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4월 17일, 브뤼셀에서 개막된 세계박람회의 국제과학관에는 커다란 원통형 바이러스 모형이 전시되었다. 이 모형은 럭비공처럼 생긴 흰 타원체를 나선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높이 1.5m 가량의 조형물이었다. 바이러스 모형의 중간 부분에 타원체 3개가 빠진 자리에는 3개의 굵은 선이 노출되어 있었는데, 그 선은 타원체와 타원체 사이의 틈을 파고든 채 나선을 그리며 돌았다.

세계박람회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이 조형물은 담뱃잎을 돌돌 말려 부스러지게 만드는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obacco Mosaic Virus의 모형이었다. 럭비공을 닮은 흰 타원체는 바이러스의 핵산을 감싸는 단백질 캡시드capsid에 해당했고, 캡시드 사이에 박힌 굵은 선은 RNA를 나타냈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는 가운데가 빈 원통형이었고 럭비공을 닮은 단백질 캡시드로 인해 원통의 내외부 벽면은 올록볼록했다. RNA는 캡시드에 둘러싸인 채, 원통의 내부에서 나선을 그렸다.

박람회에 전시된 이 모형에는 수년간의 과학자들의 노고가 담겨 있었다. 과학자들은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모양과 크기, 그리고 내부 구조를 밝혀내기 위해 바이러스를 결정으로 만들어 샘플을 준비하고 수천 장의 X선 회절 사진을 찍은 뒤 사진에서 가능한 정확한 데이터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세계박람회에 전시된 바이러스 모형은 이런 과학자들의 노고에 대한 찬사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그 찬사를 받지 못했다. 세계박람회 개막식 바로 전날, 브뤼셀에 전시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모형을 만든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1920-1958은 세상을 떠났다.

 

프랭클린은 DNA 이중나선 발견의 ‘비극적 히로인heroine’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의 비극은 DNA의 나선 구조의 증거가 되는 X선 회절 사진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의미를 해독하지 못한 무능력과 주변 동료들과 불화했던 독선적 성격에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1968년 출간된 제임스 왓슨James Watson, 1928-의 <이중나선The Double Helix>은 이와 같은 프랭클린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후 왓슨이 만든 왜곡된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그런 노력들은 프랭클린이 DNA가 나선이라는 것을 알았는가, 알았는데 왜 먼저 발표를 하지 않았는가 등 그녀의 과학적 무능력을 해명하는 데 집중했다. 또 남성 중심적이었던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의 분위기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프랭클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조차 왓슨이 던진 프레임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왓슨이 제시한 프레임에 갇혀 우리는 2년에 불과했던 킹스 칼리지에서의 DNA 연구가 과학자로서 프랭클린의 모습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생각해 왔다. 그러는 과정에서 프랭클린이 석탄 구조 연구의 권위자였다는 사실도,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분자 구조를 규명했다는 사실도 종종 잊곤 했다. 한 마디로 2년간의 DNA 연구가 20년 가까운 그녀 연구 인생 전체를 가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DNA 연구에서 눈을 돌려 그녀의 다른 연구 활동들을 살펴보면 프랭클린은 고립되었던 독선적 연구자가 아니라, 동료 연구자들과의 네트워크 속에서 활발하게 상호작용했던 생산적인 연구자이자 유능했던 결정학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특징이 특히 잘 나타나는 것이 바로 프랭클린의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분자 구조 연구이다.

프랭클린의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연구는 그녀가 킹스 칼리지에서 버크벡 칼리지Birkbeck Collge로 자리를 옮긴 1953년 3월에 시작되었다. 버크벡은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연구를 시작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녀를 스카웃해 간 존 버날John Desmond Bernal, 1901-1971은 4권짜리 <과학의 역사Science in History>를 쓸 정도로 박학다식하고 공산주의자로도 유명했지만, 그의 명성은 무엇보다도 X선 결정학 분야에서 이룬 그의 업적에 기인한 것이었다. 1930년대부터 버날은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X선 회절 패턴을 연구한 바 있다.

버날이 없었더라도,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는 프랭클린 같은 핵산 연구자에게 매력적인 주제였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로 인지된 세계 최초의 바이러스였다. 1892년 발견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는 1898년 처음으로 박테리아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 밝혀져서 세계 최초로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바이러스는 핵산 하나와 단백질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여서 핵산 연구자들이 핵산의 복제와 단백질 합성을 연구하기에 좋은 재료였다.

 

이런 점에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는 DNA 이중나선 발견의 주역들이 관심을 갖던 주제였다. 프랭클린 외에도, 킹스 칼리지에서 그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리고 그녀의 DNA X선 회절 사진을 왓슨에게 보여준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 1916-2004도 이 바이러스를 연구했고, 케임브리지의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2004, DNA 이중나선 발견 후 미국으로 돌아간 제임스 왓슨 모두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연구에 발을 담갔다.

이들이 연구에 뛰어들기 전,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연구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단일 분자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단백질을 작은 단일 성분 입자들이 섞여 있는 콜로이드라고 보았던 연구자들은 바이러스도 작은 단위체들의 집합일 것으로 여겼다. 이에 비해 초원심분리기에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를 분리했던 연구자들은 바이러스가 3000옹스트롬 길이의 막대 모양을 지닌 단일 분자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반대자들은 초원심분리기에서 분리된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바이러스와 같을 수 없다며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1939년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를 처음으로 찍은 전자 현미경 사진은 길쭉길쭉한 바이러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바이러스 단일 분자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버날은 판쿠첸Isidor Fankuchen, 1905-1964과 함께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X선 회절 패턴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그들은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가 단일 분자가 아니라, 그보다 작은 규칙적인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분자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유닛unit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41년 두 사람은 이러한 연구 내용을 발표했지만, 그들의 주장이 단일 분자설을 깨지는 못했다. 둘의 주장이 큰 반향을 얻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 사진에 비해 X선 회절 사진은 훨씬 큰 전문성을 필요로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하게 비유하면 전자현미경 사진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라면 X선 회절 사진은 병원에서 찍은 X선 사진 같았다. 아니, 사실 X선 회절 사진은 그보다도 더 복잡하다. X선 회절 사진은 물체의 2차원 그림자를 보고 물체의 3차원 형태를 알아내는 것이다. 바이러스와 같은 고분자에 X선을 쏘면 각각의 구성 원자에 부딪혀 반사된 X선들 사이에 다양한 방식으로 간섭이 일어나는데, X선 회절 사진은 이 간섭 패턴을 찍는 것이다. 간섭이 만들어 낸 밝은 무늬와 어두운 무늬의 패턴을 보고 역으로 이 무늬가 나타나려면 내부의 구성 물질들이 어떤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어야 하는가를 찾아내야 한다.

 

프랭클린이 두각을 나타난 분야가 바로 이 X선 회절 사진 촬영과 그것의 판독이었다. 뚜렷한 X선 회절 패턴을 얻으려면 시료를 다양한 각도로 노출 시켜 선명한 패턴을 얻는 것이 우선이었다. DNA 구조 연구 때부터 그녀는 각도 조절이 가능한 X선 촬영 카메라를 직접 만들고 수소가 채워진 카메라 내부의 습도를 일정하게 조절하는 등 실험 도구를 직접 개량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랭클린이 DNA의 X선 회절 패턴 분석에 처음으로 패터슨 함수를 적용했다는 점일 것이다. 프랭클린은 복잡한 패터슨 함수 계산을 적용하여, X선 파장의 진폭을 통해 위상에 대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고 이런 데이터에 근거하여 DNA의 3차원 분자 구조를 누구보다 상세하고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프랭클린이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연구에 뛰어들었을 때 그녀는 DNA의 X선 회절 패턴 분석에 적용했던 기법을 이 연구에도 적용했다. 그 무렵 칼텍에서 같은 연구를 하고 있던 왓슨은 X선 회절 패턴 분석을 통해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에 대한 중요한 가설을 제안했다. 버날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왓슨은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규칙적인 분자가 나선 구조로 배열되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랭클린의 연구는 왓슨이 제시한 가설에서 시작했다. 그녀는 X선 회절 사진을 분석하여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분자 구조를 연구했다. 바이러스의 규칙적인 분자를 원통형으로 놓고 원통의 반경에 따른 밀도 분포를 계산했다. 이로부터 밀도가 가장 높은 부분에 RNA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그 위치는 중심으로부터 반경 55옹스트롬(후에 이 수치는 수정된다)에 해당하는 위치였다. 이는 촛불의 심지처럼 RNA가 원통의 중앙에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던 전자현미경 사진의 예측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킹스 칼리지 시절을 특징짓는 고립과 독선과는 달리,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연구에서 프랭클린은 버크벡 내외부 연구자들과 활발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며 연구를 진행했다. 우선 프랭클린은 버크벡 내부적으로 연구팀을 구성하여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팀은 아론 클루그Aaron Klug, 1926-2018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클루그는 1954년 버크벡의 식당에서 프랭클린을 만났다. 자신이 찍은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X선 회절 사진을 보여주는 프랭클린과 금세 가까워진 클루그는 프랭클린의 동료가 되어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모형을 만드는 연구를 함께 했다.

 

거기에 존 핀치John Pinch와 케네스 홈즈Kenneth Holmes가 박사 과정 학생으로 합류하면서 버크벡에서 프랭클린의 바이러스 연구 그룹이 형성되었다. 프랭클린과 홈즈는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같은 막대형 바이러스로, 클루그와 핀치는 구형 바이러스로 연구 주제를 분담하여 바이러스 구조 연구에 들어갔다. 여기에 1955년에는 미국 예일 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박사후 연수를 하러 온 도날드 카스파Donald Caspar, 1927~가 잠시 연구팀에 합류했다. 케임브리지에 온 카스파는 프랭클린의 연구팀에 합류하기를 요청했고, 카스파가 합류하면서 프랭클린 연구팀의 바이러스 연구는 더욱 속도를 내게 되었다.

버크벡 외부적으로 프랭클린은 왓슨과 크릭 등 젊은 세대의 핵산 연구자들, 영국 바이러스 학자인 노만 피리Norman W. Pirie, 1907-1997, 독일 튀빙겐의 게하르트 슈람Gerhard Schramm, 1910-1969 등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들과의 네트워크는 공식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프랭클린은 개인적인 편지를 통해, 혹은 다른 연구자들을 매개로 연구 진행 사항을 공유하며 때로는 견제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관계를 이어나갔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프랭클린은 피리에게서 결정화된 바이러스 샘플을 얻어 X선 회절 사진을 찍었고, 왓슨의 미출판 초고를 받았으며, (카스파를 알기 전에는) 예일에서 카스파가 낸 연구 결과를 미리 전해 들었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연구자들 간의 연구 주제가 조정되기도 했다. DNA 발견 이후에 믿음직한 친구가 된 크릭은 다시 케임브리지로 온 왓슨과 감자 모자이크 바이러스를 연구하기로 했는데, 프랭클린이 이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있다면 자신과 왓슨의 연구 주제를 조정해 보겠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프랭클린의 연구는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중앙부가 비어 있을 것이라는 카스파의 예측에, 원통형을 이루며 나선형으로 쌓인 단백질 캡시드 사이에 RNA가 깊숙이 박혀 나선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프랭클린의 발견이 더해지면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모형은 서서히 체계를 잡아 나갔다. 1956년 프랭클린과 클루그, 홈즈가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모형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원통형 바이러스의 반지름은 75옹스트롬, 역시 원통형 모양을 한 중앙부의 빈공간의 반지름은 20옹스트롬, RNA는 중앙으로부터 40옹스트롬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고, 나선의 1회전 높이는 23옹스트롬에 해당한다는 수치가 제시되었다. 프랭클린의 선명한 X선 회절 사진과 패터슨 함수를 적용한 계산이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정확한 ‘치수’를 제공했던 것이다.

1958년, 전 세계의 이목이 자신이 완성한 바이러스 모형에 집중된 것도 알지 못한 채 프랭클린이 세상을 떠난 후, 카스파와 클루그는 프랭클린을 제1저자로 하여 “X선 회절로 결정된 바이러스의 구조”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카스파와 클루그는 구형 바이러스의 구조까지 규명했고, 이 공로로 클루그는 198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기념 강연에서 클루그는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연구 소개에 상당한 시간을 썼고, 프랭클린의 삶이 그렇게 짧게 끝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그 자리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애석해했다.

박민아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