바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편광’이라는 새로운 자유도에 의해 방사광 가속기로 할 수 있는 실험 방법 종류가 좌/우 원편광 이색성, 또는 선편광 이색성linear dichroism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순식간에 세 배로 늘어난다.

 

 

백 미터 미남

“백 미터 미남”은 멀리서 보면 배우 정우성 같은데, 가까이에서 마주하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외모라는 뜻으로 1980년대 말 흔히 사용하던 은어다. 방사광의 남은 두 가지 특성인 결맞음성coherency과 미세 시간 구조가 이에 해당한다. 결맞은 빛이라고 하면 흔히 레이저를 떠올린다. 레이저에 비하면 방사광의 결맞음성은 많이 떨어지지만, 방사광 실험의 공간 분해능을 극복하는 데 활용할 만큼의 수준은 된다. 공간 분해능은 파동의 일종인 빛을 이용해 어떤 대상을 이미징 했을 때, 일정한 크기보다 작은 대상은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방사광의 공간 분해능은 X-선 광학계의 수차aberration로 인해 수 나노미터가 물리적인 한계이며, 이것은 전자 현미경의 공간 분해능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렌즈, 거울 등의 기하 광학계는 수학적으로 모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시료에 도달하는 방사광의 파면이 수치로 기술할 수 있을 정도로만 정의되어 있다면, 광학계를 컴퓨터로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로 광학계 없이 고해상도 이미지를 얻어내는 방법이 coherent diffraction imaging이다. [그림7]은 이 기법을 이용하여 3차원 CTcomputed tomogram를 얻는 과정을 나타냈다. 이 방법은 전자 현미경으로는 불가능한 물에 젖은 시료에 대한 실험이나, 위치별 화학 분석, 두께가 있는 시료의 3차원 이미징 등이 가능하다는 막강한 장점을 가진다. 현재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건설을 시작한 4세대 방사광 시설의 방사광 결맞음성이 기존에 비해 100배 이상 증가하기 때문에, 이 실험 방법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고 적용 범위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방사광의 마지막 특성은 미세 시간구조다. 방사광을 발생시키는 전자빔은 전자들의 연속적인 흐름이 아니다. 실제로는 전자 다발electron bunch이란 것들로 묶여 있고, 다발들 간의 간격은 2 나노초7이다. 방사광은 전자다발이 지나갈 때만 발생하기 때문에, 방사광 가속기를 빛다발을 쏘아대는 기관총에 비유할 수 있다. 즉, 방사광 가속기는 전자 다발이 실험장치 앞을 지나가는 수십 피코초 동안 빛을 쏜 뒤 2나노초 동안 꺼지는 과정이 반복되는 기관총이다.

이렇게 빠르게 점멸하는 방사광을 스트로보스코프처럼 사용해서 물질이 빠르게 변화하는 순간을 촬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물리 현상은 수십 피코초보다 빨리 일어나고, 화학 반응이나 생물학적 과정들은 대부분 이보다 훨씬 느리다. 그렇기 때문에 방사광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실험은 한정적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강력한 레이저로 전자 다발을 압축해주는 femto-slicing이라는 기법이 개발되기도 했으나, 아직 보편적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사실 “백 미터 미남”에 해당하는 방사광의 두 가지 특성은 XFELX-ray Free Electron Laser에서 완전히 보완되었다. XFEL은 X-선 영역에서 펨토초 레이저와 비견할 정도의 결맞음성과 미세 시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포항에 구축된 PAL-XFEL을 흔히들 “4세대 방사광 가속기”라고 부르는데, 사실 XFEL은 싱크로트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표현이고, 국제적으로도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 기회를 통해 밝혀 둔다.

 

 

역사는 반복된다

1980년대 말부터 전세계적으로 3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구축하는 붐이 있었다. 포항 방사광가속기는 그 중 다섯번째에 해당하는데, 첫번째로 문을 연 미국의 ALSAdvanced Light Source와 불과 1여 년의 차이로 1994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여러 국가에서 30기 정도의 3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건설되었다. 현재 방사광 가속기는 새로운 세대 전환을 앞두고 있으며, 30년 전의 붐이 재현되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MBAMultiple Bend Achromat8라는 새로운 격자구조의 방사광 가속기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기존의 방사광 가속기들도 MBA 구조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2020년 5월 충청북도 오창으로 부지가 결정된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9도 MBA 방식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현재 국내 방사광 이용자는 5000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매년 2000개가 넘는 실험 제안서가 제출되고 있지만, 이 중 불과 800여 개만 빔타임을 할당받고 실제 실험을 할 수 있다. 새로운 방사광 가속기가 필요한 직접적인 이유는 이러한 포화상태의 해소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가 있다. 차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기존 방사광보다 100배 더 밝고, 결맞음성도 100배 더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3세대 방사광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방사광 실험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물적 기반이 될 것이다. 현재 5000여 명의 방사광 이용 연구자들은 10년 후에도 과학의 지평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텐데, 그때까지도 포항 방사광 가속기가 비교우위를 유지하고 있을까? 수년 전의 알파고는 이제 인간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하였고, 이세돌은 이미 은퇴했다.

김재영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