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칠

들어가는 글

대단한 상상력으로 전세계 SF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류츠신의 [삼체]란 소설의 2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삼체인들의 침략에 맞서 인류가 추진한 면벽 프로젝트의 마지막 면벽자 뤄지가 오랜 동면에서 깨어났을 때다. 동면 후 185년이 지나 깨어난 후의 세계에선 복도의 벽, 지면, 옷, 심지어 냅킨도 디스플레이로 변했다. 회의는 사람들의 홀로그램을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모든 건축물의 벽면은 언제든 디스플레이로 작동하다가 투명한 창으로 바뀔 수 있다. 가속하는 기술의 진화 속도를 고려할 때 200년 후 인류 문명의 모습을 제대로 상상하기는 힘들겠지만 소설 속 장면들은 현재 디스플레이가 지향하는 몇 가지 방향을 담고 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든, 자유로운 형상과 실감형 영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디스플레이의 모습이다.

현대인들의 하루를 보면 디스플레이로부터 시작해 디스플레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의 업무 외에도 SNS를 통한 온라인 소통이나 최근의 인공지능의 활용까지, 디스플레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스마트 안경처럼 개인과 증강현실, 개인과 가상현실을 이어주는 디스플레이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거실형 CRT TV에서 출발한 디스플레이의 역사는 평판형 디스플레이로 탈바꿈하며 노트북, 모니터, 스마트폰, 전자시계를 아우르며 이제 스마트 안경이나 VR기기로 진화 중이다.

디스플레이에 대한 지난 9화의 연재글에서는 주류 디스플레이에 올라갔지만 역사에서 퇴장했거나 현재 주류 기술을 이루는 CRT, LCD, OLED 기술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디스플레이에 대한 이번 마지막 글에서는 지난 연재에서 놓친 최근 디스플레이 기술의 흐름을 간략히 소개한 후 디스플레이 기술의 발전 방향과 전망에 대한 개인적 소견을 정리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마이크로”란 이름이 붙은 디스플레이

우선 복잡한 용어들을 분류하면서 지난 글에서 놓친 디스플레이 기술들을 소개해 보자. 언론에 보도된 최신 디스플레이 관련 뉴스들을 검색해 보면 유독 ‘마이크로1’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 [마이크로 RGB 디스플레이], 그리고 단순히 [마이크로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이 세 용어는 디스플레이의 선택에 있어 소비자들의 혼란을 가져오며 용어상 교통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현재의 상황을 보여준다. 심지어 기자들도 이 기술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잘못 보도하는 경우들도 종종 있다.

우선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와 [마이크로 RGB 디스플레이]를 비교해 보자. 디스플레이를 큰 틀에서 구분할 때 화소에서 직접 빛이 생성되어 방출되는 자발광self-emissive 디스플레이와 화소는 단지 공급되는 빛을 조절해 주고 여기에 빛을 공급하는 별도의 조명 장치가 필요한 비자발광non-emissive 디스플레이로 구분할 수 있다. [마이크로 RGB 디스플레이]는 비자발광 디스플레이에 속하고,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는 자발광 디스플레이에 포함된다. 두 용어에 포함된 ‘마이크로’란 용어는 모두 LED의 칩 크기를 가리키는데, 칩 사이즈가 100 μm보다 작은 LED를 통상 마이크로 LED라고 부른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 크기의 LED를 앞으로 “μ-LED”라 부르기로 한다. 결국 두 유형의 디스플레이 모두 μ-LED를 이용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지난 8화에서 비자발광 디스플레이의 선두 주자인 LCD 기술 중 하나로 적응형 디밍adaptive dimming 기술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항상 켜져 있는 일반적인 백라이트와는 다르게 적응형 디밍을 위해 설계된 백라이트는 많은 수의 디밍 영역dimming zone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들은 화면의 밝기 분포에 연동되어 분할 구동되며 이를 통해 영상의 명암비를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가령 밝은 보름달이 있는 영상 위치의 디밍 영역은 밝게 켜고 어두운 밤하늘에 대응하는 영역은 밝기를 대폭 줄이는 식으로 백라이트를 영상 정보와 연동해 구동한다. 이 경우 블랙을 진정한 블랙으로 구현할 수 있어 LCD 영상의 명암비가 개선된다.

[마이크로 RGB 디스플레이]는 LCD 백라이트의 적응형 디밍 중 가장 진전된 기술이 적용된 액정디스플레이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적응형 디밍에 백라이트는 항상 백색광을 내기 때문에 액정 패널에 공급되는 빛도 백색광이다3. 반면에 [마이크로 RGB 디스플레이]가 채택한 광원은 빛의 삼원색을 구현하는 적록청 μ-LED로 구성된 백라이트다. [그림 1]의 왼쪽 상단 그림을 보면 액정 패널 하단의 백라이트 내에 RGB LED가 한 단위의 디밍 영역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백라이트 차원에서 백색광만 아니라 삼원색을 개별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 백라이트와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이로부터 ‘컬러 디밍’의 개념이 구현될 수 있다.

녹색의 잎으로 둘러싸여 피어 있는 빨간색 꽃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기존의 액정 디스플레이라면 백라이트로부터 오는 백색광에 대해 액정과 편광필름이 RGB 부화소subpixel별로 투과도를 조절한 후, 이렇게 밝기가 결정된 부화소별 백색광에 컬러 필터가 색을 입혀 화소의 색상을 결정한다. 로컬 디밍이 적용되는 경우라면 어두운 화면에 대응하는 백라이트의 디밍 영역은 어둡게, 밝은 화면에 대응하는 디밍 영역은 밝게 켜서 명암비를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백라이트의 디밍 영역별 색상까지 조절할 수 있다면 하나의 자유도가 더 생긴다. [그림 1]의 오른쪽 위의 그림을 보면 빨간 꽃과 녹색 잎의 경계를 도식적으로 나타낸 액정 영상이 보인다. 하단 백라이트의 디밍 영역을 보면 녹색 잎의 영상에 대응하는 디밍 영역에서는 RGB μ-LED 중 녹색 μ-LED만, 그리고 빨간 꽃의 영상을 밝히는 디밍 영역에서는 주로 적색 μ-LED만 점등시키는 방식으로 구동됨을 알 수 있다. 물론 순도가 높은 색이 아니라면, 가령 노란색 꽃잎의 영상이라면 적색과 녹색 μ-LED 두 개를 켜고 청색 μ-LED는 점등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디밍 영역별 ‘컬러 디밍’을 하게 되면 불필요하게 낭비되던 색상의 빛 에너지를 줄이면서 동시에 더 선명한 색상을 구현할 수 있다4. [그림 1]의 하단에는 최근 국내 한 전자회사가 발표한 115인치 [마이크로 RGB 디스플레이] 실물 사진이 보인다. 발표된 보도 자료에 의하면 이 디스플레이는 인공지능 엔진을 이용해 입력되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면서 생동감과 몰입감을 극대화한 영상 체험을 가능케 한다고 한다.

 


[마이크로 RGB 디스플레이] 내 백라이트에서 RGB μ-LED 한 세트가 디밍 영역을 구현할 때 한 디밍 영역이 담당하는 화소의 수를 얼마까지 줄일 수 있을까? 가장 극단적인 경우라면 연재글 9화에서 소개한 백색 OLED처럼 원칙적으로는 화소 디밍pixel dimming의 단계로까지 내려갈 수 있다. 즉 RGB LED 디밍 영역 하나가 액정 패널의 다수의 화소에 대응하지 않고 화소 하나에만 대응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이런 극단적 백라이트를 구현할 바에 차라리 RGB μ-LED 한 세트를 한 화소로 활용하는 디스플레이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디스플레이가 있다. 바로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이다. [마이크로 RGB 디스플레이]가 비자발광 디스플레이인 LCD 기술의 진보된 형태라면,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는 자발광 디스플레이의 진전된 형태라 할 만하다. 이 기술에선 RGB μ-LED를 화소 내 광원으로 직접 활용한다.

 

사실 RGB LED를 화소로 직접 이용하는 대표적인 디스플레이 유형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바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전광판 디스플레이다. 가령 [그림 2]에 제시된 왼쪽 사진을 보면 RGB LED 한 세트가 모여 디스플레이의 화소 하나를 담당한다. RGB LED의 출력량을 조절함으로써 각 화소의 밝기와 색상을 조절할 수 있다. 고출력 LED를 수백만~수천만 개 조합해 야외의 대형 디스플레이로 활용하는 사례는 경기장이나 대형 빌딩 위 등 우리 주위에도 매우 흔하다.  최근 서울역에 설치된 실내의 초대형 디스플레이나 뉴욕 나스닥 타워의 LED 디스플레이([그림 2]의 오른쪽 사진)가 대표적인 예다.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는 전광판 디스플레이의 실내용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 고출력 LED 칩 대신 크기가 수십 µm에 불과한 μ-LED를 화소로 활용해 자발광 디스플레이로 구현한다. μ-LED는 크기가 작은 만큼 일반 LED의 장점인 높은 색순도, 긴 안정성, 짧은 반응 시간(~ns), 높은 명암비 등에 더해 잠재적으로 높은 광효율과 낮은 소비전력 등 다양한 장점이 기대되는 초소형 광원이다. 그런 만큼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는 의학, 스마트 옷감 등의 웨어러블 소자, 초소형 전자 디스플레이 등 가볍고 작은 크기의 응용 분야에 높은 적용 가능성을 갖고 있고 스마트 워치 분야에서 가장 빨리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대형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먼저 상용화되면서 대형 TV와 야외용 디스플레이로 공급되지 시작했다. 하지만 매우 고가의 제품으로 출시가 되어 현재는 주로 B2BBusiness-to-Business 거래를 통해 기업, 전시, 상업용 디스플레이로 소량 유통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림 3]에는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두 가지 방식이 개략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상용화된 제품은 상단의 구조로서 RGB μ-LED를 배열, 직접 화소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자발광 디스플레이로서 구조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삼색 μ-LED 칩을 성장시키고 기판 위로 옮겨 화소로 배열하며 이를 백플레인의 구동회로와 연결bonding하는 복잡한 공정들이 필요하다. 실제 제품은 여러 개의 모듈을 연결해 구현되며 모듈의 개수와 배치에 따라 다양한 크기와 형상을 갖는 디스플레이의 구현이 가능하다. [그림 4]는 2024년 미국 소비자가전쇼CES에 전시된 삼성의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들을 보여준다5. 그림의 오른쪽 위에 개략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모듈을 조합함에 따라 다양한 형상과 크기로 디스플레이 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가 상당한 고가로 판매되며 대중화되지 못하는 다양한 기술적 이슈들이 존재한다. 우선 높은 효율의 고품질 μ-LED 성장 기술이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다. 칩의 크기가 작아지면 칩의 표면 대 부피비가 커지면서 에피택시 성장이나 식각 과정 중 영향을 받아 결함이 생기는 표면의 영향이 커지며 효율이 떨어지고, 조성의 불균일성이 미치는 영향도 커지면서 발광색의 균일성도 감소한다. 따라서 결함을 줄일 수 있는 공정 개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슈는 가공된 RGB μ-LED 칩을 옮겨 픽셀구조를 갖추고 하부 기판의 회로 구조와 연결하는 공정의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문제다. 4K 해상도의 디스플레이라면 RGB μ-LED가 색상별로 대략 800만 개씩 필요하니 총 2400만 개의 μ-LED를 오차 없이 옮기고 정렬시킨 후 회로에 연결해 800만 개의 화소를 형성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수의 RGB μ-LED 칩들을 대량생산에 걸맞게 고속으로 옮기고 정렬시킬 수 있는 신뢰성 있는 공정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세 종류의 μ-LED 대신 한 종류, 가령 청색 μ-LED만 옮기는 일체형 전사 공정monolithic transfer의 경우, 보다 고속으로 전사가 진행될 수 있고 정렬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이 공정에서는 μ-LED 칩과 구동회로가 단일 기판 위에 동시에 집적되거나 μ-LED 칩을 제작한 후 대규모로 전사해 구동 회로 기판과 결합하는 방식, 혹은 두 가지를 혼합해 사용하는 방식 등이 시도되고 있다. 단, 한 종류의 색상을 내는 μ-LED로는 컬러 영상의 구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림 3]의 아래 그림처럼 μ-LED 위에 색상 변환층을 올리는 추가 공정이 필요하다. 이 그림에서는 청색 μ-LED 배열 위에 선택적으로 적색 및 녹색 변환층이 올라간 구조를 보여준다. 색상변환 물질로는 양자점이나 형광체가 사용될 수 있다.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의 대중화를 위해선 크기가 줄어든 LED 칩의 효율 개선, 대량생산 체제에 부합하는 효율적인 μ-LED 전사 공정의 개발 등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수백만~수천만 개의 μ-LED를 전사해 회로 기판에 결합시켰다 하더라도 이들이 모두 작동하는지 체크하고 문제가 있는 μ-LED를 교체하는 효율적 공정도 필요하다. 가령 전사와 결합 과정에서 단 0.0001%의 확률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천만 개의 μ-LED 중 10개에 문제가 생기는 셈이다. 그렇지만 만약 이 기술의 대중화가 이루어진다면 파급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현재 B2B 거래로 판매되는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의 경우 기업이나 기관이 원하는 위치, 원하는 크기로 제작 주문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가정용으로 판매가 된다면 가령 거실의 한 벽면 전체를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로 꽉 채워 상당한 몰입감을 갖고 영상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연구되고 있는 플렉서블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까지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빌딩이나 주택의 실내 어느 면적과 형상에 대해서라도 이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다양한 정보 전달이 가능해질 것이다.


마이크로 디스플레이와 머리 장착형 디스플레이

[마이크로 RGB 디스플레이]와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는 대형의 평판형 디스플레이로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두 기술 모두 수십 μm에 불과한 μ-LED 칩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마이크로란 명칭이 붙은 세 번째 디스플레이인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는 마이크로의 원래 의미에 걸맞게 초소형 디스플레이를 의미한다. 이 기술이 목표로 하는 응용 분야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혼합현실Mixed or Merged Reality, MR, 그리고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디스플레이다. 이런 착용형 디스플레이 내부에 장착되어 영상을 만드는 소형,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바로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라 부른다. 이 대목에서 용어 정리를 해 보려 한다. 일반인들이 뉴스를 보면 최근 출시되는 착용형 디스플레이에 VR, AR, MR, 심지어 XReXtended Reality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VR 기기에서는 주변의 실제 물체들을 보지 못하게 차단한 상태에서 컴퓨터가 형성한 디지털 영상만을 보는 가상환경을 구현한다. 즉 눈에 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가상현실 100%인 것이다. AR 디스플레이에서 기본 영상은 주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환경과 사물이다. 현실의 모습에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디지털 영상으로 추가해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AR이다. 터미네이터란 유명한 영화를 보면 미래에서 온 로봇의 눈이 인지하는 외부 세계의 영상에 디지털 정보가 추가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처럼 AR에서 주된 정보는 현실 세계이고 디지털 정보는 보조적 기능에 머문다. 반면에 MR에서는 실제 영상과 디지털 영상이 대등한 위치에 있다. 디지털 영상과 현실의 사물들을 함께 보며 사용자는 이를 하나의 실체로 인식하고 이 혼합현실과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한다. 가령 실제 책상 위에 가상의 모자를 사용자가 올려놓고 돌려보는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이 MR의 한 예가 될 것이다. 즉 사용자는 현실 세계와 디지털 객체가 혼합된 현실을 몰입감을 갖고 느끼도록 만든 환경에 놓이게 된다. 현실과 가상 세계를 모두 포함한 가장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현실, 즉 XR이란 개념을 쓰기도 한다. 이 맥락에 따르면 AR, VR, MR 모두 XR의 하부 개념이 된다.

 

 

그간 소개했던 LCD, OLED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디스플레이는 영상이 표시되는 스크린을 사용자가 직접 보며 사용한다. 그런데 AR, VR 디스플레이의 경우 기존의 디스플레이와 다르게 사용자가 바라보는 대상이 디스플레이 화면이 아니라 광학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상, 특히 허상virtual image이다.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예로는 자동차에 사용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ead-up display, HUD가 있다. [그림 5]를 보면 운전석 대쉬보드 하단에 설치된 디스플레이 모듈에서 만들어지는 영상이 거울이나 렌즈로 구성된 광학계를 거쳐 평행광으로 바뀐 후 창유리에서 반사되어 눈으로 들어온다. 평행광으로 입사되는 빛은 운전자에게 멀리서 들어오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HUD가 만드는 허상6은 멀리 있는 도로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지각된다.

 

현재까지 출시된 AR, VR, MR 기기들은 머리에 착용하는 형태, 즉 머리 장착형 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 HMD로 개발되었다. 따라서 영상을 만드는 고해상도의 디스플레이 패널은 HMD 내부, 눈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지만 사용자에게 이 영상은 광학계를 거쳐 HUD와 비슷한 방식으로 멀리 존재하는 확대 허상으로 인식된다. 이 허상 광학계의 가장 간단한 구성 요소는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패널과 볼록렌즈이다. [그림 6]을 보면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패널에서 출발한 빛이 볼록렌즈에 의해 굴절되어 눈에 들어오는 상황이 보인다. 가령 패널 상의 파란색 작은 원이 있는 A에서 출발한 광선들은 렌즈에 의해 굴절되며 흡사 A’의 위치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사람의 시각 체계는 눈에 들어오는 광선들의 연장선을 역으로 추적해 이 광선들이 모이는 곳에 상이 있다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즉 패널 상 A의 정보는 A’에 놓인 허상으로 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패널 상의 AB의 길이가 허상이 놓인 면에서는 A’B’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광학계의 구조에 따라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패널에서 만들어진 1인치 급 영상이 수 미터의 영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 구조에선 외부 사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VR용 HMD의 간단한 원리를 보여주는 개략도로 간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외부의 실제 세계와 가상의 디지털 객체를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AR, MR 디스플레이는 어떤 구조를 갖춰야 할까? 그중 하나를 [그림 7]에 표현했다. 그림 속 반투명 거울half mirror은 입사하는 빛의 일부는 반사하고 일부는 투과하는 거울로, 다른 말로는 광 분할기beam splitter라고도 불린다. 마이크로 디스플레이가 만드는 영상은 반투명 거울에서 반사되어 눈에 들어오는데 렌즈(혹은 오목 거울)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눈이 인식하는 확대 허상은 [그림 5]의 HUD와 같이 먼 거리에 놓인다. 반면에 그림에서 녹색으로 표현된 실제 물체의 빛은 반투명 거울을 통해 직접 눈에 의해 인식된다. 이때 주위의 실제 환경과 물체를 주로 보면서 디지털 영상이 이를 보조해 추가적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AR, 사용자가 실제 물체와 디지털 객체를 대등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들과 활발히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가 MR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사용자의 눈의 위치나 시선 방향, 몸의 제스처와 주위 물체를 정확히 감지하고 반응하기 위한 다양한 센서와 카메라가 필수적이고 이를 고속으로 처리하는 프로세서의 속도, 통신망의 전송 속도10 도 중요해진다. 게다가 현실 물체와 디지털 객체 사이의 거리감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선 현실 물체가 디지털 객체를 가릴 뿐 아니라 디지털 객체를 현실 물체가 가리는 기법도 필요하다. 

착용형 디스플레이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사용자가 가상 혹은 증강 현실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임장감immersion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VR용 HMD의 경우는 가상 세계를 실제 세계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실제감의 부여를 통해 몰입감을 극대화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평판형 디스플레이는 대각선 크기와 화소의 수를 주요 스펙으로 제시하지만 HMD에선 사용자의 눈과 디스플레이가 구현하는 허상의 대각선 크기 사이에 형성되는 각도인 화각Field of View, FoV이 중요해진다. VR의 경우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디스플레이의 영상이 사용자의 시야 전체를 가득 채우는 것이라 큰 화각이 중요하지만 AR, MR의 경우 현실 세계를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기능으로 인해 VR에 비해 화각이 작을 수밖에 없다. HMD의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은 각해상도angular resolution이다. 해상도란 디스플레이가 구현하는 영상이 얼마나 세밀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특성으로 일반 디스플레이는 단위길이당 화소의 수로 해상도를 표현한다11. HMD에선 단위 각도, 즉 1도 안에 허상의 화소 수로 표현되는 각해상도가 중요하다. 밝고 어두운 패턴의 주기를 눈 앞에 변화시킬 때 정상시력을 가진 사람이 구분할 수 있는 각해상도는 대략 1도당 30주기30 cycles per degree이다. 시야각 1도 내에 밝고 어두운 패턴이 30개 나타나면 간신히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주기에 밝고 어두운 패턴이 하나씩 들어 있기 때문에 이를 화소로 구현한다면 두 개의 화소가 필요하다. 따라서 HMD의 이상적인 각해상도는 1도에 60개의 화소, 즉 60 ppdpixels per degree가 된다. 마이크로 디스플레이의 화소 수가 고정되어 있다면 화각과 각해상도는 반비례의 관계를 가질 것이다.

HMD는 각 눈에 하나씩, 총 두 개의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패널이 들어간다. 각 눈에 입사하는 영상에 차이를 두는 양안 시차binocular parallax 12를 이용해 가상 현실의 객체들 사이에 입체감, 거리감을 부여하기가 용이하다. 고해상도를 위해 패널의 기판으로는 실리콘 웨이퍼가 사용되고, 그 위에 올리는 디스플레이 기술로는 액정 방식Liquid Crystal on Silicon, LCoS, OLED 방식OLED on Silicon, OLEDoS, 그리고 앞에 소개했던 μ-LED를 화소로 활용하는 방식LED on Silicon, LEDoS으로 구분할 수 있다. OLEDoS는 백색 OLED에 RGB 컬러필터를 결합해 영상을 구현하는 방식과 컬러필터 없이 RGB OLED를 화소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나뉠 수 있고 LEDoS도 RGB μ-LED를 화소로 이용하는 방식과 청색 μ-LED 위에 적록 색상변환층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구분된다. 최근 출시된 애플의 비전 프로나 삼성의 갤럭시 XR의 경우 3~4K 급 OLEDoS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을 마치며: 디스플레이의 미래

10 편의 디스플레이 연재글을 통해 디스플레이의 초기 역사로부터 출발해 CRT, LCD, PDP, OLED, HMD 등 주요 디스플레이로 활약했거나 현재로 사용되고 있는 디스플레이 기술들에 대해 알아봤다. 다음 관심은 당연히 디스플레이 기술이 변화해 나갈 방향과 미래의 모습일 것이다. 개별 디스플레이 소자의 특정 구조나 성능 위주로 연구를 진행했던 필자의 협소한 경험과 관점으로 디스플레이의 미래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마지막 절에서는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13의 한 보고서에 담긴 키워드를 소개하며 미래 디스플레이의 방향이나 모습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국내 디스플레이 분야의 대표 학회인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미래전략위원회에서는 2021년 말 “디스플레이 미래기술 2035”라는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14. 이 보고서에서는 현재의 기술 추세와 미래의 잠재적 수요를 기반으로 도출된, 미래의 디스플레이를 선도할 유망기술들도 담겨 있다([그림 8] 참조).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미래 디스플레이의 방향은 세 가지로서, (1)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모양으로 함께 하는 맞춤형 디스플레이, (2) 시공간 경계를 허무는 실재감, 몰입감, 사실감을 제공하는 디지털 현실, 그리고 (3) 제조에서 사용 및 폐기까지 지구환경을 보전하는 그린 디스플레이가 그것이다. 세 가지 키워드를 기반으로 2035년에 유행할 혹은 수요가 있을 디스플레이의 모습을 전망하며 아홉 가지의 도전과제가 도출되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디스플레이는 대부분 면적과 형태가 고정되어 있는 기술이다. 폴더블폰 혹은 롤러블 디스플레이처럼 제한적 범위 내에서 면적이 바뀌는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었지만 아직까진 점유율이 낮거나 개발 중이다. 맞춤형 디스플레이는 언제, 어디서든 즉각적으로 편리하게 디스플레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머리글에서 소개했던 소설 [삼체] 속 미래 사회의 모습과 닮아 있다. 즉 미래에선 가구나 건물로부터 출발해 우리 생활 공간 속 어떤 시설이나 사물에도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정보를 주고받으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그리고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하리라 전망된다. 게다가 스마트 워치, 스마트 안경의 차원을 넘어 자유롭게 크기와 형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디스플레이나 의류 혹은 피부 부착형 디스플레이를 포괄하는 웨어러블 디스플레이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시각과 청각 외에 촉각을 포함한 다중감각의 구현도 미래 디스플레이의 일부가 되리라 예상된다.

 

인류의 근대와 현대 문명을 돌이켜 보면 인간 삶의 한 측면은 ‘신체의 확장’이라 생각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착용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벗는 안경은 초등학교 때부터 필자의 삶에 매우 중요한 필수 구성 요소로서, 확장된 신체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하루 종일 손에서 거의 놓지 않는 스마트폰 역시 신체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구성 요소의 추가, 즉 신체의 확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안경을 쓰는 번거로움으로부터 콘텍트 렌즈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것처럼 스마트폰 역시 휴대의 번거로움을 탈피, 스마트 글라스, 스마트 콘텍트 렌즈, 웨어러블 디스플레이 등 내 몸의 일부를 이루는 디스플레이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현재도 스마트워치가 각종 센서로 신체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것처럼 맞춤형 디스플레이는 각종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눈의 시선을 포함한 다양한 운동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사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힐 것이다. 

미래 기술의 전망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키워드는 바로 인공지능AI이다. AI는 현재도 디스플레이 신제품 개발, 공정 혁신 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반인들도 AI의 사용이 일상화되고 있는 요즘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는 디스플레이의 일부로 자리잡을 것이다. 생성되는 정보도, 처리해야 하는 정보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는 만큼 이를 처리해야 할 초고속 통신 환경이나 프로세서에 더해 초실감, 촉각을 포함하는 다중감각의 구현이 가능한 디스플레이는 필수 요소가 될 전망이다. 전통적으로 인간과 데이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역할을 담당해 온 디스플레이는 이제 인간과 사물의 범주를 넘어 인간과 AI를 연결하는 핵심 인터페이스 장치로 그 역할이 더 확대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조명과 디스플레이 기술을 다루던 연재글이 이번 연재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이 두 기술은 우리의 삶과 인류의 문명에 깊이 뿌리를 박고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지만 전문서나 교과서 외에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해설하는 서적은 찾기 힘들었다. 조명 기술에 대한 네 편의 글, 디스플레이 기술에 대한 열 편의 글은 기술 자체에 대한 설명은 물론, 저자의 역량 내에서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하였다. 조명 기술의 진보로 생활의 근본적 변화를 경험한 인류는 디스플레이 기술을 향유하며 또 다른 차원의 근본적 변화를 겪고 있다. 인간과 정보, 인간과 AI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장치로서의 디스플레이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SNS 등을 통해 즐거움을 소비하는 창구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삶을 설계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필자가 한 회사에서 디스플레이 관련 연구를 하던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며 이처럼 우리의 삶을 바꾸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가속화되는 기술 진화 속에 이제 5년 후의 세계를 제대로 예측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주체적 사용자로서 디스플레이 신기술을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본 연재글이 작은 도움이 되었길 희망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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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n Byeong Kang 외, Advanced Display Technology (Springer, 2021).
  2. 박재형,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의 디스플레이 기초] (도서출판 홍릉)
  3. 이정익 외, “디스플레이 미래기술 2035”, 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 22권 6호 pp50-74 (2021).
고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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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반도체 ∙ 디스플레이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