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빛은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휴대폰, 텔레비전, 모니터, 인터넷, 각종 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또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동서양 속담만 봐도 빛이 얼마나 우리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저녁에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할 때면 아버지께서 “전등 좀 제대로 비춰봐, 뭐가 보여야 일을 하지”라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난다. 성경에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자마자 빛부터 만들었다고 하는 걸 보면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일단 전등부터 키고 그다음 일을 시작하셨나 싶다.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주어지는 빛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당장 추위에 맞서 싸워야 했고, 어둠을 극복하여 천적들로부터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인간은 장작을 태우거나, 전기를 이용해 필라민트를 달궈 빛을 내는 백열등이나 형광 물질을 통해 자외선을 가시 광선으로 만드는 형광등을 만들거나, 최근에는 반도체를 이용한 LED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공적인 빛을 만들었다. 인류의 역사는 빛 정복의 역사와 그 보폭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태양으로부터 주어진 빛에 만족하고 살았다면 여전히 원시시대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빛을 ‘잘’ 발생시키는 것 못지않게 빛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빛은 세상에서, 아니 온 우주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물질이며 따라서 정보를 빨리 전달하는 데에도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광자 제품’이 아닌 ‘전자 제품’을 사용하는 것일까?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휴대폰에 달린 유일한 광학 장치인 카메라는 왜 보기 싫게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일까?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 데 노력을 안 해.” 주변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다. 빛을 오랫동안 다뤄온 필자에게는 빛이 딱 그렇게 느껴진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에 빛을 비유할 수 있다. 말 잘 듣는 전자는 전선에 전압만 걸어주면 전선이 제아무리 휘거나 꺾여 있어도 딴 길로 가지 않고 도선을 잘만 따라가는데 빛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알 듯) 사방으로 흩어지거나 반사해 버린다. 광학이라고 불리는 과학은 결국 이런 야생마 같은 빛을 길들여 제어하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정교한 빛의 조작을 통해 빛을 ‘재발견’하기 위해 필자 같은 나노 광학자들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소개해보려고 한다.
빛의 반사와 굴절
빛을 조작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사방으로 퍼지는 빛에 처음으로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준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거울이다. 연못에 반사된 모습을 사랑한 나머지 입맞춤을 하려다가 그것이 자신의 모습인 줄 알아차려 자살했다는 나르키소스 이야기는, 자연에 존재하는 거울의 예시다.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거울 중 가장 오래 보존된 것은 터키 영토인 아나톨리아 지역의 고대 무덤에서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약 6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울의 역할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형광등의 빛이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고 한쪽 방향으로 보내는 반사판이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파를 한곳으로 모아주는 위성 안테나도 알고 보면 일종의 거울이다. 빛의 반사를 잘 활용한 대표적인 발명품은 바로 광섬유다. 빛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류는 전반사라는 물리적 현상을 훌륭하고 적절하게 활용해 이 난제를 극복했다. 1842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쟝-다니엘 콜라돈Jean-Daniel Colladon, 1802-1893은 곡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줄기 안에 빛이 갇힌 채 퍼지지 않고 물줄기와 함께 진행하는 현상을 관측했고 그 원인이 물줄기 속에서 진행하는 빛이 물의 경계면에서 계속 반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런 현상을 내부 전반사total internal reflection라고 한다.
전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빛의 굴절과 물질의 굴절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가장 쉬운 사례로 공기 중에 있는 빛이 물을 통과할 때를 생각해보자. 공기와 물의 경계면에서 빛의 일부는 공기 중으로 반사되고 나머지는 투과하여 물속을 지나간다. 이때 물을 투과한 빛의 진로가 경계면에서 꺾이게 되는데 이를 굴절이라 하고, 물속을 지나가는 빛의 속력은 공기 중의 빛보다 약 1.3배 정도 느려지는데 이 느려지는 비율을 굴절률이라고 한다.
흔히 빛의 속력은 불변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진공 속을 달리는 빛의 속력이 일정하다는 의미이다. 빛은 왜 물속에 들어가면 느려질까? 그것은 바로 물을 구성하고 있는 각종 원자들이 빛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물은 다양한 종류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각 원자에는 제각각 그 원자핵에 구속된 전자가 있는데, 유리 속을 지나는 빛은 이런 전자를 만날 때마다 전자에게 흡수되었다가 다시 방출된다. 이런 흡수와 방출 과정이 반복되면서 빛의 진행 속력은 느려진다.
빛이 공기 속보다 물속에서 다소 느리게 움직인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빛이 공기 중에서 물속으로 들어갈 때 굴절하게 되는 이유는 될까? ‘페르마의 정리’로 유명한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7-1655는 1658년 빛이 굴절하는 이유에 대한 혁신적인 생각을 제시한다. 우선 페르마는 빛이 한 점에서 다른 점까지 여러 개의 직선 경로를 만들면서 움직인다고 가정했다.([그림2]의 가운데) 시작점과 끝점을 직선으로 이으면 [그림2]의 빨간 점선처럼 두 점을 잇는 ‘최단 경로’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빛은 최단 경로를 따라가지 않고 ‘최소 시간’ 경로를 따라간다. 물에서는 빛이 좀 느릿느릿 움직이기 때문에 빛이 물속에서 이동하는 시간을 가급적 줄여야만 전체적으로 빛이 물 밖의 한 점에서 물속의 다른 한 점으로 이동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빛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고 전자 계산기를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최소 시간 경로를 찾아 움직일 수 있을까?
쉽사리 통제가 안 돼서 그렇지 제법 똑똑한 빛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최소 시간의 원리를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도로 위를 굴러가는 드럼통이 모래밭에 다다를 때를 생각해 보자. 도로 위를 굴러가던 통의 한쪽 끝이 모래밭에 먼저 닿아 속력이 느려지는 동안, 다른 쪽은 여전히 빠르게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드럼통의 진행 방향이 [그림2]처럼 바뀌게 된다.
자, 이렇게 페르마의 원리에 따른 빛의 굴절을 이해했다면 이번엔 거꾸로 물속에서 출발한 빛이 물 밖으로 진행하는 과정을 그려보자. 이번엔 빛이 물 표면에 훨씬 가까운 방향으로 휘어진다. 극단적인 경우 빛이 공기 중으로 나오는 순간 물 표면과 나란해질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아예 빛이 공기 중으로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상상할 수 있다. 전반사는 (물처럼) 굴절률이 큰 물질에서 (공기처럼) 굴절률이 작은 물질로 빛이 진행할 때 경계면에 비스듬하게 진행하는 빛의 표면을 투과하지 못한 채 빛이 온전히 반사되는 현상이다. 앞서 말한 콜라돈의 실험에서 빛이 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원리에 따라 굴절률이 큰 코어core와 굴절률이 작은 클래딩cladding으로 감싸 인공적으로 빛이 전반사를 계속하며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아주 먼 곳까지 빛을 전달해주는 물질이 바로 광섬유다. 말하자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야생마 같은 빛에 차안대遮眼帶를 씌워 앞만 보고 달리도록 해주는 셈이다. 광섬유를 통해 빛을 운반하는 작업은 구리선에서 전자를 운반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르게 보낼 수 있다. 우리가 빛을 길들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큰 혜택이다.
빛의 기본 성질만 잘 이용해도 마법처럼 재미있는 현상을 구현할 수 있다. 간단히 네 장의 거울만 갖고 해리포터의 투명 망토와 같은 광학 위장을 구현할 수 있다. [그림3]처럼 빛이 네 개의 거울에 차례차례 직각으로 반사하게끔 거울을 배치해보자. 이렇게 하면 거울1과 거울4 사이의 ‘투명한 영역’에 있는 아이의 몸은 (거울4에 가려) 보이지 않고, 대신 거울1 뒤편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게 된다. 또다른 광학적 마법은 ‘굴절률 일치’를 이용한다. [그림3]처럼 어떤 액체 속에 물질을 넣으면 서로 다른 굴절률 덕분에 우리의 눈이 물과 물속에 있는 물체를 구분해서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물질과 액체의 굴절률이 같으면 반사나 굴절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물속에 들어있는 물체를 눈이 인식하지 못 하는 일이 생긴다. 한 마디로 그 물질은 ‘투명하게’ 된다.
굴절률 일치를 이용하면 물 위를 걷는 사람의 마법도 구현할 수 있다. 물과 굴절률이 같은 물질을 이용해 물속에 미리 길을 만들어 놓고는 그 위를 태연하게 걸으면 된다. 사람은 이 인조 건축물 위를 걷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물속에 들어있는 구조물의 존재를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마법이라고 믿게 된다. 이 원리를 예수님이 들으셨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궁금하다. 만약 우리 몸의 굴절률이 1이었다면 공기 중을 지나는 빛이 반사 없이 그대로 몸을 투과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우리는 투명인간이 된다. 투명 인간이 되면 재미있을까? 아쉽지만 투명 인간은 앞을 보지 못한다. 빛이 망막에 맺히지 않고 그대로 투과해 버리기 때문이다. 투명 인간이 되면 내가 남에게 안 보일 뿐 아니라 나 역시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니 썩 좋을 게 없다.
굴절의 재발견: 메타물질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진 빛의 성질이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메타 물질이란 것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해리 포터의 투명 망토를 구현할 수 있는 메타물질! 이제는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단어다. 영국 임페리얼 대학의 존 펜드리John Pendry, 1943-현재 교수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음수 값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의 가능성을 제안한 이후[1], 해리 포터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메타물질도 주목을 받았다. 메타μετά는 그리스어로 ‘넘어서’라는 의미를 가지며, 메타물질이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또는 그보다 훨씬 뛰어난 물리적 성질을 갖도록 인공적으로 설계된 물질을 말한다.
투명망토의 원리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만약 공간이 휘어져 있다면 빛은 어떻게 움직일까? [그림4]처럼 모눈종이 위에 직진하는 빛을 빨간색 화살표로 그려보자. 모눈종이를 비틀면 빨간 선도 함께 휘어진다. 일반 상대론에서 말하는 휘어진 공간에서 빛이 진행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굴절률을 잘 활용하면 모눈종이를 물리적으로 비틀지 않고도 마치 비틀어진 것처럼 만들 수 있다. 반대로 [그림4]의 가장 오른쪽 그림처럼 굴절률 분포를 잘 조절하면 빛은 어떤 특정한 지역을 돌아서 갈 수 있고 이 공간에 물건을 숨길 수도 있게 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만으로는 이런 굴절률 분포를 얻기 힘들지만 메타물질로는 가능하다. 보통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면 메타물질은 일종의 인공 원자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메타원자는 말 그대로 메타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 구조를 말하며, 메타물질이 상호작용하는 빛의 파장에 비해 매우 작은 크기로 설계된다. 앞서 빛이 느려지는 이유는 원자가 빛을 흡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메타원자도 마찬가지로 빛을 흡수하게끔 설계되는데, 메타원자를 구성하는 물질과 모양이 무엇인지에 따라 빛을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즉, 굴절률을 자유자재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가 빛을 흡수하는 정도, 즉 굴절률은 이미 정해져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만으로 투명망토를 구현하는 게 어려운 이유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에게 빛이 없으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질문을 해봤다. 아들은 최근 과학 유튜브에 푹 빠져 있는데,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적외선 안경을 쓰면 보인다고 했다. 적외선을 생각해낸 아들이 대견하긴 했지만, 적외선도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빛의 일종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빛은 우리가 볼 수 있는 400nm에서 700nm 사이의 파장을 갖는 전자기파뿐 아니라 수 센티미터 정도인 마이크로파에서 수십 나노미터 정도의 자외선까지 모든 종류의 전자기파를 지칭한다.
메타원자는 상호작용하는 빛의 파장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 마이크로파와 상호작용하게끔 설계된 메타원자의 크기는 밀리미터 정도, 가시광선인 경우는 수십 나노미터 정도의 크기다. 10억 분의 1미터인 나노미터가 얼마나 작은 크기인지 비교하기 위해 축구공과 지구를 비교하곤 한다. 미터 스케일에 사는 인간이 나노미터를 다룬다는 것은 지구 정도 크기의 인간이 축구공을 다루는 것과 거의 같다. 초창기의 메타물질이 비교적 구현이 쉬운 마이크로파 영역에서 구현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마이크로파 영역에서 구현된 투명 망토는 우리 눈에 아주 잘 보인다. 마이크로파만 메타물질을 느끼지 못하고 투과하기 때문이다. 눈에 안 보이는 투명 메타물질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시광선 모든 영역에서 효과를 발휘해야 하고 메타원자의 크기도 그만큼 작아야 한다. 웬만한 크기의 물건을 숨기려면 수십~수백 나노미터 크기의 메타원자를 잘 모아서 적어도 몇 센티미터 크기의 물건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어려움 때문인지 메타물질을 이용한 투명망토에 대한 연구는 ‘구현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수준에서 멈췄고 최근에는 거의 진행되고 있지 않다.
2003년 일본 도쿄대학의 다치 스스무 교수舘暲 1946-현재 팀은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몸 뒤쪽 배경을 카메라로 촬영한 뒤, 촬영한 영상을 컴퓨터로 처리하여 투영기를 통해 다시 몸 앞면의 망토에 비춰주었다.([그림6]) 증강 현실 기법augmented reality method 의 눈속임이긴 하지만 지난 15년 사이 3D 카메라와 영상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이 기술을 응용한 기술들이 개발되어 소개되고 있다.
영국 자동차 회사인 랜드로버는 2014년 뉴욕 모터쇼에서 투명 보닛을 최초로 선보였다. 범퍼 아래에 장착된 레이저 센서와 카메라가 노면의 지형을 분석하고 그 영상을 앞유리에 투영한 것이다. 일종의 헤드업디스플레이가 되는 것이다. 반사된 레이저는 경사도와 물웅덩이의 수심까지 알아낸다. 차량에서 A 필러는 자동차의 앞유리와 옆유리를 구분하는 기둥을 말하는데 종종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여 자전거나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걸 운전자가 보지 못해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기아자동차는 2018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차량 외부를 카메라로 찍어 스크린이 내장된 A 필러에 투영하여 운전자에게 외부 시야를 제공하는 차를 소개했다. 모두 영화적 상상력이 구체화된 걸작들이다.
굴절의 재발견: 메타렌즈
렌즈는 빛의 굴절 현상을 잘 이용한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초창기의 렌즈는 로마의 역사학자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23-79가 언급한 것처럼 태양 빛을 모아 불을 피우기 위해 사용되었다. 광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랍의 이븐 알 하이삼Ibn al-Haytham, 965-1040이 쓴 『광학의 서』가 1270년ㄹ경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서양의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베이컨Roger Bacon, 1219년-1292은 시력교정용 렌즈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렌즈를 결합해서 망원경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였다. 네덜란드의 한스 리퍼세이Hans Lippershey, 1570-1619는 우연히 볼록렌즈와 오목렌즈 둘을 겹쳐서 먼 곳의 물체를 보았을 때 물체가 무척 가깝게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1608년 굴절 망원경에 대한 특허를 최초로 신청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네덜란드의 얀센Zaccharias Janssen 1585-1632은 2개의 렌즈를 결합시킨 현미경을 최초로 만들었다. 굴절에 대한 연구와 렌즈의 발전은 인류의 시야를 그동안 보지 못했던 미시의 세계부터 우주까지 확장할 수 있게 하였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스마트폰의 뒷면을 보면 카메라가 보기 싫게 툭 튀어나와 있다. 흔히 카툭튀라고 하는데 영어로도 “camera bump”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왜 카메라가 툭 튀어나와 있을까? 전자소자들의 크기는 혁신적으로 줄어들었고 회로설계 최적화를 통해 핸드폰의 두께 또한 혁신적으로 얇아졌지만, 빛의 굴절을 이용한 렌즈는 두께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고 빛의 파장(색)에 따라 초점이 다르게 맺히는 색수차현상 보정, 초점 거리 조절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카메라의 화소수를 늘려 성능을 올리고 싶으면 센서의 크기를 키워야 하는데 여기에 한계가 있다 보니 대신 렌즈의 숫자를 늘리게 됐고, 결과적으로 카메라의 성능은 향상됐지만 갑툭튀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2차원 메타물질인 메타표면을 이용하여 제작되는 메타렌즈다. 메타표면은 전파의 방향을 조절하는 위상배열 레이더와 원리가 매우 흡사하다. 위상배열 레이더는 우리에겐 전파를 영상으로 바꾸는 브라운관으로 잘 알려진, 1909년 노벨상 수상자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 1850-1918이 최초로 고안하였다. 송수신 안테나(모듈)를 여러 개 붙여서 배열한 후 각각의 모듈이 송수신하는 전파의 위상을 개별 제어함으로써 전파가 지향성을 갖게끔 조절할 수 있는 레이더다.
[그림7]처럼 전기 신호를 아래쪽에 있는 안테나에 가장 먼저 보내 전파를 발생하고 시간 간격을 잘 조절하여 다른 안테나도 순차적으로 켜주면, 각 안테나에서 발생하는 전파 사이에는 위상 지연 효과라는 게 발생하여 안테나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면 전파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전기 신호로 전파의 위상을 변경하는 것만으로 전파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어 단일 레이더를 기계적으로 회전시키는 것에 비해 훨씬 빠르게 주변을 검색할 수 있다.
메타표면은 위상배열 레이더의 축소판으로 굴절률이 달라 서로 다른 위상지연을 갖는 마이크로·나노 사이즈의 메타원자를 배열하여 빛과 상호작용하는 표면에서 투과 또는 반사되는 빛의 위상을 개별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물질이 갖고 있는 고유한 굴절률과 무관하게 빛의 굴절 또는 반사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원리이다. 2011년 미국 하버드 대학의 페데리코 카파소 교수Federico Capasso, 1949-현재 연구팀에서 I형태와 V형태의 마이크론 크기의 금속 메타원자 배열을 통해 선형의 위상 차이를 갖는 메타표면을 비교적 파장이 긴 적외선 영역에서 구현하여 빛의 굴절 방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다.[2] 마찬가지로 가시광선의 굴절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굴절되는 정도를 두께의 차이로 구현하여 일반적인 렌즈를 대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카파소 교수 연구팀은 2016년 투명하면서도 굴절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유전체인 이산화티타늄을 수백 나노미터 크기의 직사각형 구조로 제작하여 가시광선에서 동작하는 메타렌즈를 개발하였다.[3] ([그림8]) 이 연구는 금속이 아닌 유전체로 바꿔 주기만 해도 빛의 위상 차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최근 국내 연구진도 이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나노 직사각형 구조는 전자빔리소그래피e-beam lithography와 원층을 한층 한층 쌓아 올려 구현하는 ALDatomic layered deposition라는 적층방식을 통해 구현하기 때문에 제작 비용이 높아 실질적으로 응용하는데 제한이 많았다. 최근 포스텍POSTECH과 삼성전자는 공동 연구를 통해 나노미터 크기의 틀을 제작하고 특수한 나노입자를 섞어 원하는 패턴대로 얇게 찍어낼 수 있는 ‘원스텝 프린팅 기술’을 개발하여, 두께가 1 마이크론 정도로 기존 렌즈 두께의 1 만분의 1 수준인 메타렌즈를 구현하였다.[4] 아직은 비교적 파장이 긴 적외선 영역에서 구현되었지만 구조의 크기를 줄이고 파장, 즉 색깔별로 초점거리가 달라 생기는 색수차 문제 등을 보완하여 가시광선에서 동작하는 렌즈를 개발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카메라의 크기를 혁신적으로 줄여 ‘카툭튀’ 디자인을 없애는 기술로 활용될 전망이다.
그래핀: 빛-물질의 상호작용의 극한
앞서 설명한 메타물질, 메타표면, 메타렌즈는 한번 제작하면 그 특성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외부에서 입력되는 빛이나 열 또는 전기적 신호에 따라 굴절율이 변하는 상전이 물질이나 반도체 물질 등을 접목하여 메타물질만이 갖는 독특한 광학적 특성을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마치 야생마 같은 빛에 마구를 씌워 통제하는 것과 같다.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은 탄소 원자 한 층으로만 구성된 2차원 물질인 그래핀을 흑연으로부터 분리해 내고 그 물성을 밝히는데 기여한 안드레 가임Andre Geim, 1958-현재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1974-현재에게 돌아갔다. 그래핀 내부에 있는 전자들은 움직이는 속도가 매우 빨라 전도도가 좋다. 게다가 원자 한 층짜리 구조이기 때문에 가시광선이 거의 투과되며, 유연한 기판 위에 놓고 구부려도 전기적 특성이 변하지 않아 차세대 웨어러블 디스플레이의 투명 전극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 광선보다 빛의 파장이 긴 테라파, 중적외선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래핀이 빛을 흡수하는 정도는 외부에서 그래핀에 걸어주는 전압에 따라 달라진다. 쉽게 말하면 투명하던 그래핀이 불투명해지는 것이다.([그림9]) 이렇게 그래핀에 적당한 전압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빛의 투과성을 조절할 수 있긴 하지만, 좀 더 능동적인 광소자를 만들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테라파와 중적외선 영역에서 그래핀과 메타물질을 결합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반대로 그래핀을 메타물질에 접목하면 빛의 굴절률을 조절하여 빛을 느리게 했다가 다시 빨라지게 할 수 있다. 굴절률이 큰 메타물질에서는 빛이 물질에 많이 흡수되면서 진행 속도도 느려진다. 하지만 메타물질과 접목된 그래핀에 전기 신호를 주면 메타물질이 빛을 흡수하는 것을 그래핀이 방해하기 때문에 빛의 진행 속도가 다시 빨라진다. 한 번 제작되면 정해진 속도로만 빛이 통과하던 기존 메타물질과 비교하면 훨씬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빛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핀을 메타렌즈에 응용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빛의 양은 조리개를 통해 조절한다. 즉 직접 손으로 돌려주거나 기계적으로 돌려주어 빛의 양을 조절한다. 그러나 그래핀을 메타렌즈에 접목하면, 그래핀에 전기신호를 걸어 메타렌즈가 집속하는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5]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원자 한층 두께의 물질이 놀랍게도 빛의 성질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Two hands make light work는 속담이 빛light을 다루는 일work에서도 딱 맞아떨어진다!
맺으며
지금까지 빛을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여정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특히, 빛의 특성을 조절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성질인 반사와 굴절에 대해 살펴보았고 인공구조인 메타물질에 대해 소개하였다. 빛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는 인공적인 광원을 개발하여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어둠을 극복하고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여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현상까지 얻을 수 있는 인공원자를 만들어냈다. 이 밖에도 원자 구조를 모사하여 빛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공적인 띠틈band gap을 갖게 하는 광결정, 빛을 파장보다 극도로 좁은 영역에 집속시킬 수 있는 플라즈모닉 구조 등 인공구조를 이용한 빛에 대한 연구는 무궁무진하며 빛 정복의 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빛은 아침에 눈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존재이면서, 여전히 신비롭고 탐구할 부분이 많은 영역이다. 빛을 이용한 광학 소자는 일반적으로 전자를 이용한 전자 소자에 비하여 훨씬 빠른 동작 속도를 갖지만, 전자소자의 근간을 이루는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메모리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광학 소자의 부재로 인해 가능성에 비해 실생활에서의 연구가 더디게 진행되어 왔다. 나노광학자로서 인공 광원, 메타물질 등 다양한 물리적 원리를 적용한 빛의 정복을 통해 전자소자를 광학소자들이 대체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 김튼튼 교수님이 팟캐스트 <과장창>의 21화에 “투명망토의 원리! 메타물질의 모든 것”을 주제로 참여하였습니다.
참고문헌
- J. B. Pendry, Phys. Rev. Lett. 85 3966–3969 (2000)
- N. Yu et al. Science 334, 333–337 (2011).
- M. Khorasaninejad et al. Science 352, 1190–1194 (2016).
- G. Yoon et al. ACS Nano 15, 698-706 (2021)
- T.-T. Kim et al. Advanced Optical Materials 6, 1700507 (2018).