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인 글쓰기는 나에게 항상 버거운 작업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을 두 권이나 낸 것은 순전히 욕심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주로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가깝게는 내가 연구하는 분야인 우주와 소립자에 대한 이야기였고, 멀게는 과학이 가져온 세상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호라이즌 웹진에서 글을 청탁받았을 때 다시 버거운 짐을 지는 부담감에 망설였지만, 또 욕심에 지고 말았다. 이전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주와 지구의 기원에서 시작해서 생명을 넘어 인간과 문명의 역사에 이르는 거대한 역사, ‘빅 히스토리’ 이야기다. 물론 나는 역사 전문가가 아니다. 역사의 세세한 장면들을 속속들이 알고 그 깊은 의미를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된다. 그나마 다행(?)은 빅 히스토리가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문명의 역사를 모두 아우르다 보니 범위가 워낙 방대한 탓에 모든 부분에 깊이를 갖춘 진정한 전문가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가 아님에도 굳이 이야기해보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빅 히스토리 자체가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엄밀히 검증해보자는 학문의 성격보다는 우리의 기원에 대한 서사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각자의 관점에서 거대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해보고 의견을 나눠보는 것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나는 물리학자로 훈련을 받았고 연구를 해왔기에 물리학의 관점에서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문명의 역사를 어떻게 일관성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지 시도해보려고 한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은 남태평양의 작은 섬 타히티에 머물면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렸다. 말년에 그는 또다시 찾아온 삶의 시련에 허덕였다. 가장 아끼던 딸은 병으로 죽고, 수입은 부족한데 욕심을 내 집을 짓자고 빚을 내는 바람에 빚 독촉에 시달리고, 건강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었다. 절망에 빠진 화가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 질문은 이 그림의 제목이 됐다. 화가는 그림의 왼쪽 위 귀퉁이에서 제목을 써놓았다. “D’où Venons Nous? Que Sommes Nous? Où Allons Nous?” 다들 이정도 불어는 아시리라 생각되지만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다. 인간은 삶의 어떤 순간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특히 고통과 절망과 죽음을 경험할 때 이 질문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그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신화와 종교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과학의 시대 아닌가! 이 근원적인 질문에 과학은 과연 어떤 답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려면 먼저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가장 적절한 답은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범위를 좁혀갈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사람이다. 범위를 더 좁혀 가면 안동 김씨 집안의 한 가족의 구성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는 우리 시조가 누구이며 어떻게 이 장소에 살게 됐는가를 살펴보는 가족사 문제가 된다. 우리를 인간으로 규정한다면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구를 정복한 호모 사피엔스 종의 역사 이야기가 될 것이다. 범위를 더 확장해 갈 수도 있다. 인간은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종의 하나다. 우리를 생명체로 규정한다면 생명의 기원, 첫 세포의 출현에서 시작해서 어떤 진화과정을 거쳐서 인류를 포함한 다양한 생물종들이 등장했는지의 생명의 역사 이야기가 될 것이다. 확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의 기원을 찾는다면 우주의 역사 속에서 원소의 기원과 별과 행성이 만들어지는 구조의 기원을 살펴야 한다. 과학에 근거한 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무엇인가란 질문에도 철학적, 역사적, 종교적 관점을 넘어 과학의 관점이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역사란 무엇인지부터 살피기 위해 작은 범위의 우리, 어느 지역에서 어떤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집단을 생각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답은 그 집단의 역사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이야기가 된다.
역사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문자로 기록된 과거의 사실들에 대한 연구다. 이 정의에 의해 문자 기록의 유무에 따라 역사시대와 선사시대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문자 기록에만 의존하는 편협한 시각의 역사는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듯하다.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될 수 있다. 한편 과거의 사실들은 너무나 많다. 모든 과거의 사실들을 세세히 다 알 필요가 있을까? 많은 역사학자가 생각하는 역사는 대략 과거의 사실들 가운데 현재 우리 삶에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만 역사적 사실들로 구성하여 만든 이야기로 정의가 된다. 이 정의에는 ‘가치’가 들어간다는 점이 중요하다. 가치는 누군가의 판단에 좌우된다. 결국 역사에도 가치를 판단하는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역사를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라 했고,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두 사람의 언급에도 역사는 주체가 있음이 드러난다.
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예외가 있겠지만 대개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인간의 집단이다.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을 역사공동체라 한다. 신화, 종교와 더불어 역사는 공동체 의식 또는 집단기억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서사이다. 무엇에 가치를 두는가는 집단의 성격과 연결된다. 국가나 민족은 대표적인 역사공동체다. 국가나 민족이 역사의 주체가 되면 역사의 주요 이야기는 지배 세력의 담론과 정치사가 된다. 특정 계급이나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면 역사는 사회사와 문화사 위주가 된다. 역사의 주체가 동양과 서양의 구분 같이 거대한 지역이나 문명집단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역사의 주체를 인류 전체로 잡는다면 역사의 초점은 무엇이 될까? 어떤 지역, 국가나 민족의 세세한 역사보다는 인류 전체가 어떻게 집단의 규모를 키워왔고, 어떻게 문명을 만들게 됐으며, 도시와 국가들이 어떻게 네트워크를 확장해왔는지 등이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역사의 주체를 인류뿐만 아니라 인류가 살아가는 환경까지 포함하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에 가치를 둘까? 그 이야기가 바로 빅 히스토리일 것이다.
빅 히스토리의 중심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역사공동체는 인류를 넘어 환경까지 확장했을 때 우리에게 가치 있는 과거의 이야기는 무엇일까를 묻는 것이다. 빅 히스토리를 창시하고 이름을 붙인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기원’에 초점을 맞춰 빅 히스토리를 현대적인 기원 이야기로 정의했다. 빅 히스토리의 확산을 주도하고 있는 국제빅히스토리협회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역사를 통일된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로 빅 히스토리를 정의하는데, 이 정의에는 ‘통일된 방식의 이해’에 초점이 있다. 아직 빅 히스토리에 대한 보편적인 정의가 있지는 않으므로 각자의 생각을 담아 빅 히스토리를 정의해볼 수 있다. 당연히 이 글에는 빅 히스토리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역사를 시대나 지역 또는 주제별로 나누듯이 빅 히스토리에 담길 내용을 주제별로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문명의 역사로 나눠볼 수 있다. 각 내용을 다루는 학문 분야는 천문학과 물리학, 지질학, 화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 등 자연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까지 걸쳐있다. 빅 히스토리는 각 분야에서 필요한 내용들을 가져와서 일관성 있는 서사로 구성하는 작업이다. 사실 기존의 역사학에서도 시대구분이나 지역구분 등을 적용한 역사적 사실들의 나열을 넘어서서 전체 역사를 흐름이 있는 일관된 이야기로 전개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연구 방법이 다르고 전통도 다른 여러 학문 분야의 내용들을 일관성 있게 엮어낸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떤 방법으로 일관된 흐름을 만들고 통일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내용의 구성도 달라질 수 있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문명의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하고 큰 흐름은 모든 것은 변해왔다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πάντα ῥεῖ (판타 레이 – 모든 것은 흐른다.)라는 말로 이를 표현했다. 너무 당연한 것을 왜 언급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자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신화 속의 우주에는 대개 시작(탄생)과 끝(멸망)이 있다. 신(절대자)이 세상을 모든 것을 쥐고 있다면 시작과 끝도 그의 손에 달려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과학이 등장한 후 20세기 후반에 현대우주론이 자리 잡기 전까지는 과학자들은 영원불변한 우주를 선호해왔다. 일단 우주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었다. 하늘(천체)의 운동과 낮과 밤, 계절의 순환으로 대표되는 땅의 변화도 영원히 반복되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더해서 우주의 시작과 끝이 있다면 그것이 언제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를 과학을 통해 설명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이는 현대 과학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우주의 시작이나 생명의 시작을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영원불변한 우주라면 영원히 반복되는 주기적인 변화를 제외하면 시작과 끝과 그사이의 변화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영원불변한 우주의 일부로서 인간도 변하지 않는 본성을 가진 존재로 간주해왔다.
모든 것은 변해왔다는 사실은 현대우주론의 가장 중요한 발견이다. 빅뱅이라는 우주의 시작이 있었고, 우주는 팽창하면서 지속해서 모습이 바뀌어서 은하와 별과 행성이 있는 현재의 모습이 됐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변화를 체감하기엔 인간의 수명은 너무 짧다. 그래서 과학적 증거를 통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존재도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태양이라는 별과 지구라는 행성이 생겨난 후, 생명이 생겨나고 오랜 시간 진화한 끝에 고도로 지적인 생명체가 되었고 그 결과 복잡한 사회를 형성하게 됐다. 우리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도 계속 변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변해왔다면 그 변화에 어떤 방향성이 있는지를 물을 수 있다. 물리학에서는 이와 관련된 ‘시간의 화살’ 문제가 있다. 미시세계에 적용되는 근본 법칙들은 시간반전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 (엄밀하게는 아주 작은 대칭성 깨짐이 있지만, 그 효과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시간반전 대칭성에 의해 시간에 따른 변화의 방향은 시간을 반전시킨 변화의 방향, 즉 반대 방향도 허용된다. 이 경우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초기조건이다. 하지만 우주의 초기조건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아직 물리법칙이 다루기 난감한 영역이다. 하지만 우주의 변화에는 어떤 방향성이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서 수많은 입자들로 구성되는 거시세계에서는 열역학 제2법칙이 적용된다. 열역학 제2법칙은 닫힌계의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없다는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우주는 닫힌계이므로 우주의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없고 계속 증가해야 한다. (증가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은 아마 우주의 종말이 될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과의 충돌을 피하려면 우주는 낮은 엔트로피의 상태에서 시작했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왜 태초에 수많은 상태 중에서 하필 낮은 엔트로피 상태가 선택될 수 있었는지는 근본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1
사실 우주의 엔트로피 변화가 우리의 존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지구라는 특별한 행성에 있는 특별한 기능을 하는 생명체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빅 히스토리가 다뤄야 할 중요한 변화의 방향성은 점점 더 복잡한 열린계가 등장해왔다는 사실이다. 이 복잡계들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유입해서 일함으로써 자신은 복잡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낮은 엔트로피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복잡계의 존재는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를 촉진한다.) 지구와 같은 행성은 태양과 같은 별이 방출하는 복사에너지를 흡수해서 자신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지구의 생명체는 태양의 복사에너지나 다른 생명체로부터 에너지를 유입해서 질서를 유지하고 복잡한 기능을 수행한다. 빅 히스토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에너지의 흐름과 복잡계의 형성 과정에 담겨 있는 변화의 방향성에 주목해야 한다.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변화의 방향성으로 복잡도complexity의 증가를 제시했다[1].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복잡한 계가 등장하는데, 복잡도에 큰 도약이 있는 중요한 사건들을 문턱넘기thresholds라 명명했다[그림3]. 그가 제시한 문턱넘기에는 빅뱅(우주의 탄생), 별의 탄생, 화학원소의 기원,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 생명의 탄생, 집단학습, 농업의 시작,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등 현대의 혁명을 들었다. 복잡도를 통해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한 듯이 보이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실 복잡도는 정량적 정의가 어려워서 아직도 보편적인 정의가 없는 지표이다. 데이비드 크리스천도 어떤 사건들이 문턱넘기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정성적인 느낌에 근거한 제안이었고 정량적인 수치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복잡도와 문턱넘기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임에 틀림없지만 정량적 근거가 없다는 약점이 있다.
천체물리학자인 에릭 체이슨은 일률밀도energy rate density라는 정량적 지표를 통해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그림4][2]. 은하, 태양, 지구, 식물, 동물, 인간사회로 이어지는 복잡계의 등장 과정에서 일률밀도는 계속 증가했다는 것이다. 일률밀도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할 수 있고 복잡계의 동역학과 연결고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음이 장점이다. 하지만 빅 히스토리에서 가치를 두어야 할 사건들을 모두 잡아내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거대한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집어내고 일관된 이야기를 펼치는 구성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주에서 문명까지 이르는 변화의 방향성을 하나의 지표만으로 온전히 나타낼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는 다양한 관점 중의 하나로 간주함이 옳겠다. 어떤 관점이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먼저 우리는 무엇인지를 과학의 관점에서 자세히 다뤄보겠다. 이어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의 답을 찾아서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려고 한다. 이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의 나열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에너지, 정보, 진화, 조직화의 관점에서 변화의 방향성을 살펴볼 계획이다.
현대 문명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빅 히스토리가 왜 필요한지, 즉 어떤 가치가 있는지 피력하면서 첫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빅 히스토리는 과학의 시대에 인류를 위한 정체성 서사로서 기능한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을 과학에 근거해서 구하는 과정이다. 과학의 발견으로 인간은 자신의 지위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신화와 종교를 통해서 인간은 윤회를 거듭하는 고통 받는 존재이거나 절대자인 신이 만든 특별한 지위를 갖는 창조물이었다. 하지만 과학은 우리가 사는 곳(지구라는 행성, 태양이라는 별, 은하수라는 은하)이 우주에서 특별한 곳이 아니고, 우주에는 그런 곳이 무수히 많을 수 있음을 밝혔다. 또한 인간은 처음부터 특별한 지위를 가진 생명체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진화가 만들어낸 수많은 생물종 중의 하나임도 밝혀졌다. 생명체 중에서 인간은 특별한 지적인 생명체로 간주됐지만 이마저도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과학을 통해서 인간은 물질과 정보로 해체됐다. 빅 히스토리는 물질과 정보로부터 우주와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의 이야기이고, 물질과 정보로 해석된 인간이 어떻게 존엄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사실 지구는 지적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환경을 가진 행성이다. 생명체는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매우 특별한 기능을 가진 물질의 집합체고, 인간은 우연과 필연의 조합이 만들어낸 고도의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매우 특별한 생명체다. 인간은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어쩌면 우주도 지배할 수도 있다. 빅 히스토리를 통해 우주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사실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에드워드 카의 표현을 본떠서 빅 히스토리는 인간과 우주의 끊임없는 대화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빅 히스토리는 인류 전체의 공동체 서사로서 기능한다. 역사공동체는 공유된 역사를 통해서 집단의 응집력을 발휘해왔다. 문명의 역사가 보여주는 내용은 인간은 점점 더 큰 집단을 형성하면서 번성해왔다는 사실이다. 흩어져 살아가던 작은 규모의 수렵채집 집단에서 시작해서 도시가 탄생하고 국가와 제국으로 이어지고 지금은 전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되는 세계화의 전환기에 와 있다. 하지만 인류의 번성은 불가피하게 인류 전체가 공동으로 대처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낳고 있다. 전 세계적인 전염병, 과도한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 위기 등, 인류 전체의 운명이 걸린 전 지구적인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의식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또한 정보화시대로의 전환과 인공지능의 등장 등으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려면 인류와 문명의 역사를 넘어서 생명, 지구, 우주의 역사를 아우르는 관점으로 살펴봐야 한다. 정보혁명은 인류와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까? 인류는 인공지능 또는 인공생명을 만들고 그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물질과 생명의 경계는 어디인가?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거나 대치할 수도 있는가? 역사의 중요한 역할은 알고 있는 과거로부터 알지 못하는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는 것이다. 빅 히스토리는 인류가 현재 처한 상황을 살펴보는 확장된 관점을 제공한다.
세 번째로 빅 히스토리는 융합적 사고 교육을 위한 좋은 기반이 된다. 빅 히스토리를 통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융합적 내용들을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통해 접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문학과 과학의 기본 소양을 갖춤에 더해서 에너지, 정보, 조직화, 진화 같은 통섭적 개념들을 통해 현상을 분석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과학자로서 나의 기대는 인류가 쌓아 올린 과학의 지식이 어떻게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 쓰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류가 다른 생물종을 제치고 지구의 정복자가 된 것은 지식을 축적하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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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도,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저, 이근영 역 (심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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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gy rate density as a complexity metric and evolutionary driver”, E. J. Chaisson, Complexity 16, 27 (2011); “Energy rate density. II. Probing further a new complexity metric”, E. J. Chaisson, Compexity 17, 44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