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원론을 인쇄한 사람들[첫번째 글], 원론을 번역한 사람들[두번째 글], 그리고 원론을 필사한 사람들[세번째 글]이 원론의 그림을 보존하고 변형해나간 과정을 중심으로 ‘원론 속 그림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사실 각각의 단계는 원론이 우리에게 전해져 오기까지 겪게 된 세 가지 주요한 전환점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그 세가지는 각각 기술의 전환technology shift, 언어의 전환language shift, 미디어의 전환media shift을 가리킵니다. 기술의 전환은 더 이상 그림을 손으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프레스에서 그림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기술이 발전한 것을 뜻합니다. 언어의 전환은 그리스어에서 아랍어와 라틴어와 그 외 여러 현대 언어들로 원론이 번역되었던 변화를 가리킵니다. 미디어의 전환은 이 두 전환들에 선행하였던 것으로서 그림을 기록한 미디어 즉 책의 형태의 변화를 말합니다. 미디어의 전환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유클리드와 고대 그리스 기하학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렸을 땅 위의 흙에서 파피루스 두루마리로, 다시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 양피지 코덱스로 이행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2300년에 가까운 원론의 오랜 전승과정을 고려할 때, 저는 이 세 가지의 전환과 각각의 전환을 이끌어 나갔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원론 속 그림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디어의 변화가 대략 2-4세기 경에, 언어의 변화가 6-12세기 경에, 기술의 변화가 15-16세기 경에 일어났으므로, 이 세 가지 전환을 중심으로 원론 속 그림의 역사를 구성하면, 현재 남아있는 원론의 필사본, 인쇄본의 그림들이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레 그림을 필사하고, 번역하고, 인쇄한 사람들이 유클리드 원론 속 그림의 역사의 큰 줄기를 이루어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접근법은 원론의 그림의 역사를 왜곡하기도 합니다. 원론의 그림을 필사하고 번역하고 인쇄한 사람들처럼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원론 속 그림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던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원론을 읽었던 사람들입니다. 원론의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과 대비시켜 원론의 독자들을 원론의 그림을 소비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이 늘 그림을 소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본 그림에 대한 반응의 일환으로 독자들이 여백에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림의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이번 글과 다음 글에서는 독자들이 자신의 그림을 통해 어떻게 그림의 역사의 세부적인 줄기들을 만들어왔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어떤 사람들이 유클리드 원론을 읽었을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첫째 독자의 구체적인 이름이 알려진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 알브레히트 뒤러,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같은 여러 예술가들이 원론을 읽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소장하고 있었던 도서 목록이나 교제하던 사람들을 근거로 그들이 원론의 독자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둘째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그림을 필사하거나 번역하거나 인쇄한 사람들도 그들 각각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기 이전에 먼저 독자로서 원론을 마주대했을 것입니다. 셋째 초기 유럽의 대학이나 예수회와 같은 지식공동체 안에서 원론을 가르치고 공부했던 여러 선생들과 학생들도 원론의 주요 독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의 그림을 단일한 성격으로 묶어서 논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층위의 독자들이 있었고, 그에 따라 원론과 그 그림을 읽는 서로 다른 읽기가 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상은 독자들의 그림 또한 그림을 필사하거나 번역하거나 인쇄했던 사람들의 그림만큼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개별적으로 조사할 가치와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원론의 1482년 인쇄본과 출판되지 않았던 초기 이탈리아어 번역본을 읽고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구체적인 상황들을 살펴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 그림을 읽는 행위를 한다는 공통분모를 갖는 사람들을 모두 독자로 부르기로 한 것은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양해를 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번 글의 목적이 그림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남긴 그림들을 그림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만든 그림들과 전체적으로 비교해 보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을 생산한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대조군으로서 독자들을 상정해 볼 만합니다. 둘째로 위에 열거한 사람들 이외에도 이름이나 구체적인 직업군으로 특정할 수 없는 독자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당수의 독자들은 이름을 남기지 않고 원론을 읽었을 것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독자를 국한시키게 되면 오히려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독자 개개인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에 촛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들이 남긴 그림들을 가지고 ‘독자들은 왜 그림을 남겼는가’라는 질문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독자들이 남긴 그림은 그림을 만들어 왔던 사람들의 그림과 몇 가지 측면에서 구별됩니다. 그림을 만든 사람들의 그림이 원론의 중심부에 위치한다면 독자들의 그림은 대개 주변부에서 발견됩니다. 원론의 필사본을 펼치면 텍스트와 그 텍스트를 뒷받침하는 그림이 제시되는 중심 공간이 있고, 그 중심공간을 둘러싼 여백이 있습니다. 대체로 독자들의 그림은 이 여백에서 제시되었습니다. 책이라는 공간 안에서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구분이, 세대를 거쳐 계승되던 원론의 본래 그림과 독자들에 의해 추가된 그림 사이의 구획을 나누고 있는 셈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림을 만든 사람들이 각각 미디어의 전환, 언어의 전환, 기술의 전환을 거치며 분절적으로 그림의 역사를 구성해 나갔다면, 독자들은 이런 전환들에 의해 좌우되기보다는 연속적으로 그림의 역사를 이어가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필사가들과 번역자들과 인쇄업자들은 그들의 소임을 다하고 사라지지만, 원론이 읽히는 이상 독자들은 언제나 존재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독자들이 필사본의 여백에 어떤 그림을 무슨 목적으로 남겨왔는지 살펴볼 차례입니다. 지면 관계상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던 여섯 개의 주요 그리스어 사본들의 여백에 남겨진 그림을 중심으로 독자들의 그림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크게 볼 때 독자들은 1.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2.계산을 하기 위해서, 3.다른 사본의 그림들과 비교하기 위해서, 4.여러 상황들을 표현하는 다수의 그림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여백에 그림을 그린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그려진 여백의 그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그림들은 중심부에 그려진 그림과 비교해 볼 때 거의 같은 모양을 가졌기 때문에 일면 불필요하게 반복된 그림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백의 그림들이 중심부의 그림들과 글자(라벨)의 모양이나 선의 스타일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러한 특징은 여백의 그림들이 중심부의 그림들을 그린 필사가들이나 번역자들이 아니라 사본을 통해 원론을 읽었던 후대의 독자들에 의해 추가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독자들은 중심부의 그림과 거의 같은 모양의 그림을 왜 반복해서 그려 넣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여백의 그림들이 등장하는 위치를 고려해야 합니다. 기원후 5세기에 원론의 1권에 주석을 달았던 프로클로스는 원론에서 각각의 명제는 선언enunciation, 설정setting-out, 한정specification, 작도construction, 증명proof, 결론conclusion이라는 6개의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보았습니다. 프로클로스의 구분을 따르자면 이 중 선언이 끝나고 설정의 단계에서부터 작도의 단계에 이르는 동안 독자들은 그림을 설명하는 텍스트를 읽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어 사본들은 명제가 끝나는 부분에 그림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는 동안 거듭해서 책장을 넘겨서 그림을 살펴보는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독자들은 명제의 마지막에 나오는 본 그림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미리 설정이나 한정 혹은 작도의 단계가 나오는 텍스트의 여백에 그림을 추가로 그려넣는 방안을 생각해 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이제 책장을 뒤적거릴 필요없이 텍스트를 읽는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쉽게 그림을 참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독자가 텍스트를 읽는 동안 현재 펼친 면에서 본 그림을 참조할 수 있는 경우 여백의 그림은 별도로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책장을 앞뒤로 넘기지 않고도 텍스트와 그림을 함께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거의 같은 모양의 그림을 추가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따라서 여백에 그려진 그림들 중 본 그림과 거의 같은 모양으로 그려진 여백의 그림들은 대부분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추가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때로 독자들은 별도의 계산을 수행하기 위해서 여백에 그림들을 추가로 그려넣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들이 계산을 목적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은 그림의 선의 길이나 혹은 도형의 넓이에 대응하는 수들이 기입되었다는 점으로부터 분명히 드러납니다. 일례로 원론의 2권 7번 명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명제는 “어떤 직선을 임의로 잘랐을 때, 전체 위에서 만든 정사각형과 잘라진 한 부분 위에서 만든 정사각형의 합은 전체와 그 부분으로 만든 직사각형 둘과 나머지 부분으로 만든 정사각형의 합과 같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내용을 히쓰Heath의 도형을 사용하여 대수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AB }^{ 2 }+{ BC }^{ 2 }=2(AB\cdot BC)+{ AC }^{ 2 }\]

만일 \(AC\)의 길이를 \(a\), \(BC\)의 길이를 \(b\)로 표현한다면 위 식은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 (a+b) }^{ 2 }+{ b }^{ 2 }=2(a+b)b+{ a }^{ 2 }\] 이 식은 곧 우리에게 친숙한 제곱공식을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 (a+b) }^{ 2 }={ a }^{ 2 }+{ b }^{ 2 }+2ab\]

원론에서의 어떤 수의 제곱은 늘 정사각형으로, 두 수의 곱은 늘 직사각형으로 등장하듯이, 텍스트는 도형들간의 넓이의 상응관계를 이용해서 증명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옥스포드대학의 보들레이언 코덱스의 2권 7번 명제에 등장하는 여백의 그림에서는 본 그림에는 없었던 수들이 등장합니다. 그림에 적힌 특정한 수들을 통해서 독자들은 과연 이 명제가 말하는 도형들간의 넓이관계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선분에 기입되어 있는 그리스어 베타(β)는 짧은 선분의 길이를 나타내며 인도아라비아 숫자로 2에 해당하고, 스티그마(ς)는 전체 선분의 길이를 나타내며 6에 해당합니다. 넓이를 나타내기 위해 써있는 수들을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읽으면 이오타-스티그마(ις)는 16을, 델타δ는 4를, 다시 이오타-스타그마(ις)는 16을, 마지막 람다-스티그마(λς)는 36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백에 그림을 그려넣은 독자는 원래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도형들 사이의 관계 \({ AB }^{ 2 }+{ BC }^{ 2 }=2(AB\cdot BC)+{ AC }^{ 2 }\)를 이 수들을 통해서 \(36+4=2(6\cdot 2)+16\)로 확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때로는 이러한 수들이 본 그림에 직접 기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텍스트가 직접적으로 어떤 특정한 수를 언급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본 그림에 수를 써넣는 것은 텍스트에 없던 정보를, 그것도 임의의 수를 추가함으로써 본 그림을 변형한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따라서 본 그림은 수가 등장하지 않는 원래의 상태로 두고 또 하나의 그림을 여백에 추가함으로써 계산을 위한 별도의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 독자의 입장에서는 본 그림을 유지하면서도 본 그림을 왜곡한다는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이제 여백의 그림이 본 그림과 다른 모양으로 그려진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살펴본 두 용례에서는 본 그림의 모양과 거의 차이가 없는 그림이 여백에 반복해서 그려졌기 때문에, 그것들이 각각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혹은 계산을 위해서 그려졌을 것이라는 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여백의 그림이 텍스트 속의 본 그림과 다른 모양으로 그려져 있을 때는 그 이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서는 여러 사본들을 비교해보아야 합니다. 원론 3권 20번 명제에 등장하는 본 그림과 여백의 그림에서 해석의 단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번 글처럼 여섯 개의 주요 그리스어 사본에 등장하는 3권 20번 명제의 본 그림들을 아래와 같이 복원해 보았습니다.

이 그림들에서 여러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지만 우리의 논의에서는 지름 델타-에타(ΔΗ)가 볼로냐 코덱스나 바티칸 코덱스에서처럼 비스듬하게 그려진 경우와 나머지 사본들에서처럼 수평하게 그려진 경우로 나눠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렌체 코덱스의 여백의 그림은 볼로냐 코덱스의 비스듬한 경우를 표현하고 있고, 반대로 볼로냐 코덱스의 여백의 그림은 피렌체 코덱스의 수평한 경우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두 사본들이 각각 본 그림과 여백의 그림을  서로 교환한 것처럼 대응이 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여백의 그림을 그린 사람과 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동일할 경우에는 그 사람이 여백의 그림보다 본 그림을 더 선호했고, 그 결과 하나는 중심부에 다른 하나는 주변부에 제시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일 이 여백의 그림이 본 그림을 그린 사람과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그려졌을 경우에는, 아마도 둘 혹은 셋 이상의 사본에 접근할 수 있었던 독자가 사본들 간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사본의 여백에 다른 사본의 본 그림을 본따 그림을 그려넣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본들 간의 그림을 비교하고 그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그림 비평의 사례가 사본들의 여백에서 처음 등장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에, 이 독자들은 일반 독자들보다 훨씬 더 전문적으로 원론을 읽는 독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백의 그림과 본 그림이 다르게 그려진 또 다른 경우로는, 텍스트가 여러 기하학적 상황을 다루기 때문에 복수의 그림이 그려져야 했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론이 한 사본에서 다른 사본으로 필사되는 과정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원론의 텍스트를 필사하는 작업과 본 그림을 그려넣는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 아마도 개별 사본마다 제각기 다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떤 사본에서 텍스트를 필사하는 사람과 그림을 그려넣은 사람이 동일한 사람이었다면 다른 사본에서는 일종의 노동의 분배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떤 경우에라도 통상 텍스트를 먼저 필사하고 그 이후에 그림이 그려졌다는 점입니다. 텍스트 위를 침범한 그림들이나 간혹 미처 다 완성되지 않은 그림들이, 텍스트의 필사 이후에 그림이 그려졌다는 순서를 뒷받침 해줍니다. 

즉 필사가들이 먼저 텍스트를 베껴쓰면서 그림이 들어갈 자리를 남겨놓곤 했는데, 주로 명제의 끝부분에 그림 하나가 들어갈 자리만 남겨놓곤 했습니다. 필사가가 명제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면서 텍스트를 옮겨썼는지에 따라 간혹 그림이 들어갈 공간을 더 친절하게 배려해 둔 경우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치 한 명제당 그림 하나라는 암묵적인 원칙이 있는 것처럼 대부분은 그림 하나가 들어갈 자리만 남아있곤 했습니다. 그러나 간혹 원론에서 어떤 명제들은 여러 그림들을 동반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러 기하학적 상황들을 차례로 다루면서 해당명제가 모든 경우에 성립한다는 점을 검토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3권 25번 명제는 활꼴이 주어졌을 때, 그로부터 원을 작도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주어진 활꼴이 반원보다 크기가 작을 경우, 같을 경우, 클 경우에 따라 원의 중심도 각각 활꼴의 바깥, 활꼴의 선분 위, 활꼴의 내부에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세 개의 그림이 필요하지만 보통 남은 자리는 그림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지난 번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러 상황이 겹쳐서 이상한 그림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만일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여백을 활용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대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백의 그림들이 때로는 본래의 그림이 다루지 못한 나머지 경우들을 다루는 그림으로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명제에 수반되서 따라나오는 따름정리Corollary를 표현하는 그림들이 독자들에 의해 여백에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4권 15번 명제에서 그런 경우를 찾을 수 있습니다. 4권 15번 명제는 주어진 원안에 정육각형을 내접시키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원론에서는 비슷한 사례로 주어진 원 안에 정오각형을 내접시키거나 외접시키는 문제를 각각 4권 11번과 12번 명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육각형을 주어진 원에 외접하는 문제는 독립된 명제가 아니라 4권 15번 명제의 따름정리로 등장합니다. 당연히 이러한 부수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그림을 위한 공간이 중심부에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주어진 원을 외접하는 정육각형을 여백의 그림에 표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여백에 남겨진 독자들의 그림이 크게 네 가지의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본 그림과 거의 같은 모양으로 제시된 여백의 그림들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혹은 계산을 하기 위해서 추가된 경우들로 볼 수 있고, 본 그림과 다른 모양을 갖는 여백의 그림들은 다른 사본의 그림을 보여주고자 혹은 명제가 다루고 있는 여러 경우나 부수적인 경우들을 표현하기 위한 경우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여백의 그림들 사이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텍스트나 본 그림이 남겨놓은 미완의 과업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백에 남겨진 그림들 중에는 텍스트에서 언급되지 않은 기하학적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있는 그림들도 발견됩니다. 이것이 아마도 여백에 남겨져 있는 그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갖는 그림들일 것입니다. 다음번 글에서는 이런 그림들을 단순히 여백에 남겨진 주변부의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시각적 주해註解, Visual Scholia로서 격상시켜서 해석해야 할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각적 주해가 갖는 대체불가능한 역할, 즉 여백에 남겨진 독자들의 그림이 기하학적 사고를 확장시켜 나가면서 그림의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설명하려 합니다. 더불어 어떻게 중심부와 주변부의 그림이 서로 그 경계가 모호해져갔는지 또한 독자의 그림이 어떻게 인쇄본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게 됐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이은수
스탠포드대학 고전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