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우리의 정체성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다. 우주의 물질이 뭉쳐서 별이 만들어지고, 별에서 합성된 다양한 원소들이 모여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생명체를 형성했다. 생명체는 생명 현상을 보이는 복잡계다. 생명은 모든 연구자가 동의하는 정의가 아직 없을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가진 현상이다.1 방사성 동위원소 추적자를 사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생명이 유지되는 동안 끊임없이 교체된다. 생명은 생명체를 이루는 물질이 구현하는 어떤 과정이지 물질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체가 수행하는 기능과, 그 기능을 구현하는 방식을 통해 생명의 이해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생명체의 핵심 기능은 번식, 대사, 진화라 할 수 있다. 번식은 자신을 복제한 다음 세대의 생명체를 생산하는 기능을 의미하며. 번식에는 물질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대사는 외부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획득해서 번식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생존을 유지하는 기능을 뜻한다. 번식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제는 완벽하지 않아 변이가 만들어지는데, 각 변이는 주어진 환경에 각기 다른 생존과 번식 적합도를 갖고 있어 그중 일부가 선택되거나 도태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처럼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환경에 적응한 생명체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 바로 진화다.

물질을 생명체로 바꾸는 비법은 무엇일까?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한 이후 진화는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수많은 종류의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현재 알려진 모든 생명체의 구현 방식에는 공통적인 기본 틀이 있다. 모든 생물은 자신과 환경을 나누는 막으로 둘러싸인 세포라는 단위로 구성되고, 물이라는 용매에서 일어나는 탄소가 중심 원소인 중합체의 화학반응을 기반으로 한다. 번식은 생명의 구현에 대한 정보를 복제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생명 정보의 저장, 복제, 구현이 DNA, RNA, 단백질로 이어지는 분자 체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화학반응에는 에너지 공급이 필요한데, 외부에서 획득한 물질과 에너지로부터 ATPAdenosine TriPhosphate라는 화학에너지 저장 분자를 생산해서 필요한 곳에 공급한다. 이런 공통적인 기본 틀로 보아 모든 생물은 공통 조상이 되는 한 종류의 세포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공통 조상을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우리말로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이라 한다.


진화 과정에서, 공통적인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획득하는 방식, 번식 방식, 구성과 기능의 복잡한 정도 등에서 차이가 있는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종의 생명체가 출현했다. 생명의 역사는 한마디로 환경 변화와 진화가 빚어낸 생물 다양성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생명의 역사가 만든 생물 다양성을 살펴보기 위해서 생물분류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 생물학에서는 생물의 형태와 진화의 계통을 따져 역domain, 계kingdom, 문phylum, 강class, 목order, 과family, 속genus, 종species의 순으로 큰 분류에서 작은 분류로 이어지는 분류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생명의 기본단위인 세포 수준에서는 가장 큰 분류로 핵을 포함하여 막으로 분리된 세포 소기관이 있는 진핵세포와 소기관이 없는 원핵세포로 나뉜다.2 원핵세포는 유전정보의 전사와 번역 방식, 에너지 관련 대사의 차이 등을 따져 세균과 고세균으로 분류한다. 가장 큰 분류인 역에는 3가지 종류의 역, 즉 단세포인 고세균[역]과 세균[역], 그리고 단세포 또는 다세포의 진핵세포로 이루어진 진핵생물[역]이 있다. 진핵생물[역]에는 주로 단세포인 원생생물[계]과 다세포인 식물[계], 균[계], 동물[계]의 4계가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생물 종의 수는 200만에 육박하며, 발견되지 않은 종까지 포함하면 수천만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각 생물 종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번성하기도 했고 멸종하기도 했다. 최초 생명체의 탄생 이후 지금까지 출현했던 종의 99% 이상이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1]은 진화가 이뤄낸 생물 종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생물 종의 다양성 속에는 진화가 만들어 낸 놀라운 발명들로 가득하다. 생명의 역사는 진화가 만들어 낸 수많은 발명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구환경의 변화는 생물 종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반대로 어떤 생물 종의 번성이 지구환경을 바꾸기도 했다. 생명이 지구의 환경을 바꾼 예로는 산소 발생 광합성의 발명한 남세균의 번성으로 일어난 대산화 사건, 식물의 육지 정복에 따른 대륙의 변모, 현재 진행 중인 인류의 번성이 가져온 대멸종과 기후변화 등을 들 수 있다. 생명의 역사는 지구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온 생명체의 진화와 생명체의 번성으로 촉발된 지구환경의 변화가 서로 맞물린 지구와 생명의 공진화 역사다.

 

 

우주와 생명

생명의 역사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넘어가기 전에, 연재 ‘빅뱅에서 인간까지’에서 생명의 역사를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문명으로 이어지는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음을 상기하고,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생명의 의미에 대해 논의해 보자.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게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광활한 우주와 비교하면 먼지처럼 작은 지구와 지구 생명체의 무의미함을 묻는 반문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 질문에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면 이해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의사소통에 있어 언어의 의미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보에 의존한다. 정보의 개념을 확장하면 우주의 모든 현상을 물질이 담고 있는 물리적 정보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물리적 정보의 의미도 그 정보가 여러 곳에 공유됨으로써 생성된다. 우주에 같은 구조를 가진, 그래서 같은 정보를 담고 있는 수많은 별이 생겨남으로써 별의 의미가 생성됐다고 볼 수 있다. 복제의 과정을 거쳐 널리 확산함으로써 정보의 의미가 형성된다고 본다면, 생명의 의미는 명확해진다. 생명은 자신의 정보를 복제해서 그 수를 늘리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생명은 자신의 복제품을 늘림으로써 스스로 의미를 형성한다.

지구의 생명체는 생명의 핵심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그 수를 늘리는 데도 매우 성공적이었기에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생명은 진화를 통해 생명 정보와는 계통이 다른 새로운 정보체계를 발명했다. 신경계와 뇌를 가진 동물이 출현한 것이다. 생명 기능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출현한 이 정보체계는 주변 환경의 정보를 읽어서 자신의 뇌에 공유했다. 물론 DNA에 담긴 생명 정보에도 진화를 통해 주변 환경의 정보가 반영되어 있지만 뇌에 담긴 정보와 비교할 수준이 못 된다. 동물 종 중에서 뇌가 가장 발달한 인간은 DNA에 담긴 생명 정보뿐만 아니라 사회를 형성하고 뇌를 통해 많은 양의 문화와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인간과 인간, 인간과 환경 사이의 의미를 강화했다. 그리고 이제는 가까운 주변뿐만 아니라 우주 저 먼 곳의 정보도 캐내어 공유하며 인간과 우주 사이의 의미를 형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생명의 기원

빅 히스토리에서 다루는 여러 기원 중에서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은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어려운 주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명이 기원했는지는 과학의 주요한 미해결 문제의 하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체는 지구의 생명체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생명의 기원을 살펴보겠다. 물질이 최초의 생명체 세포가 되는 과정의 핵심은 분리, 복제, 대사라는 세포의 세 가지 기능을 물속에서 진행되는 분자들의 화학반응을 통해 구현하는 것이다. 그림2에 이 과정의 개략적인 짜임새를 보였다. 세포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짓는 분리 기능은 인지질 막으로 구현됐다. 생명 정보를 저장하고 복제하는 기능은 인산, 핵산, 핵염기로 구성된 중합체인 DNA와 RNA로 구현됐다. 대사 기능은 DNA에 저장된 생명 정보를 해석해서 합성된 아미노산 중합체인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을 통해서 구현됐다. 슬쩍 봐도 복잡해 보이는 물질이 생명이 되는 과정이 실현되려면 앞의 모든 구성 요소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모일 수 있어야 한다. 지구의 역사에서 언제 어느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생명이 기원한 시기가 언제였는지는 지구의 역사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생명체의 활동이 남긴 흔적에 대한 화석증거는 최초의 생명체가 38억 년 전 이전에 출현했음을 가리킨다. 당시의 지구환경을 고려했을 때 최초의 생명체는 지구가 탄생한 후 수억 년이 지난 시점인 지금으로부터 41~42억 년 전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명이 기원한 장소가 어딘지는 유력한 후보가 몇 곳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그곳은 세포의 기능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재료들이 유입될 수 있고 이들을 충분히 농축해서 화학반응의 순환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갖춰져 있는 등 여러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현재도 원시 수프, 해저 열수공, 외계 기원 등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중 해저 열수공이 많은 조건을 만족해서 유력하긴 하지만, [그림2]에 보인 여러 과정을 종합해서 모두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생명의 재료 중 당, 지질, 아미노산은 당시의 대기에 풍부하게 존재했던 이산화탄소, 메탄, 질소에 번개가 작용해서 생성되거나 외계에서 소행성과 혜성을 통해 유입되어 해양에 축적됐을 가능성이 있다. 인을 비롯한 미네랄은 형성 초기였던 대륙으로부터 풍화작용으로 해양에 유입됐을 수 있다. 재료의 축적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자기복제의 화학적 메커니즘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DNA의 정보를 RNA에 전사하고 이를 단백질로 번역하는 과정에는, 그 과정의 결과물인 RNA와 단백질의 촉매작용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자기복제의 시작에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문제가 내재한다.

유력한 가설인 RNA 세계 가설은 RNA의 수많은 조합 중에 자기촉매 작용이 있는 조합의 집단이 분자 집단 수준에서 변이와 선택이 일어나는 화학적 진화 과정을 통해서 자기복제의 능력을 정교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RNA의 화학적 불안정성은 더 안정된 분자인 DNA에 정보를 저장함으로써 보완하고, 번식과 대사 과정의 세밀한 조정은 단백질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DNA, RNA, 단백질의 기능분화가 화학적 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세포막의 형성은 용매인 물과 인지질의 협업으로 가능했다. 인지질은 긴 막대 형태로 친수성인 말단과 소수성인 말단을 가져서, 인지질 집단은 물속에서 소수성 말단이 안쪽으로 향해서 서로 붙고 친수성 말단이 물 쪽을 향하는 형태로 옆으로 길게 이어진 이중 막을 형성한다. 세포막 안에서 복제 메커니즘과 이에 필요한 분자와 에너지를 공급하는 대사 메커니즘이 결합해야 최초 생명체 세포가 완성된다. 일어나기 어렵고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이 과정은 화학적 진화 과정이 있어서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지구가 탄생한 후 수억 년 내에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했다.

 

 

생물학적 진화의 서막

해저 열수공을 비롯해 생명이 기원했을 곳으로 유력해 보이는 장소는 지표면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특별한 지형이다. 물질과 에너지, 즉 영양분이 풍부한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기원한 최초의 세포가 주변의 다른 환경을 가진 지역으로 퍼져나가려면 그 지역 환경에 맞춰 영양분을 획득할 방법과 번식 방법을 개발해야 했다. 생명체가 지닌 진화 기능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우연이 만든 생명 정보의 많은 변이 중에 주변 지역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변이를 가진 세포가 출현해서 그 지역에 진출해서 번성하게 됐다. 생물학적 진화를 통해 다양한 환경 각각에 적응한 방법들을 획득하면서 공통 조상으로 추정되는 호열균으로부터 세균과 고세균이 분기한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분석으로 추정한 분기가 일어난 시점은 32~35억 년 전쯤이다. 세균과 고세균은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하도록 진화했고, 각각의 고유한 대사 방식을 발명해 냈다. 영양분이 풍부한 지역을 찾을 수 있도록 화학적 감각을 발전시켰고, 이동할 수 있도록 편모도 발명했다.

진화의 과정에서 세균은 영양분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다른 생명체로부터 탈취하는 포식과 태양 복사에너지를 활용하여 자체 생산하는 광합성을 발명했다. 또한 영양분으로부터 더 많은 ATP를 생산하는 산소 호흡도 발명했다. 에너지 대사량을 높이는 이런 발명은 세포가 더 많은 에너지를 활용함으로써 몸집을 키우고 고도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고, 진핵세포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세균과 고세균보다 훨씬 뒤에 등장한 진핵세포는 에너지 대사에는 일부 세균에 유사한 방식, 유전정보의 전사와 번역에는 세균/고세균과 유사한 방식을 사용했다. 세균과 고세균은 환경 변화에 따른 진화를 통해 다양한 종이 출현해서 번성과 멸종을 겪어왔고, 현재에도 지구 생태계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균과 고세균은 영양분의 재활용과 순환, 질소 고정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 동물은 자기 세포의 수보다 많은 세균 및 고세균과 공생하고 있다.

 

 

광합성의 발명

해양의 표면으로 진출한 세포들은 지열이 제공한 영양분 대신 햇빛을 이용해 ATP를 생산하고 이를 이용하여 탄수화물을 합성해서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법을 발명했다. 광합성의 기본적인 틀은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전자공여 물질로부터 전자와 수소이온(양성자)을 떼어내어 단기 에너지 저장 물질인 NADPH와 ATP를 생산하고, NADPH와 ATP 그리고 외부에서 들여온 이산화탄소를 활용하여 캘빈회로라는 화학반응 회로를 돌려 최종 에너지 저장 물질인 탄수화물을 합성하는 두 단계로 구성된다. 초기의 광합성 세균은 전자공여 물질로 수소나 황화수소 등을 이용했으나, 이어서 물을 이용하는 남세균이 등장했다. 황화수소를 이용하면 부산물로 황이 생기지만, 물을 이용하면 부산물로 산소가 발생한다.

해저 열수공과 같은 생명의 발원지는 지형적으로 매우 제한된 지역이었다. 광합성을 발명한 세균은 햇빛이 비치는 해양 표면 모든 곳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남세균의 확산과 번성은 부산물인 산소를 대량으로 해양과 대기에 방출했고, 이는 지구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25억 년쯤 시작된 이 사건을 ‘대산화 사건’이라 한다. 발생 초기에는 산소가 해양에 녹아 있던 철 이온과 결합하여 물에 녹지 않는 산화철이 되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먼 훗날 이것은 철광석으로서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는 주요 재료를 제공했다. 24억 년 전쯤 해양의 철 이온이 소진되자 해양과 대기에 산소가 축적되면서 산소농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소는 반응성이 큰 독성물질이라 산소에 적응하지 못한 당시의 대부분 생명체는 산소로 인해 멸종하는 화를 입었다.

해양에서 발생한 산소는 대기로도 유입됐다. 광합성은 대기 이산화탄소를 소비했고 부산물로 발생한 산소는 대기 메탄을 산화시켰다. 온실기체인 메탄과 이산화탄소의 감소로 지구의 기온이 내려가면서 적도 근처까지 얼어붙는 눈덩이 지구 상태가 시작됐고, 이 상태는 지질 활동에 의해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회복될 때까지 수억 년 동안 지속됐다. 눈덩이 지구 상태는 많은 생물 종에 혹독한 시련이자 멸종의 원인이 됐지만, 일부 종에게는 놀라운 발명을 통해 시련을 극복하는 진화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산소 호흡을 발명해 에너지 효율을 높인 세균이 등장했고, 이런 세균을 내부로 끌어들여 공생함으로써 진화적 도약을 이룬 진핵세포가 등장했다.

광합성의 생명의 에너지 혁명이었다. 광합성의 발명으로 생명은 지구 표면 거의 모든 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고, 태양 복사에너지 흐름을 능동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지구에 생명의 질서를 더했다. 광합성은 포식이 중요한 생존 전략이 되는 계기가 됐다. 조류algae, 식물에서 초식동물, 육식동물로 이어지는 거대한 먹이그물이 형성될 수 있었음은 광합성이 공급한 대량의 에너지 덕이다. 광합성의 부산물인 산소는 지구환경뿐만 아니라 생명 진화의 방향을 바꿨다. 산소 호흡의 발명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되면서 원핵세포보다 몸집이 크고 기능도 늘어난 진핵세포가 출현했고, 산소농도의 상승하면서 다세포 생물의 진화로도 이어졌다. 광합성을 통해 얻은 물질과 에너지는 생명체에서 바로 쓰이지 않고 저장되기도 했다. 광합성으로 몸집을 불린 육지 식물과 해양생물은 분해되지 않고 지층에 묻혔다가, 훗날 인류에게 화석연료가 되어 나타났고, 이로부터 나온 대량의 에너지는 인류가 문명의 도약을 이루는 거름이 됐다. 지구와 생명과 문명의 역사가 이렇게 서로 이어져 있음이다.

 

 

산소 호흡의 발명

생명체는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물질과 에너지를 유입하여 소모함으로써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열린 복잡계다. 물질과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어 닫힌계가 됨은 죽음을 의미한다. 물질과 에너지를 어떻게 획득하는가는 생명체의 본질적 요소이고, 그래서 진화와 발명의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했다. 최초의 생명체는 지구환경이 만들어 놓은 영양분을 활용하는 일종의 기생이었다. 광합성은 물질은 여전히 지구환경으로부터 획득하지만, 에너지는 태양 복사에너지를 활용하여 자체 생산하는 혁명적인 전환이었다. 생물이 에너지를 얻는 또 다른 길은 다른 생물체가 획득한 영양분을 탈취하는 포식이다. 포식은 생명체의 수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산소 발생 광합성을 발명한 남세균의 번성으로 생물 총량이 늘면서 포식은 매우 유용한 전략으로 부상했다.

해양과 대기에 축적된 산소는 에너지 효율 면에서도 혁명적인 변화를 촉발했다. 산소는 많은 생물 종에 독성이 됐지만, 일부 종은 역으로 산소를 활용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산소 호흡을 발명했다. 산소 호흡은 광합성의 역과정으로 탄수화물을 이산화탄소와 물로 온전히 분해함으로써 무산소 호흡에 비해 10배 이상 많은 ATP를 생산했다. 20억 년 전에 등장한 산소 호흡 세균은 경쟁에서 우위에 올랐고, 무산소 호흡 생명체를 산소가 희박한 제한된 영역으로 몰아냈다. 또한 산소 호흡 세균은 내부 공생을 통해 진핵세포에 수용됐고, 다세포 생물의 보편적인 에너지 획득 방식이 됐다. 더 많은 에너지의 공급은 세포가 크기를 키울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산소 호흡의 수용은 진핵세포가 크기를 키워서 더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뿐만 아니라 포식-피식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도 작용했다.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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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배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