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형성과 관련된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지구 탄생부터 현재까지 46억 년 동안의 역사를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지구의 역사에서는 지층과 화석에서, 즉 지질학적 측면과 생물학적 측면에서, 일어난 주요한 변화를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한다. 가장 큰 분류는 누대eon로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명왕 누대(46억-40억 년 전), 시생 누대(40억-25억 년 전), 원생 누대(25억–5억 4천만 년 전), 현생 누대(5억 4천만 년 전 – 현재), 4개의 누대로 나눈다. 각 누대는 나름의 기준에 의해 더 작은 단위인 대era로 나뉘고, 대는 다시 기period와 세epoch로 세분된다.

지구의 역사가 생명과 인간의 역사로 이어지는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누대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사건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먼저 명왕 누대와 시생 누대에서는 지각운동이 안정되면서 일어난 생명의 탄생, 다음으로 원생 누대에서는 산소 발생 광합성 세균에 의한 산소의 축적, 마지막으로 현생 누대에서는 동물로 대표되는 골격을 갖춘 복잡한 다세포 생물의 등장이 주요 기준이 된다. 이와 같은 시대별 분류는 생명의 역할을 중시하는 인간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지구와 생명이 공진화를 통해 서로 영향을 끼쳤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명왕 누대 46– 40억 년 전

지구의 탄생부터 최초의 생명이 등장하기까지 첫 5억여 년은 격렬한 변화과정을 거쳐 지각과 해양이 형성되고 대륙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남아 있는 증거가 많지 않아서 이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이해는 제한적이다. 지구 탄생 2~3천만 년 후에 원시 행성인 테이아가 충돌해서 달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지구 표면의 암석은 다시 한번 다 녹았으며 물은 모두 증발했다. 흡수된 테이아의 물질에 의해 내부에서는 분화가 재연됐다. 녹았던 표면이 식으면서 굳어져 현무암 지각이 형성되었고, 검은 지구가 되었다. 1억 년에서 2억 년 사이에는 내부 분출과 소행성 충돌로 물과 이산화탄소 등을 공급받으면서 해양과 짙은 대기가 형성되어, 파란 지구로 바뀌었다. 지구의 휘발성 물질(물, 질소, 탄소, 황)은 이 과정에서 대부분 우주로 날아가고 일부만이 지각에 남거나 해양과 대기가 되었다. 해양과 대기는 지구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지구와 우주의 경계가 되어 지구에 생명이 존재하는 경이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탄생 후 3억 년에서 5억 년 사이에는 다시 소행성의 폭격이 잦아진 후기 대폭격의 시기가 와서 지각변동이 수시로 일어났다.

탄생 후 5억 년쯤에는 지표면 대부분은 해양으로 덮여있었고 간간이 현무암 지각이 드러나 있었다. 당시 태양의 밝기는 현재 밝기의 70%에 불과했지만 짙은 대기의 온실효과로 해양의 물은 얼어붙지 않을 수 있었다. 지구 내부 맨틀의 대류가 안정화되면서 현재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지각판들이 형성되고 판의 이동이 시작됐다. 판의 생성, 이동, 섭입 과정에서 생성된 화강암 마그마가 현무암 지각 위로 올라와 화산섬들을 만들고, 화산섬들이 쌓여서 대륙의 씨앗이 되는 대륙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대륙의 출현은 해양과 맞물려 물과 광물의 순환 구조를 만들었고, 풍화와 침식, 퇴적 과정을 통해 지구 역사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해양 밑에서 새로운 지각이 만들어지는 중앙해령에서는 상승하는 마그마가 공급하는 물질과 에너지로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해저 지형구조들이 생겨났다. 마그마의 상승은 열수공 구조를 만들었고 유기물, 미네랄, 에너지를 저장한 물질을 제공해서 생명 탄생의 전조가 되는 화학적 진화 과정이 일어났다.

 

 

 

시생 누대 40– 25억 년 전

시생 누대에는 생명이 시작됐고 대륙이 출현했다. 화산섬들이 뭉쳐서 대륙괴가 되고, 대륙괴들이 모여서 대륙을 만드는 과정은 암석들이 뭉쳐서 미행성이 되고, 미행성들의 충돌로 큰 행성이 만들어지는 행성 형성과정과 유사하다. 행성 형성에는 중력의 역할이 중심이지만 대륙 형성에는 판의 이동이 중심이라는 점과 대륙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될 때까지 커지긴 하지만, 판의 이동은 합쳐진 대륙을 분리할 수도 있다는 점이 다르다. 대륙의 출현은 훗날 인류를 포함한 육지 식물과 동물의 서식처가 되고, 지표면에 새로운 유형의 경계를 만듦으로써 생명의 다양성을 늘렸다. 우리 같은 육지 동물에게 대륙의 형성은 꼭 필요한 과정이겠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그저 하나의 심심풀이 정도의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륙은 해양 생물에서 육지 생물로 가는 진화의 길을 열었고, 그 길은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넘보는 인류를 탄생시켰다.

생명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기원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장소는 생명의 재료가 되는 화학 물질들과 이들의 화학 반응을 지속하게 할 에너지가 공급되는 곳이어야 한다. 생명의 작동에는 에너지 공급이 필수이기에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서 에너지 공급원이 무엇인지는 중요한 요소다. 지구 초기의 짙은 대기는 햇빛을 가렸으므로 최초 생명체의 에너지 공급원은 지열이였을 것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가설은 상승하는 마그마가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중앙해령의 열수공이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생명의 출현은 판의 이동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지형구조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기원한 환경과는 다른 환경으로 생명이 어떻게 퍼져나갔는지도 불확실성이 크다. 시생 누대 초기의 해양은 이산화탄소에 의해 산성화돼 있었는데, 대기와 해양의 이산화탄소가 어떻게 제거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유형의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했으리라 기대하지만, 현재 살아남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 대사와 유전정보의 구현 측면에서 하나의 유형에서 기원해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유형의 최초 생명체(세포)를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이라 한다. 공통 조상은 고온과 저온, 고압, 강산성 등의 다양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도록 진화하는 과정에서 고세균과 세균으로 분리됐다.

짙은 대기가 걷히면서 일단의 세균이 지열 대신 태양에서 오는 복사에너지를 활용하는 광합성을 발명했다. 지열에서 햇빛으로의 에너지 공급원 전환은 생명이 마그마가 상승하는 국한된 지역에서 태양이 비치는 지구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게 해준 생명의 에너지 혁명이었다. 광합성은 빛에너지로 전자의 흐름을 만들어서 ATP와 같은 화학에너지 저장 물질을 생산하고 그 에너지를 활용해서 이산화탄소로부터 포도당과 같은 생명의 기초가 되는 물질을 생산한다. 최초의 광합성은 전자를 공여하는 물질로 당시 대기에 많았던 수소나 황을 활용했다. 그러다가 남세균cyanobacteria이 더 흔한 물질인 물로부터 전자를 공여받는 광합성을 발명했고, 그 부산물로 산소가 발생했다. 다른 원소에 붙은 산소는 떼어내기 힘들지만 (물에 있는) 수소에 붙은 산소는 빛에 의한 생명체의 화학 반응으로 떼어낼 수 있었다. 산소 발생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의 번성은 대량의 산소를 공급하여 지표면을 산화시키고 해양과 대기에 산소가 축적되는 대산화 사건great oxidation event을 일으켜 생명뿐만 아니라 지구의 진화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원생 누대 2554천만 년 전

대기의 산소는 지구를 다른 행성과 구분 짓는 핵심적인 특징이다. 산소의 존재는 생명체가 지구에 일으킨 변화로서 이후에 광물과 생물의 진화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대산화 사건은 시생 누대와 원생 누대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해양과 대기에 산소가 유입되자 생명은 물론 지구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산소는 화학 반응성이 커서 아직 산소 노출에 적응하는 진화를 하지 못한 생명체에겐 독이 됐다. 남세균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신이 생성한 산소를 제거하는 장치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었다. 이때 산소를 흡수해준 것은 해양에 다량으로 녹아 있던 철이었다. 산소와 결합한 철은 물에 녹지 않기에 침전물이 되어 바닥에 가라앉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암이 되어 지층에 호상철광층으로 남았다. 이 철은 20여억 년이 흐른 후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는 데 중요한 재료로 쓰이게 된다. 지구의 역사와 문명의 역사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대기에서는 산소가 메탄을 산화하여 이산화탄소와 물로 전환했고, 이산화탄소도 광합성에 쓰이면서 줄어들기에 대기 중 온실가스의 감소가 일어났다. 그 결과 지구의 기온이 내려갔고, 24억 년 전 전후에 적도 근방의 해양까지 얼어붙는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 현상이 시작됐다. 얼음으로 덮인 지표면의 비율이 높아지면 햇빛의 반사율이 올라가 기온 강하는 양의 되먹임으로 강화되므로, 긴 시간 동안 지구는 얼어붙어 있었다. 눈덩이 지구 상태는 3~4억 년 동안 지속되다 화산활동으로 온실가스인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공급되면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소는 산화물을 함유한 새로운 유형의 광물들을 만듦으로써 광물의 다양성도 키웠다.

 

산소가 서서히 축적되는 동안, 해양에서는 산소 노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눈덩이 지구의 혹한을 견디지 못한 생물들의 대멸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부 생명체는 이런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을 찾아내서 새로운 진화의 길을 개척했다. 눈덩이 지구와 같은 극한 환경을 겪으면서, 생명의 진화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중요한 요소가 됐다. 그 결과 산소를 활용해서 탄수화물로부터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추출해 산소호흡을 하는 세균이 등장했다. 더 나아가 일부 고세균은 산소호흡을 하는 세균과 광합성을 하는 세균을 자신의 내부로 받아들여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진핵세포로 진화했다. 산소호흡을 하는 세균은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로 변신했고 광합성을 하는 세균은 엽록체로 변신해서 고세균 내부에서 공생하였다. 이로써 진핵세포는 에너지 획득과 소비에서 우월한 생명체가 됐고, 생명의 진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세균을 비롯한 일부 생명체들은 산소 노출에 적응하는 진화를 했고 산소가 있는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됐다. 산소 노출에 적응한 남세균은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번성했고, 현재도 가장 성공적인 세균으로 남아 있다. 남세균의 번성은 대량의 산소를 발생시켜 해양의 철을 고갈시켰고, 그러자 산소는 해양과 대기에 축적되기 시작했다. 해양에서 대기로 방출된 산소는 대기 중의 메탄과 대륙 표면의 철을 산화시키며 흡수됐기에 10억 년 정도 대기의 산소농도는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18억–8억 년 전 사이의 이 기간에 지구는 판의 이동, 기후 등이 안정되고 생명의 진화도 느리게 진행되어 두드러진 유물을 남기지 않았기에 지구 역사에서는 지루한 10억 년이라 불린다. 지루할지는 모르지만 안정된 환경에서 생명이 번성하면서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얻는 포식의 이점이 커졌고, 이는 피식-포식 경쟁에서 유리한 다세포 생물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지루한 10억 년 끝에 지표면의 산화가 포화에 이르자 해양과 대기의 산소농도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는 다시 지구와 생명에 변화를 가져왔다. 산소의 증가는 온실가스의 감소로 이어져 눈덩이 지구 상태가 두 차례에 걸쳐 재연됐지만, 원생 누대 초기의 경우보다는 더 빠르게 회복됐다. 높아진 산소농도는 생명체가 산소호흡을 통해 더 큰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고, 이를 활용하여 이동 능력을 갖추고 적극적인 포식을 하는 동물이 출현했다.

원생 누대 동안 초대륙이 형성되는 일이 몇 차례 일어났다. 판의 이동에 따라 흩어져 있던 대륙이 모두 모여 하나의 거대한 대륙을 만들면 초대륙이 된다. 시생 누대에 발바라와 우르로 불리는 거대 대륙이 형성됐었다. 원생 누대에는 초기에 케놀랜드, 중기에 콜롬비아(누나로도 불린다), 후기에 로디니아 초대륙이 형성됐으며, 현생 누대 직전 짧게 기간에 판노티아 초대륙이 형성됐다가 해체됐다. 앞서 얘기했듯이 대륙은 물, 토양(광물), 이산화탄소 등의 물질 순환 고리를 만들고, 미네랄이 풍부한 얕은 해안가를 형성해서 생명의 번성을 도왔다. 대륙의 존재는 전 지구적 바람의 방향과 해류의 경로에 변화를 가져오고 해양보다 태양복사를 더 많이 반사해서 기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 대륙이 모여서 초대륙을 형성하면 해안선이 감소하고 내륙은 건조해져 상대적으로 생명의 번성이 약화된다. 초대륙이 형성되는 위치도 기후에 영향을 주고, 남극이나 북극까지 뻗은 대륙은 빙하의 형성으로 해수면의 하강을 가져온다.

 

 

현생 누대54천만 년 전 현재

5억 4천만 년 전에 갑자기 많은 종의 골격을 갖춘 복잡한 해양 동물들이 출현하여 많은 화석을 남기기 시작하는데, 이를 캄브리아기 폭발이라 한다. 해양 동물 종의 수가 갑작스럽게 증가한 원인으로는 9억–6억 년 전 사이에 진행된 해양과 대기 산소농도의 빠른 증가, 캄브리아기 직전에 있었던 초대륙 판노티아의 해체 등이 지목되고 있다. 캄브리아기 폭발은 생명 다양성의 증가에 에너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산소호흡이 제공하는 충분한 에너지를 활용하여 동물은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을 가동하여 먹이 사냥에 나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눈이라는 대상의 형태와 움직임을 정밀하게 감지하는 감각기관을 발명하면서 포식-피식 경쟁이 치열해졌고, 두뇌와 무기 등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개발한 수많은 동물 종이 진화했다. 골격의 발달은 포식-피식 경쟁이 낳은 진화의 발명품이다. 대륙으로부터 해양으로 유입된 칼슘과 인산염 덕분에 껍데기와 뼈의 형성이 가능해졌고, 이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거나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캄브리아기 전기의 짧은 기간에 35개 문phylum이 출현했는데, 이는 현생 동물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몸의 기본적인 구조를 만드는 유전자가 이때 여러 유형으로 분화했음이다.

잘 분해되지 않는 골격 덕분에 현생 누대의 동물들은 풍부한 화석을 남겼다. 많은 화석 기록은 생명의 진화 과정을 잘 보여주었으며, 지질학적 사건들과 진화의 관계도 드러내 보여주었다. 현생 누대는 생물 화석이 크게 변하는 경계를 기준으로 고생대(5.41-2.52억 년 전), 중생대(2.52-0.66억 년 전), 신생대(0.66억 년 전 – 현재)로 나뉜다. 지층 시대별로 발견되는 화석의 종 수를 조사해보면 전반적으로 종의 수가 늘어나서 생물의 다양성이 계속 증가하지만, 때때로 단기간에 급격히 떨어지는 대량멸종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대량멸종은 주요 기를 나누는 경계이기도 한데, 그중에 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 데본기-석탄기, 페름기-트라이아스기, 트라이아스기-주라기, 백악기-제3기 대량멸종을 5대 대량멸종이라 한다.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량멸종은 가장 극심했던 대량멸종으로, 고생대와 중생대의 경계이기도 하다. 백악기-제3기 대량멸종은 공룡의 멸종으로 포유류의 시대로 전환이 일어났으며, 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다. 대량멸종의 직접적인 원인은 급격한 전 지구적 기후변화로 보이는데,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원인 사건은 거대 규모의 지질 활동, 생명의 번성에 의한 되먹임 작용, 소행성 충돌과 같은 외부 요인 등이 지목된다.

현생 누대에는 생명의 다양성이 크게 확대됐다. 가장 주목할 사건은 다세포 고등 생명의 육지 진출이다. 대기 산소농도의 상승은 생명에 치명적인 자외선을 차단하는 오존층을 형성해서 생물이 해양으로부터 육지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첫 육상 식물은 약 4.7억 년 전 오르도비스기에 출현한 이끼류였다. 데본기에 식물은 뿌리와 관다발을 갖추기 시작했고 양치류를 시작으로 식물의 다양성이 대폭 늘어서 이는 데본기 폭발로도 불린다. 이 시기에 곤충류를 시작으로 동물의 육지 진출도 이루어짐에 따라 식물에서 동물로 이어지는 먹이 사슬의 지상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석탄기에 식물은 씨앗을 발명함으로써 내륙 깊이 진출할 수 있었고, 나무가 번성함으로써 숲이 형성되자 대륙은 녹색이 됐다. 육지 식물의 번성은 대기 산소를 늘렸을 뿐만 아니라 암석의 풍화작용을 촉진했는데, 풍화된 암석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온실기체 감소로 인한 기온 하강으로 빙하시대가 오고 대량멸종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석탄기에 번성했던 나무들은 죽은 후에, 당시에는 나무 사체를 분해할 수 있는 세균이 없어서, 탄소를 품은 채 지층에 남아서 석탄이 됐다. 그 석탄은 현생 인류에 의해서 산업혁명의 연료가 됐다.

먹이가 되는 식물이 육지로 진출함에 따라 동물 중에서는 먼저 절지동물이 육지로 올라와 곤충을 비롯한 육지 절지동물로 진화했다. 해양에서는 5.2억 년 전에 척추동물의 조상이 되는 어류가 등장했고, 데본기에 번성해서 해양의 데본기는 어류의 시대였다. 어류는 양서류를 거쳐서 데본기 후기에 파충류를 비롯한 4지 육지 동물로 진화했다. 이들은 물이 없는 육지에서 번식하기 위해 양막을 갖춘 알을 발명했다. 이후 육지의 식물상과 동물상은 대량멸종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바뀌었다. 중생대는 파충류의 시대였고, 신생대는 포유류의 시대가 됐다. 중생대의 트라이아스기-주라기 대량멸종 이후에는 파충류 중에서도 공룡의 시대가 됐고, 공룡은 주라기와 백악기에 걸쳐서 다양한 종이 번성했다. 커다란 소행성의 충돌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백악기-제3기 대량멸종으로 조류를 제외한 공룡류가 멸종하자 포유류가 생태계의 빈자리를 차지하며 번성하기 시작했다. 포유류도 에오세-올리고세 대량멸종으로 주요 종의 전환이 일어났다.

생명의 번성과 쇠퇴는 대륙의 변동과 맞물려서 일어났다. 고생대 후기(3.35억 년 전, 석탄기)에 남쪽의 곤드와나 대륙과 북쪽의 로라시아 대륙이 합체해 적도를 중심으로 남극에서 북극까지 이어진 판게아 초대륙이 형성되어 중생대 초기(2억 년 전, 트라이아스기-주라기 경계)까지 유지됐다. 해양도 판게아에 둘러싸인 테티스해와 판게아 바깥의 거대한 초해양 판탈라사가 형성됐다. 초대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대륙판과 대륙판의 충돌하면서 거대한 산맥이 형성됐고, 이는 대륙의 기후에 영향을 끼쳤다. 판게아의 형성과정에서 곤드와나와 로라시아가 충돌하면서 북아메리카의 애팔래치아산맥, 유럽에 흩어져 있는 여러 산맥이 형성됐다.

판게아 초대륙은 2억 년 전부터 해체되기 시작해 여러 개의 대륙으로 갈라졌다. 공통 조상에서 유래해 초대륙을 구성하던 여러 대륙에 흩어져 있던 종이 초대륙의 분리로 각기 다른 진화 경로를 통해 대륙 고유종으로 진화하게 됐다. 판게아의 형성과 해체는 현재 대륙의 모양과 화석의 분포 등을 통해 확인됐으며 판구조론이 정립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판게아의 해체 후에도 대륙의 이동은 계속되어 현재의 대륙 분포가 만들어졌고, 현재도 대륙의 이동, 합체와 분리가 진행 중이다. 5천만 년 전부터 시작된 인도판과 유라시아 판의 충돌은 히말라야산맥을 형성했고, 히말라야산맥은 동남아시아의 고유한 몬순 기후를 만들었다. 몬순 기후는 이 지역에 정착한 인류의 벼농사 문화로 연결된다. 아프리카판을 둘로 나누며 2천5백만 년 전에 시작된 동아프리카 열곡대 (발산 경계) 형성은 근처의 기후를 건조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열대우림이었던 지역이 사바나 지역으로 바뀌었다. 그곳이 거주하던 인류의 조상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진화를 하는 과정에서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을 하며 사냥꾼으로 변모했고 현재의 인류에 이르는 진화의 길로 들어섰다.

 

 

기후의 변화

46억 년의 역사 동안 지구의 기후는 다양하게 변해왔다. 기후는 특히 생명의 번성과 멸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급격한 기후변화는 대량멸종의 주요 원인이었다. 특정 지역의 기후는 지역의 위도와 지형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지구의 전반적인 기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는 지표면의 평균온도다. 지구의 온도가 지질학적 시간 척도에서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아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긴 하지만 지층과 화석에 들어있는 동위원소들의 비율 등을 조사해서 추정하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왜 변해왔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알려면 지표면 온도가 어떤 요인들에 의해 정해지는지, 즉 고도의 복잡계인 지구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너무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기본적인 이해에 만족하기로 하자.

기본적으로 지표면 온도는 유입되는 태양복사와 방출되는 지구복사의 균형으로 결정되고, 지열의 영향은 크지 않다. 지구에 오는 태양복사의 양은 태양의 밝기에 비례하고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한다. 지구복사의 양은 지표면 온도 4제곱에 비례한다. 태양복사의 유입량과 지구복사의 방출량은 대기, 해양, 대륙의 복사 흡수율과 반사율에 영향을 받는데, 대기의 구성, 해양과 대륙의 표면 특성, 복사의 파장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면 태양복사의 양이 위도에 따라 다르고, 대륙의 반사율이 해양의 반사율보다 크기 때문에, 대륙의 크기와 위치도 지구 온도에 영향을 끼친다. 기온이 내려가 대륙이 빙하로 덮이면 태양복사 반사율이 높아져서 기온 하강은 양의 되먹임을 받는다. 태양복사는 가시광선이고 지구복사는 적외선이어서 적외선을 잘 흡수하는 기체가 대기에 있으면 지구복사의 방출을 막아서 지구 온도가 올라간다. 이런 기체를 온실기체라 하며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탄 등이 해당한다. 현재 지표의 평균온도는 15℃인데, 만약 같은 조건에서 온실기체가 없었다면 평균온도는 –18℃가 됐을 것이다. 초기의 지구에는 대기의 밀도도 높았고 온실기체의 양도 많아서 온실효과는 훨씬 컸다. 이는 어두운 태양 역설-명왕 누대에는 태양의 밝기가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음에도 어떻게 물이 얼어붙지 않고 해양을 형성했는가-의 답을 준다.

지구 시스템의 되먹임 작용도 기온변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음의 되먹임은 기온을 안정시키고, 양의 되먹임은 탈주run away 현상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온실효과로 온도를 높이고, 온도가 높아지면 침식의 활성화로 암석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음의 되먹임이 작용하여 이산화탄소의 양을 안정시킨다. 하지만 온도가 높아지면 일부 대륙의 지면에 저장돼 있던 온실기체인 메탄이 방출되면서 양의 되먹임이 작용하여 온도 상승은 가속될 수 있다. 양의 되먹임의 다른 예로 빙하의 증가는 햇빛의 반사를 늘려서 기온 하강을 가져오고 빙하의 양은 더욱 늘어나 기온 하강이 가속된다. 실제 지구는 많은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는 복잡계여서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 대산화 사건이 촉발한 온실기체의 감소와 이어진 눈덩이 지구 상태도 빙하에 의한 양의 되먹임만 작용했다면 낮은 기온이 지속됐겠지만, 꾸준한 화산활동이 온실가스를 늘려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알려진 현생 누대 동안의 지구 온도의 변화 양상을 통해 지구의 역사를 돌아보자. 위의 그림은 현생 누대에 지구의 평균온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준다. 그림에서 다섯 개 구간별로 다른 시간 척도가 적용되고 있음을 주의해서 봐야 한다. 기온의 급강하로 빙하기에 접어드는 시기는 대량멸종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 오르도비스기에 시작되어 데본기와 석탄기에 이어진 육지 식물의 번성과 산소의 증가는 빙하기를 가져왔고 다른 요인들과 맞물려 대량멸종을 일으켰다. 신생대 제3기의 에오세와 올리고세 경계는 현재 빙하기의 시작으로(이때 형성된 남극의 빙하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대량멸종을 동반했고, 이때 포유류의 교체가 일어나 현생 포유류가 남았다. 중위도 지역은 온난 습윤한 기후에서 건조해진 기후로 변하면서 삼림이 쇠퇴하고 풀(벼과 식물)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풀은 초식동물의 번성을 가져왔고, 훗날 인류에게 곡물과 가축을 제공했다.

플라이스토세 이후 현재의 홀로세까지 전체적으로 이전 시대에 비해 낮은 기온을 유지하고 고위도 지역에 빙하가 남아 있어 제4기 빙하기라 한다. 최근 100만 년 동안의 기온변동을 보면 10만 년 주기로 기온이 내려가 빙하가 확장되는 빙기와 기온이 올라가 빙하가 줄어드는 간빙기가 반복되고 있고, 현재는 간빙기에 해당한다. 이런 지구 온도의 주기적인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지구의 궤도 이심률, 궤도 세차, 자전축 기울기, 자전축 세차, 이렇게 4개의 행성운동 주기의 조합으로 일조량이 변하고 지구 시스템의 반응이 맞물려 온도의 변동은 약 10만 년 주기로 반복된다는 밀란코비치 주기 가설이 유력하다. 이는 지구 온도에 변동을 주는 수많은 요인이 있는데, 각 요인이 주는 변동의 크기와 작동하는 시간 척도가 다양함을 보여준다.

밀란코비치 주기 가설이 맞는다면 앞으로 수천 년 이내에 지구는 다시 빙기로 돌아가리라 예측된다. 하지만 현재 지구의 온도변동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지구의 온도가 높게 상승했던 시기는 많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가파른 상승 기울기는 전례가 없다. 이에 대한 유력한 가설은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급증해서 발생한 지구온난화다. 급격한 기온상승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현재의 지구온난화가 10만 년 주기의 빙기-간빙기 반복을 압도할지 여부는 매우 흥미롭지만, 현재 가장 번성한 종인 인류의 미래가 달린 무거운 주제다.

지구의 역사는 단순히 생명과 인류 역사의 배경이 아니라, 이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맞물려 있다. 지질과 기후의 변동이 생명과 인류의 진화, 나아가 문명의 진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으며, 반대로 생명과 인류의 활동이 지질과 기후의 큰 변동을 만들기도 했다. 생명이 발명한 광합성은 산소를 발생시켜 지구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고, 지각판의 이동은 생명의 진화에서 인류의 문명까지 영향을 끼쳤다. 지구 입장에서는 작은 변동도 생명과 인류에게는 커다란 시련을 안겨줄 수 있다. 가까운 예로 19세기 전반에 탐보라 화산의 폭발로 지구 온도가 조금 내려갔는데 인류는 심각한 기근을 겪었다. 인류는 이제 자신이 지구에 던진 지구온난화라는 작은 변동이 지구 시스템의 되먹임을 통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살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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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배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